등록 : 2017.09.22 16:59
수정 : 2017.09.22 19:32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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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디가드> 스틸컷.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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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의 기준은 뭘까? 고음? 기교? 성량? 이 모든 것을 종합한 균형 잡힌 가창력? 디바의 자격에 대해서 정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디바라는 칭호 또한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국민가수’ 칭호보다 두 레벨 정도 더 어렵다. 2000년대를 양분했던 월드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디바라고 할 수 있을까?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40대 이상 아재 언니들은 “걔들이 무슨 디바야!”라며 펄쩍 뛸지도 모르겠다. 팝 역사에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는 디바는 딱 세명이라고 생각한다. 셀린 디옹, 머라이어 케리, 그리고 오늘 칼럼의 주인공 휘트니 휴스턴.
1963년에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까이할 수밖에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인 출신으로 연예기획사의 최고경영자였고 어머니는 가스펠 가수였다. 무려 2년간 준비하고 발표한 데뷔 음반은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빌보드 음반 차트 1위는 물론이고, 3곡이나 싱글차트 1위 곡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요즘도 노래 좀 한다 하는 가수들이 실력 과시용으로 부르곤 하는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 오디션의 단골 메뉴 ‘더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 등이 데뷔 음반의 수록곡.
나오자마자 슈퍼스타가 된 그는 소퍼모어 징크스(성공적인 데뷔 뒤 두번째 작품이 망하는 경향)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두번째 음반을 발표했고 파죽지세로 팝시장을 쓸어버렸다. 발매와 동시에 미국와 영국 음반 차트 1위를 차지했는데, 음반 발매 첫 주에 영미 차트 1위를 동시에 차지한 것은 비틀스나 마이클 잭슨도 얻지 못한 기록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3곡의 1위 곡을 배출했던 데뷔 음반에서 한술 더 떠 4곡의 싱글을 1위로 밀어 올렸다. 수많은 기록과 시상식의 주인공으로서, 휘트니 휴스턴은 의심할 여지 없는 최고의 톱스타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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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디가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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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음반 역시 성공시킨 뒤, 그는 커리어에 정점을 찍는 영화 <보디가드>에 출연했다. 마치 그의 자전적 이야기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여가수 역으로 주연을 맡았는데, 개봉 전부터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선,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의 사랑이라는 주제가 할리우드에서는 흥행 참패를 부르는 금기였다. 연기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채 가수로서의 인기에 기대 여주인공을 꿰찼다는 비난도 있었다. 주요 영화매체에서는 그의 연기를 혹평하는 리뷰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행성적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1992년 당시 돈으로 4억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수익을 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해 최고의 흥행작이었다. 휘트니 본인이 노래한 영화음악 앨범은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영화음악 음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공식적인 판매량만 무려 4400만장이란다.
이후로도 휘트니는 배우와 가수로서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다. 120회에 달하는 세계투어를 펼치는가 하면 영화와 티브이 드라마 출연도 이어나갔다. 다 언급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상을 수상했고 팝스타 바비 브라운과 결혼도 했다. 그의 유일무이한 라이벌이라고 할 만한 머라이어 케리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팝 역사상 유례없는 디바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여기까지가 그의 화려한 시절이다.
2012년 2월11일. 그는 한 호텔 욕조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어 결국 사망했다. 원인은 약물중독으로 인한 사고사. 대체 무엇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삶을 누렸던 그를 이토록 외로운 죽음으로 이끌었는지는 딱히 말하기 어렵다. 불과 3년 뒤 그의 외동딸 바비 크리스티나 브라운조차 마약중독으로 인한 의식불명 상태로 욕조에서 발견되었다가 결국 사망했다. 엄마와 딸이 소름 끼칠 정도로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나는 최진실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마치 전염처럼 남편 조성민과 동생 최진영까지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우리나라 연예계 최악의 비극으로 꼽는 사건이 휘트니 모녀의 비극과 겹쳐진 것이다. 스타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그저 술과 약물의 탓이라고 하긴 어렵다. 하나의 요인이 될 수는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에. 인기 하락에 따른 우울감도 있겠지만 한창 활동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스타들도 적지 않다. 어쩌면 고독감일까? 무대 위, 스크린 위에서는 대중의 환호를 받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진정으로 기댈 이 하나 없는 괴리감이 우리의 별들을 스러지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속에서는 든든한 보디가드가 휘트니를 지켜주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화가 나고 미안해진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전율했던 팬으로서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고작 이 글이라고 생각하니 더 미안해진다.
깊어지는 이 가을, 휘트니의 노래를 다시 들어보자. 어떤 노래든 좋다. 그는 단 한 곡의 노래도 허투루 부르지 않았으니까. 노래가 끝나면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왜 아직까지도 최고의 디바인지. 감히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른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그의 신전에 절을 했을 뿐이라는 것을.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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