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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0 17:51 수정 : 2019.12.22 19:02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잡지를 꼽으라면 틀림없이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 <타임>지에서는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의 인물을 뽑는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리지 않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사람들을 선정해왔다. 마하트마 간디, 히틀러, 덩샤오핑, 케네디 같은 정치 지도자도 있고 요한 바오로 2세나 마틴 루서 킹 같은 종교 지도자도 있다. 그중 가장 어린 나이에 뽑힌 인물은 최초로 대서양 단독 횡단에 성공한 린드버그였다. 자동항법장치 따위가 있을 리 없었던 시절, 무려 33시간 동안 고독한 사투를 벌이며 인간과 기술의 한계에 도전한 인물이다. 그때 린드버그의 나이가 25살. 한 세기 가까이 건재하던 그 기록이 올해 깨졌다. 주인공은 스웨덴의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

그는 작년부터 매주 금요일 학교에 가는 대신 스웨덴 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시위의 이름은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단순히 등교 거부에 그치지 않고 그는 무려 세계 정상들을 향해 당신들이 지구를 죽이고 있다며 날 선 비판을 이어갔고, 결국 올해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연설할 기회를 얻었다. 각국의 대통령, 총리들을 마주 보면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노려보며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하는 영상이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나는 툰베리의 주장과 <타임>지의 결정에 모두 찬성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지 못한 듯하다. 뭐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 하지만 그가 보인 반응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저열했다.

“어처구니없는 결정이다. 그 아이는 자신의 분노 조절 문제에 애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친구랑 좋은 옛날 영화나 한 편 보러 가라. 진정해라.”

스웨덴 소녀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 대통령이란 사람이 트위터에 쓴 글이다. 이건 무슨 심리일까? 질투심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혹시 자기 대신 어린 소녀가 노벨평화상이라도 받을까봐? 이 황당한 트위터 글에 대해 수많은 조롱 댓글이 달렸음은 당연지사. 그리고 툰베리는 재치 있게 트위터 자기소개 글을 바꾸었다.

‘분노 조절 문제에 애쓰는 10대 청소년. 현재 진정하고 친구와 좋은 옛날 영화를 보고 있음.’

툰베리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 일회용 제품 퇴출을 부르짖으면서 정작 본인은 일회용 제품을 사용한다고 욕을 먹기도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며 비행기 대신 배와 기차를 이용하는 행동도 구설에 올랐다. 그가 대서양을 건너기 위해 탄 친환경 태양광 요트를 몰기 위해 선원들은 비행기를 타고 와야 했고, 기차 바닥에 앉아 집으로 돌아가는 사진을 올렸지만 실상 1등석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철없는 소녀가 반짝 영웅으로 포장된 해프닝에 불과할지, 지구를 구할 환경운동가로 자라날지 그의 미래를 지켜보자. 인류를 위해서라도 후자이길 기원하면서.

툰베리가 <타임>지 올해의 인물 최연소 기록을 깼다 해도, 아직까지 스웨덴 출신 최고의 셀럽은 누가 뭐래도 팝그룹 아바(ABBA)다. 1972년부터 딱 10년의 활동 기간 동안 3억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전설의 팝그룹. 두쌍의 부부로 이루어진 팀인데 두쌍 모두 이혼했다거나 남편 둘은 작곡을 전담하고 아내 둘이 노래를 주로 불렀다는 사실 정도는 꽤 많이 알려져 있다. 히트곡이 너무 많다 보니 아바의 노래들로만 이루어진 뮤지컬과 영화도 만들어졌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추억이 얽혀 있다. 바닷가 마을 울진에서 태어나 자란 필자의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어머니가 아바 노래를 그렇게 자주 들으셨던 기억이 난다. 흥이 많은 편이었던 어머니는 종종 어린 나를 꼭 안고 춤을 추셨다. 구식 마란츠 전축을 통해 흘러나오던 찰랑거리는 리듬과 설레는 멜로디가 엄마의 화장품 냄새처럼 어렴풋하다. 내 영혼이 빚어지던 순간이었을까.

40년 전 바닷가 마을의 지붕 파란 집으로 들어가본다. 어린 아들을 안고 춤을 추는 여자가 보인다. 턴테이블 옆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레코드판 중 한장을 뽑아 올해 마지막 칼럼 주인공으로 추천할까 한다. <슈퍼 트루퍼>.

이미 한 커플이 이혼하고 팀도 해체를 앞두고 있던 시점에 나온 음반이지만 쓸쓸한 감정뿐만 아니라 아바 특유의 흥겨움과 생동감까지 꽉 차 있는 걸작이다. 발매 시기가 12월이어서 그런지 연말의 정취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듣기에 아주 제격이다. ‘해피 뉴 이어’라는 제목의 노래까지 수록돼 있을 정도.

타이틀곡을 비롯해 ‘더 위너 테이크스 잇 올’ ‘안단테, 안단테’ ‘레이 올 유어 러브 온 미’ 같은 곡들은 너무 유명하니까 오늘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온 앤드 온 앤드 온’을 추천해드린다. 흥청거리는 연말 파티 분위기를 담아낸 세상 신나는 노래랄까. 지금도 귀가 얼얼한 볼륨으로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는데 자꾸 몸이 흔들려 오타가 난다. 그래, 연말은 들썩여야 제맛이지.

아바여 영원하라! 툰베리야 힘내라! 트럼프는 고마해라.

에스비에스 피디·정치쇼 진행자 ㅣ 이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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