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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13 03:51 수정 : 2017.11.13 03:51

수련, 지금 여기서(15)/형 수련의 의미

 즉흥 연주를 생명으로 하는 블루스, 재즈 연주자들은 저마다 자주 쓰는 가락뭉치(릭, lick)를 가지고 있다.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더 나은 애드립을 위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자의 고유한 구절을 따라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다. 무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전에서 큰 효력을 보였던 고수들의 몸짓을 유형화한다면? 지금이야 일반인도 쉽게 격투기 챔피언의 주특기 기술을 분석해볼 수 있는 시대지만, 그 옛날에는 동작으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 무술동작을 여러개 이어서 정형화한 것을 ‘형(型)’이라고 한다. 태권도에서는 ‘품새’ 혹은 ‘틀’이라 하고 중국권법에서는 ‘투로(鬪路)’라고 부른다. 초기에는 아마도 실전 고수의 경험을 기억하고 전달하기 위한 요량으로 두어개 동작을 이어붙인 형태였을 것이다. 그것이 점차 발전하여 공격자와 방어자로 나누어 실시하는 약속대련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허공에 상대를 상정하고 혼자서 연습하는 형태로 정착되기도 했다.

 실전에서 잘 통하던 기술들을 정리하여 학습하는 것을 일차적 실용성이라고 한다면, 보다 긴 호흡으로 무술적 신체를 만들어내는 이차적 실용성을 강조하는 훈련법도 차츰 발전해 나갔을 것이다. 이를테면 반듯하고 온전한 힘의 행사라든지 움직임의 내면을 관조함으로써 중심에 대한 감각을 키운다든지 혹은 무인의 기백을 함양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면, 상대를 염두하고 대응적으로 만들어내는 몸짓 보다는 내적 기준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끌어내는 움직임이 더 큰 도움이 된다. 다소 실전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동작들로 구성된 형을 맞닥뜨렸을 때는 그것의 교육적 효과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차적 실용성에서 한차례 더 도약하여 아예 어떠한 목적도 갖지 않는 상태에 이르면 몸짓은 더욱 자유로워지고 고도화된다. 지나치게 분명한 목적 앞에서는 필요 이상의 복잡함은 거세되기 마련인데, 그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이전에 보지 못했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는 문자 그대로 예술로 접어들게 되고, 이 동작들을 왜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무술적 힘이 콱 쥐어박는 것이라면 형의 연무는 힘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무술 개별 기법이 동작의 종결점에 집중한다면 형에서는 맺음 동작 사이사이의 이음새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번 형성된 기운의 덩어리가 흩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 움직임부터 마지막에 거두어들이는 순간까지 마치 한 동작인 것처럼 일관성을 유지해나간다. 설령 멈추는 지점을 만나더라도 흐름이 덜컥 끊기지 않도록 호흡을 머금고 있다가 계절이 바뀌듯 다음 동작으로 이어나간다. 스승들은 기운을 발동시키는 예법(禮法) 동작만 보고도 제자의 수련 정도를 단번에 알아본다. 첫 마음을 내는 순간에 이후에 펼쳐질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무술수련하는 육장근씨

무술 수련하는 육장근씨

 형을 시연할 때면 사람들은 그것이 춤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은 정말로 춤을 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무예의 경지가 무르익으면 춤처럼 보이지만 그 역이 언제나 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즉 마지막 결과물을 흉내낸다고 해서 그것의 원인이 되는 깨달음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힘쓰는 결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불분명함을 적절히 얼버무릴 생각으로 섣불리 춤부터 추려고 나온다면 우리는 그것을 준엄하게 꾸짖어야 한다. 그것은 무예를 망치고 춤마저 욕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물감을 대충 엎질러 놓고 “나는 지금 회화의 한계를 돌파하는 실험을 하고 있소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무술 수련하는 육장근씨

무술수련하는 육장근씨

 또한 오늘 형 수련의 가치를 힘주어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냥 놔두면 실전적 무술기법에 비해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본래 의미를 잃어버릴 우려가 크기 때문에 힘을 북돋아 주자는 뜻에서였지, 결코 형 수련이 단순 동작의 반복 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형 또한 산 정상에 이르는 여러 길 중 하나일 뿐이다.

 형 수련은 상대적인 무술의 개념을 넘어서서 바깥이 아닌 안으로 눈을 돌려 힘과 의식의 흐름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에게 허락된 소박한 공간에서 내 몸과 나누는 고요한 대화. 그것은 빈 하늘에 몸으로 쓰는 마음의 글씨다.

굴 사진 동영상/육장근(전통무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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