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22 08:55
수정 : 2017.11.22 08:57
김승호의 기력한방/삽주
판소리 흥보가를 듣다보면 ‘남양 초당 경 좋은데 만고지사 와룡단’이란 말이 나온다. 만고지사는 삼국지에 나오는 촉의 제갈공명을 가리킨다. 제갈량이 출사하기 전 초려를 짓고 살았던 곳이 하남성 남양현이라고 한다. 이 무렵의 일인 듯하다. 갈홍의 ‘포박자’에 전하는 얘기가 하나 있다. 전쟁과 기근으로 사람들의 삶이 피폐하기 짝이 없었던 한나라 말의 하남성 남양현. 문씨 성을 가진 여자가 난리를 피해 호산(壺山) 산속으로 도망을 갔다.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굶주림으로 다 죽게 되었는데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그녀의 형색을 보고 삽주를 캐먹으라고 일러줬다. 문씨는 삽주 뿌리를 캐 먹고 점점 몸에 기력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삽주를 먹으며 산속에서 10여 년을 살다 고향을 찾아 돌아갔는데 사람들이 문씨를 보고 모두 놀라워했다. 그녀의 안색은 마치 앳된 아가씨 같았고 기력도 젊은 남자 못지않았다. 문씨의 얘기가 사람들 사이에 전해져 남양현 인근에선 삽주가 신약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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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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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때의 한림학사이자 의가인 허숙미의 ‘보제본사방’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허숙미 본인이 음벽(飮癖)을 앓은 지 30년이 되었다. 음벽은 소화기질환으로, 명치가 더부룩하고 식욕이 없으며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가 차 있는 것 같고 신물을 토하기도 하는 증상이다. 병이 깊어지면서 희한하게도 몸의 한쪽은 땀이 나지 않고 다른 한쪽만 땀이 나는 증상도 생겼다. 의사들을 불러도 큰 효과가 나질 않자 모든 약을 물리치고는 다만 삽주를 가루 내어 대추살과 섞어 환을 지어서 하루 3번씩 3개월을 복용했다. 그랬더니 배가 아프고 구토하던 증상이 다 없어졌다. 답답하던 흉격도 편해지고 식욕이 살아났으며 땀도 정상이 되었다. 시력도 좋아져 등불 아래서 조그만 글씨도 쓸 수 있게 됐다. 본초학에서 방향화습약 또는 보익약으로 분류하는 삽주는 우리나라 산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약초다. 국화과의 식물로 7월경부터 9월 사이에 흰 꽃이 피는데 야생화로도 품격이 있다. 겨울이나 초봄에 뿌리줄기를 채취해 쓴다. 섬유질이 많은 모근을 창출이라 하고 전분이 많은 자근을 백출이라고 한다. 둘의 용도가 좀 다르다. 백출은 건비보익하는 보약으로 흔히 쓰이고 창출은 조습건비하므로 풍습을 제거하는 약으로 더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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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주 꽃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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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삽주는 건위제로서 소화불량증에 널리 쓰인다. 아트락틸론이라는 정유 성분이 함유돼 진정작용과 방향성 건위작용을 한다. 또 신장 기능이 약해져 소변량이 적을 때, 위염이 있거나 몸이 붓고 어지럼이 있을 때, 습사로 인해 온몸이 아플 때도 쓴다. 비타민A 비타민D가 있어 야맹증에도 효과가 있다. 항암작용도 한다. 중국에서는 폐암과 위암에 효과를 보았다는 보고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에서 위암에 좋은 효과를 보았다는 사례가 꽤 있다. 최근 연구를 보면 삽주 추출물이 두피의 비듬을 없애기도 한다. 치주질환과 치은염에도 효과가 있다. 피부미백에도 도움이 된다.
김승호(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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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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