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뼈를 가볍게 말아 넣어야 한다. 퇴화되어 척추 끝에 매달려 있는 꼬리뼈를 말아 넣는다니? 그것도 무겁지 않고 가볍게…. 그런 상태에서 허리를 똑바로 펴야 한다. 허리를 세우면서 배의 긴장을 풀라고 한다. 어깨 넓이로 벌린 발은 엄지발가락이 약간 안쪽을 향한 채 무릎을 안쪽으로 모아준다. 약간 안짱다리 모양이다. 팔꿈치의 위치가 중요하다. 어깨에 힘을 뺀 채 팔꿈치를 몸 안쪽으로 집어 넣는다. 팔꿈치는 팔 운동의 중심이 된다.
예민한 감각과 빠른 속도로 상대의 빈틈을 찾아 파고 드는 영춘권의 공격과 방어는 동시에 진행된다. 영춘권을 보급하는 박정수씨가 시범을 보이고 있다.
특이하다. 이 자세가 영춘권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 ‘이자겸양마(二字拑羊馬)’이다. 자세가 조금 위축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이 자세는 영춘권의 핵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소한의 동작과 힘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한 신체역학적인 자세란다. 나와 상대의 중심선을 장악한다. 무게의 중심을 아래, 뒤쪽에 둔다. 상대의 타격을 받아들여 옆으로 흘리는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신체적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견자단 주연 영화 <엽문>으로 유명
중국 무술의 하나인 영춘권은 이소룡의 스승인 엽문이 본격적으로 보급한 무술이다. 견자단이 주연한 영화 <엽문>시리즈로 널리 알려졌다. 중국 무술 가운데 유일하게 여성이 만든 무술이기도 하다. 키가 크고 힘이 강한 상대를 바짝 붙어서 간결하고 단순한 동작으로 제압한다. 빠르고 정교하다. ‘팔은 눈보다 빠르다’며 나의 팔을 상대방의 팔에 밀착시킨다. 눈보다 빠른 팔의 감각으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효과적으로 공격한다. 예민한 감각은 부드러움에서 온다.
10여 년 전부터 한국에 영춘권을 보급하고 있는 박정수(45)씨는 부드러움(이완)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계에 윤활유가 마르면 뻑뻑해지면서 에너지 전달이 잘 안됩니다. 육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절과 근육이 경직되면 감각이 무뎌집니다. 마음도 이완돼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경직됩니다. 흐르는 물과 같이 몸과 의식이 부드러워졌을 때 감각은 살아납니다.”
통나무로 만든 목인장은 정확한 타격과 빠른 속도를 익히는 영춘권의 독특한 수련 기구이다.
박 씨는 부드럽고도 천천히 두 손을 움직인다. 무릎을 안쪽으로 굽힌 기마자세로, 크지 않은 동작으로 두 손이 앞 뒤로 오고 간다. 손바닥을 폈다가 오므리고, 주먹의 윗면을 옆으로 지른다. 두 손이 동시에 움직인다. 공격과 방어를 함께 한다고 한다. 점차 움직임이 빨라진다. 주먹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그 움직임은 몸의 중심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눈, 코, 목, 명치의 중심에는 가장 위험한 급소가 자리잡고 있어요. 이 중심선은 나와 상대방의 가장 짧은 직선거리입니다. 이 중심선을 장악해야 합니다. 중심선 장악은 상대를 공격하는 선제 조건입니다. 움직이는 상대의 중심선을 어떻게 장악하느냐구요? 집중하면 됩니다.”
방송 출연도 했지만 생부모 못 만나
박 씨는 영춘권의 형인 투로 가운데 기본적인 ‘소념두’를 소개한다. “소(小)와 염두(念頭)는 ‘작은 생각’입니다. 생각을 적게 하고 반복적인 동작으로 손의 감각을 키웁니다. 불필요한 동작 없이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중심선을 벗어나지 않게 흐르도록 합니다.”
소념두를 수련하는데 동원되는 것이 ‘목인장’이다. 통나무에 팔 모양의 가지를 설치하고 두 팔과 발로 공격과 수비를 연습한다. 잡아채고, 팔뚝으로 밀어내고, 뻗고, 후려지는 가운데 팔과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가 도장을 가득 채운다. “정확한 속도와 에너지로 타격하면 소리가 날카롭고 탄탄합니다. 목인장 수련으로 탄력 있고, 감각적인 팔을 만듭니다.”
영춘권 시범 보이는 박정수씨
영춘권의 봉술 육점반곤
영춘권의 무기술인 팔참도
박씨는 부모를 모른다. 생후 7개월 때 홀트아동복지재단을 통해 덴마크의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박 씨를 입양한 양부모는 코페하겐 근교에서 살며 박 씨를 정성껏 키웠다. 박 씨는 어릴 때부터 무술에 관심이 많았다. 덩치가 작은 동양인이 상대적으로 큰 서양인들 틈에서 자라다 보니 본능적으로 무술에 눈이 갔다. 마침 입양된 집안의 덴마크 형이 영춘권을 배운 뒤 동생인 박 씨에게 권했다. 13살부터 배웠다. 덴마크에서 군 복부를 한 뒤 본격적으로 영춘권을 익혔다. 마침 엽문의 제자였던 양정(71)사부도 만났다. 전 세계를 순회하며 영춘권을 가르치던 양정 사부를 만나러 독일, 이탈리아, 영국, 미국 등을 갔고, 19살 때부터 친구와 함께 도장을 운영했다.
양정 사부는 박 씨에게 “한국에 가서 영춘권을 보급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박씨는 2002년 한국에 와서 한국어부터 배웠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었다.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부모를 찾는다고 이야기를 했으나 생부모는 나타나지 않았다. 박 씨는 10년 전부터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도장을 차리고 영춘권을 보급하고 있다.
소림사 비구니가 전수 ‘전설’도
박 씨는 영춘권에 대한 여러 ‘전설’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명말 청초, 권법으로 유명한 소림사는 청나라 군사들의 공격을 받았다. 소림사는 파괴됐다. 매화권의 달인인 비구니 오매는 도망치다가 한 고을에서 엄영춘을 만난다. 울고 있던 영춘은 오매에게 마을의 불량배가 결혼을 강요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오매는 영춘에게 권법을 가르쳤다. 시간이 없어 권법에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간략한 기술들만을 뽑아 영춘에게 전수했다. 결국 영춘은 그 권법으로 불량배를 제압했고, 그 이름을 딴 영춘권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치사오는 영춘권의 독특한 대련이다. 마주선 상대방과 두 손을 댄 채 공수를 익힌다. 그 작은 공간에서 빈틈을 찾아 공격하고, 상대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정교하다. 척추가 회전축이 되고, 회전의 중심은 단전 부위의 허리다.
박 씨는 “영춘권은 먼저 안 움직입니다. 상대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예민한 감각으로 상대의 중심선을 파고 듭니다. 직선은 두 지점 사이 최단거리입니다. 짧은 거리는 공격 시간을 줄이고 직선은 타격력을 증가시킵니다.” 작은 키(163㎝)의 박 씨가 커 보인다. 늠름하다.
글·사진/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동영상/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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