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이 맑아야 한다. 표정도 고요해야 한다. 언뜻 보면 마치 겨루기를 하려는 자세이다. 두 손은 상대를 향하고, 두 발은 약간 무릎을 구부려 언제라도 힘을 주어 내뻗을 수 있는 자세이다. 하지만 눈빛이 다르다. 겨루기를 하려면 눈에 살기를 품기 마련이다. 긴장을 하거나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살기를 띤 눈빛이 아니다. 한없이 편하고 부드러운 눈빛이다. 이유가 있다. 상대가 인간이 아니다. 나무이다. 아무런 말없이 굳건히 하늘을 향해 서있는 나무이다. 그늘이 넓다. 그런 나무의 주변을 돈다.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나무와 교감하며 나무 주변을 찬찬히 돌면서 몸과 마음의 견강을 챙기는 팔괘내공을 김현태씨가 시범 보이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자세를 살펴보자. 왼 손바닥은 하늘로 향하고, 오른 손은 단전 앞에 위치하고 손바닥은 땅을 향한다. 왼 손바닥은 펼치고 검지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세운다. 오른 손 검지는 왼팔 팔꿈치를 향한다. 왼손은 나무를 향한다. 시선도 나무를 향한다. 왼손 검지의 높이는 눈 높이. 얼굴과 손끝과 나무가 하나의 선을 이룬다. 어깨는 느슨하게 긴장을 풀고, 가슴은 살짝 웅크린다. 중요한 것은 발 자세. 다리는 약간 구부리고, 체중의 70%는 뒷발에 둔다. 발가락은 마치 땅을 꽉 잡는 듯하게 내딛는다. 그래야 발걸음이 안정되고, 굳건하다. 땅의 에너지를 흡수한다는 느낌으로 발을 딛어야 한다고 한다. 1.5초에 한 걸음씩 내딛으니 매우 천천히 걷는 느낌이다.
그런 자세로 나무 주변을 8바퀴를 돈다. 이번엔 방향을 바꾼다. 천천히 나무를 돈다. 여전히 나무를 부드럽게 응시한다. 표정 역시 맑고 밝게 유지한다.
무릎 관절 상하고 어깨 인대 상처
김현태(27)씨가 시범을 보인 것은 팔괘내공(八卦內功)이다. 중국의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팔괘장의 기본자세와 비슷하다. 애초 김씨는 택견 선수였다. 7살때부터 택견을 접했다. 몸이 마르고 약했다. 살짝 부딛치기만해도 코피가 날 정도였다. 아들의 건강을 걱정한 부모는 동네 택견 도장에 아들을 맡겼다. 택견에 입문한지 1년만에 선수가 됐다. 그때부터 군 입대전까지 김씨는 전국대회를 수차례 우승한 택견 고수였다. 그러나 겨루기 선수를 하다보니 무릎 관절도 상하고, 어깨 인대도 끊어지곤 했다. 공고를 졸업했으나 스포츠 의학을 전공을 선택했다. 어머니(이해운·51)가 암에 걸렸다. 복수가 차고, 밤새 통증에 시달렸다. 김씨는 그런 어머니를 밤새 간호하다가 입대를 했다. 그런 어머니가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김씨가 군 복무 중이었다. 휴가가서 마주한 어머니의 병세는 완전히 달랐다. 궁금했다. 별다른 병원 치료도 받지 않은 어머니의 변화가 궁금했다. 정상의 몸이 된 어머니는 매일 나무 주변을 돈다고 했다. 신기했다.
제대한 뒤 김씨는 어머니를 따라 나무를 돌기 시작했다. 이제 3년째이다. 어머니처럼 김씨의 몸도 변화됨을 느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시렸던 무릎 관절에 따뜻해지면서 부드러워졌다. 밤마다 고통을 주던 어깨의 통증도 사라졌다. 나무를 돌기 전에는 하루 10여시간 이상 잠을 자야 했는데 수면 시간이 5시간으로 줄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신 집중도 잘됐다. 이전엔 한 페이지도 읽기 어려을 정도로 정신이 산만했는데, 두 세시간 집중해서 공부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성적도 좋아져 장학생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나무와 교감하며 나무 주변을 찬찬히 돌면서 몸과 마음의 견강을 챙기는 팔괘내공을 김현태씨가 시범 보이고 있다.
캐나다에 본부 두고 전 세계 전파
김씨와 김씨 어머니의 삶을 바꾼 팔괘내공 수행법은 진푸티 선사가 보급하는 건강 명상법이다. 진푸티 선사는 인(仁) 조사를 만나 티베트 칭장고원에서 18년 동안 정진 수련하다가 1991년 보리선수’를 창립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7년 동안 포교활동을 하다가 캐나다에 본부를 두고 2005년부터는 전 세계를 누비며 수행법을 전하고 있다. 보리선수는 현대인들이 쉽고 효과적으로 불교 명상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에 비중을 둔다고 한다. 진푸티 선사가 만든 ‘대광명수지법’을 중심으로, 오체투지, 팔괘내공 등 다양한 방편을 통해 몸의 건강과 더불어 마음의 행복을 추구한다고 한다.
팔괘내공의 손동작은 세가지. 한 손바닥은 하늘을 향하고, 한 손바닥은 땅을 향하는 자세는 음양장(陰陽掌)이고, 양손바닥을 모두 하늘을 향하는 자세는 쌍양장(雙陽掌)이고, 손바닥을 나무를 향해 세워서 도는 자세는 청룡장(靑龍掌)이다. 보리선수의 팔괘내공의 보법은 무릎을 살짝 굽히고 발가락으로 땅을 살짝 잡는 느낌으로 걸으면서 다리의 힘을 키우기 위한 방법이다. 팔괘내공은 동작이 간단해서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다고 한다.
팔괘내공을 함께 수련하는 이들이 큰 나무 주변을 돌고 있다. 약사선원 제공
김씨는 원를 그리며 걸어야 하기에 바깥쪽 발의 엄지를 조금씩 안쪽으로 놓으면서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안으로 조이는 느낌으로 발을 딛습니다. 안으로 조이는 것은 에너지를 거두어 들인다는 뜻이고, 그 에너지가 축적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나무를 돌아야 하나? 김씨는 나무를 응시하며 주변을 돌다 보면 나무의 에너지가 자신의 몸으로 전달되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마치 영화 <아바타>에서 식물의 에너지가 인간에게 전달되는 모습이다.
한 시간 정도도 가뿐히 돌아
“나무 주변을 돌면서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나무와 에너지를 교류하고, 나무도 자라고, 나도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자라는지는 실제 모릅니다. 하지만 수련을 거듭할수록 건강해집니다.”
김씨는 여럿이 함께 수련할 때는 공원의 큰 나무 주변을 함께 돈다. 혼자 할 때는 방안에 큰 화분을 놓고 돈다고 한다. 처음엔 5분정도 돌았으나 이제는 한시간 정도도 가분히 돌 수 있다고 했다.
나무를 도는 김씨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인다. “특별한 호흡법이 있나요?"
“아뇨. 호흡은 잊어버립니다. 숨을 얼마나 자주 쉬는지 모릅니다. 호흡에 신경을 쓰면 기와 에너지가 흩어집니다. 호흡을 인위적으로 길게 하려다간 잘못된 길로 빠집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쉽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동영상 약사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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