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06 17:51
수정 : 2019.03.0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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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미 대학풋볼 FCS 전국 챔피언십을 딴 노스다코타주립대 풋볼팀을 백악관 오찬에 초청했는데, 메뉴가 맥도널드 햄버거와 치킨 샌드위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요리사의 정찬을 준비시켰다가, 미국 기업이 만든 패스트푸드로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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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보가 안갯속에 갇힌 듯 모호한 사안은 보고 싶은 대로만 보려 하면 그렇게 보이는 것 같고, 결국 믿게 된다.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부 외교안보팀에 그런 기류가 강했던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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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미 대학풋볼 FCS 전국 챔피언십을 딴 노스다코타주립대 풋볼팀을 백악관 오찬에 초청했는데, 메뉴가 맥도널드 햄버거와 치킨 샌드위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요리사의 정찬을 준비시켰다가, 미국 기업이 만든 패스트푸드로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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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모든 이들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어서 놀랐다. 어느 정보 전문가는 ‘북한의 핵 활동은 줄지 않았다. 달라진 건 더는 실험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모든’ 핵시설을 동결하는 게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최소한 영변 핵에 관한 합의는 이뤄질 것이고 ‘플러스알파’가 더 있을지 관심이라고 하는데, 워싱턴 분위기는 너무 달라서 당혹스러웠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얼마 전에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 의회 관계자를 두루 만난 어느 인사의 얘기다. 이 인사는 “영변 핵에 관해 미국 관계자들은 ‘이젠 핵물질이 별로 없다. 영변 핵 폐기는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하더라. 서울과 인식 차가 큰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북-미 정상 외교가 시작된 과정을 돌아보면, 워싱턴의 이런 분위기가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지난해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나고 싶다’는 제안을 전했을 때부터 비핵화 협상은 ‘톱다운 방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백악관 참모들은 깜짝 놀라 반대했지만, 트럼프는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의회뿐 아니라 행정부 내부의 반대 기류를 뚫고 북-미 협상을 여기까지 끌고 온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미국 협상팀은 미덥지 못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번 믿어볼 만하다고 북한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 믿음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하노이 회담은 보여준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역에서 하노이행 열차에 오른 사실을 이례적으로 곧바로 주민들에게 알렸다. 북-미 정상회담 하루 전엔 김 위원장이 실무협상팀 보고를 받는 사진을 <조선중앙통신>이 배포했다. 정상회담 성공의 확신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믿음의 토대는 북-미 실무협상의 진전이었을 것이다.
하노이 선언이 물거품이 된 뒤 트럼프는 “(실무팀이 작성한) 합의문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서명은 적절치 않았다”고 밝혔다. 또 워싱턴의 코언 청문회가 회담 결렬에 영향을 끼쳤고, 영변 아닌 다른 지역의 대규모 핵시설을 들이밀자 김정은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결과를 놓고도 사실과 다른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트럼프 성향으로 보면, 그가 김정은과 회담을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고 보긴 힘들다.
그러나 북-미 실무팀이 영변 핵을 중심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트럼프는 북한의 ‘모든’ 핵 활동을 동결하고 검증받으라는 ‘그랜드 바겐’(일괄타결) 옵션을 따로 준비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 <뉴욕 타임스>는 “(회담 전부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끄는 참모진 몇몇은 트럼프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봤다”고 보도했다. 실무협상 결과와 전혀 별개의 제안을 회담장에서 덜컥 내놓는 건 외교적으로 보면 ‘반칙’이다. 국제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해친다. 트럼프는 그걸 스스럼없이 했다. <로이터>는 “하노이 회담 취재에 35명의 기자를 투입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안갯속을 헤맸다”고 혀를 찼지만, 막상 회담장에서 준비된 것과 전혀 다른 얘기를 들은 김정은의 황당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김정은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정작 ‘신뢰할 수 없고 즉흥적인’ 건 트럼프가 훨씬 더하다.
북한뿐이 아니다. 한국 정부 역시 미국 정부 내부의 무모한 ‘그랜드 바겐’ 기류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단계적 접근을 요구하는 북한과 일괄타결을 말하는 미국이 모두 상대방 전략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는 취지로 말했다지만, 정보가 부족했던 건 한국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협상 기조나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과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북한 문제처럼 모든 정보가 안갯속에 갇힌 듯 모호한 사안은 보고 싶은 대로만 보려 하면 그렇게 보이는 것 같고, 결국 믿게 된다.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부 외교안보팀에 그런 기류가 강했던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곡사 활을 쏘며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맞다. 지금의 어려움은 극복해야 할 과제지, 정책 기조를 바꿀 변수는 아니다. ‘대화와 협상’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그러나 바람을 극복하려 해도 풍향과 풍속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북한의 사정을 냉정하게 짚어볼 때다.
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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