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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7 16:04 수정 : 2019.04.18 11:26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눈을 감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고발로 이 후보자는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눈을 감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고발로 이 후보자는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박찬수

이제 공직 후보자는 언론과 국회의 검증은 물론이고 검찰 수사까지 감수해야 한다. 정상적인 정치 궤도를 벗어난 ‘사법 과잉’이다. 인사 검증에 검찰 개입을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털어도 먼지 한톨 나오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고 정말 자부하는 걸까.

검찰이 16일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자유한국당이 재판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활용해 주식거래를 한 혐의로 이 후보자와 남편을 대검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야당은 금융위원회에도 같은 혐의로 조사를 요청했다. 이 후보자는 헌법재판관이 되든 안 되든 앞으로 상당 기간 검찰과 금융위 조사에 시달려야 한다. 공직 맡겠다고 나섰다가 모든 게 까발려지는 건 물론이고 지난 삶의 ‘위법 여부’까지 탈탈 털려야 하는 상황이니 참으로 희한하다.

고위 공직자 자질 검증을 위해 만든 인사청문 제도가 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9월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됐다 ‘과다 주식보유 논란’으로 사퇴한 이유정 변호사는 지금도 그때의 검찰 고발 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과 일부 언론은 ‘검찰 수사로 이유정 변호사의 불법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니 이미선 후보자의 주식거래 의혹도 검찰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이유정 변호사의 인사청문 과정에서 제기된 수억원의 부당이익 등 의혹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졌다. 검찰이 일부 사안(주가 폭락 전 매도해 8천만원 손실 회피)만 기소했고, 이 변호사는 무죄를 주장해 현재 재판에서 다투고 있다는 게 정확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유정 변호사에게 제기된 숱한 의혹들이 아닌, 기소된 사안만 갖고 그의 헌법재판관 자격을 따지는 게 맞을 법도 한데, 야당과 보수 언론은 여전히 ‘털어서 먼지 나는 건 맞지 않냐’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자신들은 털어도 먼지 한톨 나오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고 정말 자부하는 걸까.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에 대한 공격 역시 끈질기고 지나치다. 평생 집 없이 살다가 재개발지역 상가·아파트 분양권을 매입한 게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적절한 행동이었냐고 비판할 수는 있다. 서민들 보기엔 너무 많은 은행대출을 받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변인직을 그만둠으로써 ‘정치적 책임’을 졌으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닐까. 지난 주말 금융감독원은 ‘김 전 대변인의 은행 특혜대출 여부를 조사했지만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게 끝이 아니다. 검찰 수사가 또 기다리고 있다. 모든 ‘정치적 논란’을 검찰로 가져가는 자유한국당의 새로운 전략에 쌍수 들어 좋아할 이는 검찰뿐이다. 그런 정치인들이 검찰개혁을 하겠다고? 아마 코웃음을 칠 것이다.

김 전 대변인의 특혜대출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과 금융당국의 조사를 촉구했던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의 재산공개 목록을 보면, 서울에 집이 세 채(아내·아들 명의 포함)고 경기도엔 적지 않은 땅이 있다. 그 의원뿐 아니라 국회의원 다수가 다주택자다. 최근 <한겨레> 탐사보도에서 언급됐듯이, 도로 건설이나 예산 투입 등 부동산을 활용한 이해충돌 여지도 국회의원들에겐 적지 않다. 고위 공직 맡겠다고 나선 사람의 위법 여부를 수사하자고 하면, 그렇게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의 재산 운용에 문제는 없는지도 똑같이 한번 파헤쳐봐야 하는 게 아닐까.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뚜렷한 인사청문 제도의 변화는, 야당이 단순히 정치적 책임을 물어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제도를 ‘검찰 수사를 통한 장기간의 정치투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6년 전 이명박 정부 말기에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됐던 이동흡 후보자는 매달 수백만원의 특별활동비를 개인 계좌로 넣어 사용했다는 의혹 등으로 결국 낙마했다. 이 후보자는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이는 시민단체 고발에 따른 것이지 야당이 직접 고발한 건 아니었다. 지금은 다르다. 이젠 야당이 반대하는 공직 후보자는 언론과 국회의 검증은 물론이고 거의 대부분 검찰 수사를 감수해야 한다. 정상적인 정치 궤도를 벗어난 ‘사법 과잉’이다.

대통령의 인사권 전횡을 견제하고 공직자 자질을 검증한다는 인사청문회의 본래 취지는 사라졌다. 차기 선거를 겨냥한 여야의 당파적 이해가 가장 첨예하게 맞부닥치는 자리가 된 지 오래다. 이 책임에서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인사청문회를 관통하는 유일한 기준은 여야가 서로 자리를 맞바꾼 ‘내로남불’임을 누구나 안다.

그래도 최소한의 정치적 선은 지키는 게 바람직하다. 정치에 힘을 불어넣는 건 국민이다. 청와대든 국회든, 고위 공직 인선의 최종 결정은 국민에게 맡기면 된다. 선거는 그런 국민의 판단을 여야가 얼마나 받아들였는지 심판하는 자리다. 민심은 유능한 자를 택하는 게 아니라 오만한 자를 버린다는 걸 되새겼으면 한다.

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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