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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6 14:51 수정 : 2019.08.26 18:51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 집 여론도 사분오열시켜 버렸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아내는 “검찰개혁을 좌초시키려고 야당과 언론이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누가 장관 하겠나”라고 말했다. 두 딸의 의견, 특히 대학생인 둘째 딸의 생각은 달랐다. 둘째 딸은 “그 문제는 ‘빼박’(빼도 박도 못할 사안)이다. (조국 후보자는) 신뢰를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조국 논란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세대별 간극은 고스란히 우리 집에도 투영됐다.

이번 논란은 198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86세대’(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의 도덕적 우월감과 역사적 자부심을 흔드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듯싶다. 이미 86세대는 젊은 날의 헌신을 토대로 오랫동안 한국 사회 과실의 일부를 향유한 또 하나의 기득권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 비판에도 86세대가 건재할 수 있었던 건, 과거 치열하게 모색했던 사회 변혁의 전략적 고민이 분단과 권위주의가 끝나지 않은 현 시기에도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전략적 고민과 실천에 투철했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선 그런 거대 담론을 찾기 힘들다고 86세대는 생각한다. 지금 청년들이 맞닥뜨린 진학과 취업, 결혼 등 암울한 현실에 대한 공감은 크게 부족하다. <프로듀스 101>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별것 아닌 갈등’으로 눈물을 쏟는 연습생을 보며 “그렇게 울 일인가”라는 말에 “그게 저들에겐 얼마나 절실한지 아느냐”고 묻는 딸의 항변처럼, 그렇게 정서적 간극이 크다. 86세대도 아버지 세대와 비슷하게 내면으로는 연고주의와 학벌주의, 집단주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와 완연히 다르다.

내 또래가 주축인 카톡방엔 지난 주말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열린 대학생 촛불집회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게 올라온다.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의 계획된 집회라고 평가절하하는 글도 많다. 집회 주최자 일부가 보수 성향 또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이들일 순 있겠지만, 집회 취지엔 다수 학생들이 공감하고 있으리라 나는 본다. 이런 집회가 ‘촛불’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86세대는 말하지만, 학생들에겐 이 집회나 3년 전의 촛불집회나 ‘정의와 공정의 실현’을 요구한다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조국 후보자가 평소 사회 정의를 앞장서 강조했던 점에 비춰, 딸의 ‘스펙 관리’가 공정하지 못한 건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은 옳다. 그럼에도 내가 조 후보자를 무작정 비난할 수 없는 건, 그가 젊은 시절 ‘가진 자의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았고 교수가 된 이후에도 진보의 가치에 충실하려 노력한 걸 알기 때문이다.

숱한 의혹의 확산에도 논란이 격해지는 배경엔, 야당과 언론의 공세가 과연 적절한 수준인가 하는 질문이 놓여 있다. 조국을 향한 공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현 정부 첫 조각에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을 때, 어느 보수신문 칼럼의 제목은 ‘안경환보다 조국이 더 문제다’였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숱한 인사 참사에도 청와대 민정수석이 책임진 전례가 없는데, 새 정부 첫 조각에서 굳이 조국을 타깃으로 삼은 이유는 분명했다. 문재인 정권의 개혁 자체를 겨냥했던 것이다. 그런 사례가 쌓인 결과, 지금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조국을 검증하는 건 ‘진영 간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으로 비화했다.

물론, 과거의 헌신으로 지금의 절박한 현실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고려대 집회에서 나온 말 중 가장 아픈 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가 지켜지고 있느냐 묻는 어느 학생의 발언이었다. 뭐가 ‘공정’이고 ‘정의’냐고 그들에게 묻기 전에, 청년들이 약속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 상황에 대한 반성은 절실하다.

젊은층의 상실감과 냉소를 조국 후보자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 입시제도 아래서 어느 부모가 자유로울 수 있겠나’라는 말은 86세대에겐 통할지 모르나, 청년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한참 부족하다. 솔직하게 설명하고, 진솔하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 만약 장관이 된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믿음을 줘야 한다. 국회 청문회는 자유한국당과 대결의 장이 아니라, 청년들에 공감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는 장이 되길 바란다. 조국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다.

박찬수
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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