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지방 출장을 간다. 전주, 청주, 부산… 이런 식으로 지역을 연달아 가야 할 때, 니체가 아니었다면 출장지에서 잠을 자고 여유롭게 다른 도시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니체와 함께하고 난 이후 ‘외박’을 자제하게 된다. 미국으로 2주간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동네 캣대디에게 밥을 부탁하고 갔지만, 열흘쯤 지나자 니체는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이불에 변을 보았다. 이후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않게 되었다. 서울에 왔다가 새벽에 나가더라도 밤에는 니체와 함께 지낸다.
“대표님 주무시고 갈 거죠?”
“아, 안돼요. 외박 안하기로 약속했어요.”
“누구랑요?”
“니체랑요.”
“……”
독재국가도 아닌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여행의 자유를 제한했다. 불편하지 않냐고? 물론 불편하다. 그러나 윤리적 선택이란 ‘그냥 착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딜레마에 봉착했을 때 가장 피해가 작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여행의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내가 사랑하는 니체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집사앓이’도 안하게 될 테니까.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개인으로 자유를 천부적으로 가지게 되지만, 그 자유에 대한 책임 역시 개인의 몫이다.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 자유라면 그 제한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계절이든 사물이든 세상이 한 개인에게 어떤 색깔로 다가오는지는 각자의 성향, 살아온 역사, 관심사에 따라 다를 것이다. 보통 여름은 휴가, 바다, 해수욕 이런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계절이겠지만, 나 같은 활동가에게 여름은 ‘개고기 반대의 계절’이다. 직업상 매년 개고기 반대 활동을 해왔고 한국의 동물보호단체는 개고기 반대 운동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십년이 지나도 개고기 문제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기획은 개식용 찬반의 틀에서 이루어진다. 동물보호단체 쪽이 반대이고 찬성 쪽으로는 개식용 업자가 나온다. 방송사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댓글 중 개식용 옹호의 글이 꽤 많다는 점이다. 그들의 주장은 “왜 개만 먹지 말라고 하느냐, 소는 돼지는?” “보신탕 역시 하나의 음식문화니 존중해야 한다”라는 취지다. 그런데 과연 그런 댓글을 단 사람들은 개고기를 즐겨 먹을까? 간혹 이런 전제도 발견한다. “나도 개는 먹지 않지만….” 자신과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일에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일까. 이 정도면 사회심리적 분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니체와 함께 살면서 나는 스스로 여행의 자유를 포기했다. 이렇게 포근하고 따뜻한 니체가 내가 없는 동안 괴로워하지 않길 바라서다.
개식용 반대운동에 극렬하게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개식용 업자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아무런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은 다수의 사람이 ‘개를 존중하자’는 주장에 화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들 대다수는 개를 먹지도 않는다니!
개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하나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 음식문화에 대한 찬성과 반대. 제국주의와 서양인의 민족문화 탄압. 그러나 이 프레임은 사실상 정부가 개고기를 합법화할 수 없다는 객관적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인식적 장애물로 작용한다. 인간이 고기로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산업은 모두 세계적 표준에 맞춰 제도와 법을 정비한다. 개를 산업적으로 사육하고 운송하고 도살하는 기준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따라서 우리도 할 수 없다. 정부가 당장 개고기 금지를 못 하는 것은 업자들의 생계가 걸려있어서다. 당신들도 국민이니 봐주고 있는 것뿐이다. 따라서 합법화될 가능성이 없다면, 이 산업은 앞으로 사행길이다. 청와대 앞에서 국회 앞에서 시위할 때가 아니다. 빨리 업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개식용 업자도 아니고 개고기를 먹지도 않는데 인터넷에 개고기 찬성 댓글을 다는 당신. 그것이 당신의 소중한 의견일지라도 당신의 의견이 하나의 여론으로 형성되어 개식용 금지가 늦춰지고 업자들은 사행길로 접어드는 업을 접지도 못하고 망하게 된다면 어쩌지?
민주사회라고 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 말을 막을 권한 역시 누구에게도 없다. 그저 당신의 행동과 말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는 깊이 있게 생각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글·그림·사진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