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사람의 보호 본능을 일깨우는 표정을 짓는다. 그 비밀은 사람이 오랜 진화과정에서 선택한 특별한 안면 근육에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강아지나 무언가를 원하는 개가 주인을 바라보는 눈에는 무언가 강렬한 호소력이 있다. 큰 눈망울과 안쪽으로 치켜세운 눈썹이 슬픈 듯, 애원하는 듯, 놀란 듯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늑대에서 볼 수 없는 개의 이런 표정은 3만3000년 동안의 가축화 과정에서 사람의 선택으로 진화한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쥴리안 카민스키 영국 포츠머스 대 심리학자 등 미국과 영국 과학자들은 18일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결과를 밝혔다.
개는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에서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침팬지보다 뛰어나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거나 사람이 바라보는 대상에 주목하는 것은 그런 예다.
이런 소통의 핵심은 눈 맞춤이다. 늑대와 달리 개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와 맞닥뜨리면 주인의 눈을 바라본다. 연구자들은 개와 사람의 눈 맞춤에 숨어있는 비밀을 찾아 나섰다.
연구자들은 박제용으로 이미 죽은 치와와, 래브라도, 블러드하운드, 독일 셰퍼드, 시베리안 허스키, 잡종견 등 개 6마리와 늑대 4마리를 해부해 얼굴 근육을 비교했다. 또 동물원과 애견 보호소에서 개와 늑대의 다양한 표정을 촬영해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모든 개의 얼굴에는 늑대에 없는 특별한 근육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AU101’로 이름 붙인 이 근육은 얼굴 안쪽 눈썹을 들어 올리는 구실을 했다. “이 근육을 들어 올리면 눈이 더 크게 드러나고, 사람이 짓는 슬픈 표정과 비슷한 모습이 돼 사람의 돌봄 반응을 유도한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앞이마와 눈이 큰 어린 모습의 개를 선호한다. 눈 근육의 작은 변화가 이런 ‘강아지 눈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늑대(오른쪽)에는 거의 없고 개에 발달한 얼굴 근육. 눈 표정을 극대화하는 기능을 한다. 쥴리안 카민스키 외 (2019) PNAS 제공.
늑대는 이런 근육이 거의 없었고, 가장 원시적인 개 품종인 시베리안 허스키도 다른 개보다 늑대 쪽에 가까웠다. 실제로 개와 늑대의 표정을 촬영한 영상에서도 개는 늑대보다 훨씬 자주 강하게 눈썹을 들어 올리는 표정을 지었다. 카민스키는 2013년 발표한 연구에서 안쪽 눈썹을 자주 들어 올리는 표정을 짓는 애견 보호소 개일수록 빨리 입양된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가축화 과정에서 개는 의도적으로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한 표정을 만들어낸 걸까. 연구자들은 “개의 표현력 풍부한 눈썹 근육은 사람이 가축화 과정에서 우연히 선호해 선택되었을 뿐”이라고 논문에 적었다.
눈썹을 올리는 근육이 우연히 돌연변이로 출현했고, 귀엽고 슬퍼 보이는 이런 모습을 한 개를 다른 이의 표정을 읽는 데 능통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기르게 됐다는 얘기다. 연구자들은 “고양이나 말 등 다른 가축과 다른 품종의 개에서 이런 사람의 선택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후속 연구 과제”라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uliane Kaminski et al, Evolution of facial muscle anatomy in dogs,
PNAS (2019) https://www.pnas.org/cgi/doi/10.1073/pnas.1820653116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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