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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기린의 긴 목, 높은 곳 나뭇잎 먹으려고? 아니다, 짝짓기 때문이다

등록 2022-06-03 10:29수정 2022-06-07 17:26

[애니멀피플]
중국 신장서 1억7천만년 전 기린 화석 발견, 머리에 헬멧 형태 큰 뿔과 굵은 경추
수컷끼리 철퇴처럼 머리 휘둘러 짝짓기 싸움…높은 먹이 확보는 부수 효과
초기 기린 조상이 커다란 뿔로 박치기하며 겨루는 상상도. 왕유, 궈샤오충 제공.
초기 기린 조상이 커다란 뿔로 박치기하며 겨루는 상상도. 왕유, 궈샤오충 제공.

기린은 경쟁자 초식동물을 멀찍이 따돌리고 4∼5m 높이의 부드러운 나뭇잎을 뜯어먹는다. 지상에서 가장 긴 2m가 훌쩍 넘는 기린의 목이 진화한 것은 이처럼 먹이 경쟁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찰스 다윈 이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긴 목이 먹이 경쟁이 아닌 암컷을 차지하려는 수컷끼리의 싸움 과정에서 진화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선사시대 기린의 화석을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린의 긴 목은 높은 나뭇잎을 확보하기보다 수컷끼리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진화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열전에 돌입하기 직전 수컷 기린이 긴 목을 맞대고 있다. 루카 갈루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기린의 긴 목은 높은 나뭇잎을 확보하기보다 수컷끼리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진화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열전에 돌입하기 직전 수컷 기린이 긴 목을 맞대고 있다. 루카 갈루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왕 시치 중국 과학아카데미 고생물학자 등은 3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긴 목을 이용한 싸움이 기린의 긴 목이 진화한 주요 원동력이며 높은 먹이를 뜯어 먹는 것은 이 진화의 부차적인 효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중가르 분지에서 발굴한 1억7000만년 전 초기 기린 조상의 머리와 목뼈 화석을 분석한 결과 박치기에 최적화한 매우 독특한 모습을 발견했다.

교신저자인 덩 타오 과학아카데미 척추동물 고생물학 및 고인류학 연구소 교수는 “머리 한가운데 접시 모양의 커다란 뿔(오시콘)이 나 있다”며 “이 화석동물에 신화 속 외뿔 동물인 해치를 따 ‘시치’란 이름을 붙였다”고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 동물은 목이 길고 이와 내이 구조가 기린의 조상임을 나타냈고 전체적인 형태는 숲에 사는 기린 친척인 오카피와 비슷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머리의 모습은 아주 달랐다.

초기 기린 조상 화석의 두개골과 경추 화석 모습. 왕 시치 외 (2022) ‘사이언스’ 제공.
초기 기린 조상 화석의 두개골과 경추 화석 모습. 왕 시치 외 (2022) ‘사이언스’ 제공.

기린 조상의 두개골은 윗부분을 다리미로 다려놓은 것처럼 납작했다. 연구자들은 납작한 뼈 위에 케라틴이 덮여 있었는데 케라틴층이 자라면서 낡은 부분이 벗겨져 나가면서 돔 모양의 ‘뿔’을 형성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헬멧 형태의 이 뿔을 수직 방향에서 지탱하는 건 두껍고 정교하게 연결된 경추였다. 왕 박사는 “현생 기린과 화석 기린의 두개골과 목의 형태는 아주 다르지만 모두 수컷의 짝짓기 싸움과 관련이 있으며 극단적인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육중한 뿔이 달린 두개골을 2∼3m 길이의 목을 이용해 휘둘러 상대의 약한 부위를 가격하는 건 현생 기린 수컷이 싸울 때도 쓰는 방법이다. 마치 철퇴로 치는 것 같은 이 공격 방법은 목이 길수록 위력이 커진다.

원시 기린(앞)과 현생 기린이 긴 목을 이용해 짝짓기 싸움을 그리는 상상도. 왕유, 궈샤오충 제공.
원시 기린(앞)과 현생 기린이 긴 목을 이용해 짝짓기 싸움을 그리는 상상도. 왕유, 궈샤오충 제공.

연구자들은 “수컷 기린은 목이 길수록 지배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짝짓기 경쟁은 긴 목이 진화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뿔을 이용한 싸움은 반추동물 사이에 흔히 볼 수 있지만 이 화석 기린의 골격구조로 볼 때 사향소 수컷끼리의 박치기 때보다 2배가량의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원시 기린이 살았던 초원 환경의 상상도. 중가르 분지에서 발굴된 화석을 토대로 당시의 동물들을 묘사했다. 궈샤오충 제공.
원시 기린이 살았던 초원 환경의 상상도. 중가르 분지에서 발굴된 화석을 토대로 당시의 동물들을 묘사했다. 궈샤오충 제공.

연구자들은 화석 기린의 치아를 분석해 이 동물이 메마르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았음을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멍 진 박사는 “치아 에나멜층의 동위원소 분석 결과 이 동물은 개방 초지에 살면서 주기적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며 “수컷끼리의 격렬한 싸움은 이런 거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현생 기린도 700만년 전 동아프리카의 열대림이 초원으로 바뀐 시기에 출현했다” 덧붙였다.

인용 논문: Science, DOI: 10.1126/science.abl831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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