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몸 빛깔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짝을 찾는 데는 유리하지만 포식자의 눈길을 끈다. 포식자가 없는 환경에서 외래종 카멜레온은 마음껏 잠재된 색깔을 과시한다. 위는 수컷 잭슨카멜레온이고 아래는 수컷에 실망해 칙칙한 색깔로 변신한 암컷이다. 마틴 화이팅 외 (2022)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1972년 하와이의 한 애완동물 수입상은 동아프리카 케냐에서 잭슨카멜레온 36마리를 들여왔다. 그는 장거리 이동에 지친 파충류가 숨을 돌리도록 오아후 섬 자택 정원에 이들을 잠시 풀어놓았다.
그러나 카멜레온이 얼마나 빨리 회복해 달아나는지 과소평가한 대가로 하와이에는 토종 나무 달팽이 등 희귀 동물을 잡아먹는 골치 아픈 침입종이 한 종 더 늘었다. 꼭 50년 전 일어난 이 사고는 생물학자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진화실험 기회를 제공했다.
케냐와 탄자니아 등 동아프리카 고유종인 잭슨카멜레온 수컷. 이마에 뿔 3개가 나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색깔을 통해 사회적 과시 행동을 하는 동물이 이제까지 겪던 포식자가 사라진 새로운 환경에 도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동물행동학자인 마틴 화이팅 오스트레일리아 맥콰리대 교수 등은 케냐와 하와이의 잭슨카멜레온이 경쟁자와 만나거나 짝짓기 상대를 만났을 때, 그리고 포식자와 맞닥뜨렸을 때 몸의 색깔 변화가 어느 정도 일어나는지 분광계를 이용해 측정해 비교했다.
수컷끼리 겨루는 잭슨카멜레온. 몸 빛깔이 선명한 초록빛으로 바뀌었다. 마틴 화이팅, 맥콰리대 제공.
동아프리카 고유종인 잭슨카멜레온은 수컷이 38㎝까지 자라는 제법 큰 파충류인데 수컷의 이마에는 초식공룡 트리케라톱스와 비슷한 뿔 3개가 달려 있다. 경쟁자를 만나면 뿔싸움을 벌여 관통상을 입히기도 한다.
이들은 경쟁자에게 경고하거나 암컷의 환심을 사려고 몸 색깔을 재빨리 바꾸는 것으로 유명하다. 흥분하면 칙칙한 초록색이던 몸 빛깔이 갑자기 밝은 황록색으로 바뀐다.
대결에서 이긴 수컷(A)과 칙칙한 초록빛으로 바뀐 패배자(B). 마틴 화이팅 외 (2022)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일반적으로 동물의 몸 빛깔이 밝고 화려하게 바뀌면 시력이 날카로운 포식자의 눈에 잘 띈다. 당연히 생존율이 떨어질 것이고 그런 변화를 추구한 개체는 자손을 남기지 못해 덜 선명한 색깔의 개체가 늘 것이다. 물론 눈에 띄는 색깔이 주는 이득도 있다. 암컷의 눈을 사로잡고 경쟁자 수컷을 물리쳐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화이팅 교수는 화려한 변신이 부를 손해는 줄이고 이득을 늘이기 위한 적응의 사례로 남아프리카의 도마뱀과 남미의 야생 구피를 들었다. 도마뱀은 화려한 장식을 배 밑이나 목 아래 감추고 필요할 때만 드러내 과시한다. 또 포식자가 사는 개울 구간일수록 구피 수컷의 꼬리는 덜 화려하다.
케냐의 잭슨카멜레온은 맹금류, 뱀, 포유류 등 다양한 포식자에 먹힌다. 그러나 화산섬인 하와이에는 야생에 풀려난 집고양이 빼고는 이런 포식자가 없다.
짝짓기 구애 중인 수컷(위)과 이를 받아들인 암컷 잭슨카멜레온. 마틴 화이팅, 맥콰리대 제공.
연구자들이 두 지역 카멜레온의 색깔 변신을 비교한 결과 하와이 쪽이 수컷끼리의 대결과 짝짓기 때 훨씬 밝은 색깔을 띠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포식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하와이의 카멜레온이 주변 배경에서 몸 색깔이 더 두드러졌다.
연구자들은 “하와이에 도입된 카멜레온은 불과 50년 만에 지역에 적응해 동료에게 돋보이는 한편 과시와 포식자 회피 때 색깔 차이가 더 크도록 진화한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화이팅 교수는 “더 밝은 신호를 내는 것이 급속한 진화의 결과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면서도 “색깔 변화가 형질의 가변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가변성 자체도 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5월 11일 치에 실렸다.
인용 논문:
Science Advances, DOI: 10.1126/sciadv.abn24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