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칼레도니아까마귀는 인간을 제외한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갈고리를 만들어 쓰는 동물로 알려졌다. 크리스티안 러츠 제공
‘베티'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까마귀다. 2002년 동물인지실험에서 베티는 갈고리를 만들어 원기둥 속의 먹이를 빼내는 데 성공했다. 갈고리형 도구를 만드는 능력은 현재까지 인간 말고는 발견된 적이 없다.
베티를 전후로 뉴칼레도니아까마귀의 도구 사용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뤄졌다. 뉴칼레도니아까마귀들은 정교한 갈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건 동물인지행동학계의 정설이다.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이 까마귀는 나이가 들면서 경험이 쌓일수록 갈고리를 발전시켜 나가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에는 나이가 들고 노련한 까마귀일수록 필요한 만큼만 ‘대충’ 갈고리를 만든다는 분석이 나왔다.
1996년 게빈 훈트 박사는 뉴칼레도니아까마귀들이 사냥을 위해 갈고리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5년에는 크리스티안 러츠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뉴칼레도니아까마귀들이 재료의 속성에 따라 다양한 도구를 제작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지난 12월7일 크리스티안 러츠 교수는 다시 한 번 까마귀에 대한 논문을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나이 또한 도구 제작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베티가 갈고리를 이용해 먹이를 꺼내는 실험.
러츠 교수의 논문을 보면, 뉴칼레도니아까마귀들은 ‘자르기’와 ‘구부리기’를 통해 매우 정교한 갈고리를 제작할 수 있다. ‘자르기’ 방법은 막대의 한 기점을 중심으로 위와 아래를 베어내어 갈고리를 만드는 방법이다. 세심한 조각 능력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갈고리를 깊고 날카롭게 만들 수 있다.
‘구부리기’는 막대의 한 쪽 끝은 눌러 고리를 만드는 방법이다. ‘자르기’ 방법으로 만든 갈고리보다 얕고 뭉뚝하지만 쉽고 간단하다. 까마귀들은 두 가지 방법을 적절하게 혼용하기도 했다.
뉴칼레도니아까마귀들은 죽은 나뭇더미나 우거진 식물 사이에 숨은 벌레를 사냥하기 위해 갈고리를 사용한다. 따라서 더 깊고 굴곡진 갈고리일수록 더 빠르고 정확하게 사냥할 수 있다. 까마귀는 실패와 경험이 쌓여갈수록 더 정교한 갈고리를 만드는 법을 학습해 나갈 수 있다. 또한 스스로 터득한 가장 효과적인 갈고리 제작 방법으로 제작 방식이 고착되어 가는 경향을 보였다.
뉴칼레도니아까마귀가 갈고리를 이용해 벌레를 사냥하고 있다. 크리스티안 러츠 제공
이러한 경향에 따라 크리스티안 러츠 교수 연구팀은 까마귀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정교하고 튼튼한 갈고리를 만들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지만 연구 결과, 나이가 든 까마귀는 오히려 안쪽이 깊지 않은(덜 굴곡진) 갈고리를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련한 까마귀들은 ‘대충’ 갈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연구팀은 노련한 까마귀는 경험을 통해 갈고리를 만들기 위한 수고를 줄이는 방법을 학습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갈고리를 정교하게 만들면서 많은 시간을 쓰느니 적당히 깊은 갈고리를 만들어 사용하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갈고리가 너무 굴곡지면 좁은 구멍에서 쉽게 부러질 수 있다. 크리스티안 러츠 교수는 “무조건 깊고 정교한 갈고리를 만드는 것이 야생에 최적화된 기술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슬 교육연수생 sb02208@naver.com, 남종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