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등장하기 훨씬 전인 2억년 전 나비목 곤충의 비늘 화석을 찍은 전자현미경 사진. 바스 반 데 스쿠트부루헤 제공.
나비와 꽃은 서로를 돕는 대표적인 공생 생물이다. 나비는 꽃가루를 옮겨 식물의 번식을 돕고 대신 영양가 풍부한 꽃꿀을 먹는다. 나비와 나방은 꽃꿀을 효과적으로 빨기 위해 대롱 모양의 긴 대롱을 진화시켰다.
이런 상식을 뒤집는 발견이 이뤄졌다. 반 엘디지크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원생(연구 당시)은 독일에서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 지층에서 꽃가루 화석을 찾고 있었다. 땅속에서 확보한 퇴적암을 분쇄해 산에 녹인 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던 중 낯선 물체를 발견했다. 원시 나방의 비늘이었다.
나비목(나방과 나비)은 매우 인기 있는 연구분야이지만 진화 역사는 베일에 가려있다. 화석이 드물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정설은 최초의 꽃이 피는 식물이 등장한 1억3000만년 전 최초의 나비목이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다.
화석으로 발견된 원시 나방과 같은 무리에 속하는 대롱 입이 있는 현생 나방의 표본. 호세인 라자에이 제공.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발견한 나방 화석은 그보다 7000만년 전인 2억년 전의 퇴적층에서 나왔다. 발견한 비늘 화석은 70개였는데, 이 가운데 20개는 속이 빈 형태였다. 비늘이 다양한 것은 여러 종의 나비목 곤충에서 떨어진 비늘이 낮은 곳에 쓸려 들어 쌓였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2억년 전에 이미 다양한 나비목 곤충이 있었다는 것이다.
현생 나비목과 대조해 보면 긴 대롱 입을 지닌 나비목에서 모두 비늘의 중앙이 비어있다.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가장 오랜 나비목 곤충은 긴 대롱을 둘둘 만 형태의 입을 가졌을 것으로 보았다.
대롱 입을 지닌 현생 나방의 대롱과 거기 달린 비늘의 주사전자현미경 사진. 호세인 라자에이 제공.
2억년 전 원시 나방의 비늘. 위 사진의 비늘 형태와 유사하다. 티모 반 엘디지크 제공.
그렇다면 꽃꿀도 아직 없을 때 대롱 입은 왜 진화했을까. 연구자들은 “덥고 건조하던 시기에 효율적으로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대롱 형태의 입이 진화했을 것”이라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이후 원시 나비는 소나무 같은 겉씨식물이 공기 중의 꽃가루를 붙잡으려고 분비하는 당분 방울을 섭취했고, 백악기에 꽃이 피는 식물이 등장하자 꽃꿀을 빠는 본격적인 공생관계를 형성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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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imo J. B. van Eldijk et al, A Triassic-Jurassic window into the evolution of Lepidoptera,
Sci. Adv. 2018;4: e1701568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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