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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수컷 귀뚜라미가 노래 잘하고 길 잘찾는 까닭

등록 2018-08-01 07:34수정 2018-08-01 10:11

[애니멀피플] 노정래의 동물원탐험
호랑이, 스라소니 등 수컷 활동영역 넓어
암컷과 수컷의 서로 다른 번식전략과 연관
노래를 부르는 귀뚜라미는 수컷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노래를 부르는 귀뚜라미는 수컷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동물원에서 생활하는 수컷은 발정기 때 암컷에게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애태우지 않는다. 직원들이 알아서 짝을 맞춰 줘서 그렇다. 하지만 야생에서의 삶은 치열한 전쟁터다. 서로 먹고 먹히는 전쟁터에서 수컷이 대를 이으려면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

여행지에서 맛있는 식당을 찾으려면 그 지역 주민에게 물어보면 금세 안다. 주민은 그 동네를 손바닥 보듯 뭐든지 척척 잘 안다. 흔히 하는 말로 그 사람의 ‘나와바리’다. ‘나와바리’란 영향력이나 세력이 미치는 공간이나 영역을 말한다. 잘 아는 생활 영역이란 말도 된다. 동물도 이런 생활 영역이 있을까? 있다면 암수가 같을까?

대부분의 동물은 다니던 길로 다닌다. 산토끼가 대표적이며, 고라니, 멧돼지 등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밀렵꾼은 이 길목에 올무나 덫을 놔 잡아낸다. 같은 길로 다녀 언젠가 걸려들게 돼 있다. 동물들은 보통 땐 모르는 길은 낯설어 좀처럼 벗어나질 않지만, 위험한 상황이 닥쳐 도망갈 땐 하는 수 없이 벗어나기도 한다. 평소에 모르는 길을 가려면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뗀다. 몇 번 다니다 익숙해지면 제집 다니듯 들락거리며 결국 영역이 넓어진다. 늘 다니는 길은 훤히 꿰뚫어 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현상은 육식동물, 초식동물, 심지어 곤충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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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의 활동영역이 넓은 이유

동물 대부분 종에서 수컷의 활동영역이 암컷보다 넓다. 멸종위기종이며 육식동물인 호랑이를 예로 들면, 타이에서 진행된 연구에서 수컷은 267~294km²로 암컷의 70~84km²보다 넓다. 미국 위스콘신주 북서부에 서식하는 스라소니 역시 수컷은 60.4km²로 암컷의 28.5km²보다 넓다는 연구 논문이 있다. 야생고양이 연구에서 수컷의 활동영역이 암컷보다 넓어 수컷이 0.01km², 암컷은 0.001km²로 보고됐다.

초식동물도 마찬가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퐁골라 지역에 서식하는 아프리카코끼리 연구에서 여름에 활동영역이 수컷은 36.6~40km²로 암컷무리의 17.5~20.6km²보다 넓다. 겨울에도 수컷은 61.2~71.5km²로 암컷무리의 36.7km²보다 넓다. 케냐 남부지역에 서식하는 코끼리 연구에서도 수컷이 더 활발했다. 국내 연구 결과도 있다. 고라니 수컷은 3.30km²로 암컷의 2.25km²보다 넓다. 동물의 활동영역은 계절에 따라, 마실 물이 있는지, 먹잇감의 많고 적음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도 암컷보다 수컷에서 넓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의 대부분 종에서 수컷은 암컷보다 활동영역이 넓은 편이다. 시베리아호랑이가 풀밭을 걷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일반적으로 포유류의 대부분 종에서 수컷은 암컷보다 활동영역이 넓은 편이다. 시베리아호랑이가 풀밭을 걷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귀뚜라미는 가을을 상징하는 대표 곤충이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 귀뚜라미 노랫소리도 절정에 이른다. 예상과 달리 귀뚜라미는 여름에 땅속에 있던 알에서 새끼로 깨어난다. 깨어난 수컷은 탈피를 거쳐 어른이 된다. 이 과정에 주위를 돌아다니며 은신처가 어디에 있는지, 먹이가 어디에 많은지, 경쟁자인 수컷이 주위에 얼쩡거리는지, 알에서 깨어난 어린 암컷 귀뚜라미가 어디에 있는지, 이 암컷들이 주로 어디로 다니는지 파악한다. 귀뚜라미 수컷은 따로 영역을 정해놓고 살진 않지만, 텃세 부릴 만한 곳이 있다. 수컷은 그 곳을 훤히 잘 안다. 수컷이 위세 부릴 만한 곳이 생길 무렵이면 가을이 되고 슬슬 노랫소리로 자기를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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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의 노래를 듣는 이는?

암컷도 수컷처럼 탈피를 거쳐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됐어도 수컷만큼 활발하게 다니지 않는다. 동네 총각 귀뚜라미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고 어떤 수컷이 신랑감으로 쓸 만한지 검토만 하면 된다. 굳이 텃세 부릴만한 곳을 만들 필요가 없다. 암컷은 수컷을 불러 모으지 않아도 되니 최고의 음치로 진화해 노랠 못한다. 하지만 수컷은 기를 쓰고 목이 터져라 노랠 불러야 한다. 자기에게 홀딱 반해 결혼하겠다는 신호를 보낼 암컷이 나타날 때까지 노래는 메들리로 계속된다. 암컷 주위에 다른 수컷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하니 주위도 늘 살펴야 한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수컷은 텃세 부리는 곳을 손바닥 보듯 자세히 알게 된다. 암컷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길치가 됐다. 번식기 때 영역을 정해놓고 사는 조류의 수컷도 마찬가지다.

북극곰은 수컷이 단독 생활을 하는 대표적인 포유류다. 캐나다 처칠에서 2016년 10월 한 북극곰이 길을 찾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북극곰은 수컷이 단독 생활을 하는 대표적인 포유류다. 캐나다 처칠에서 2016년 10월 한 북극곰이 길을 찾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원숭이처럼 암수가 함께 무리 지어 사는 종도 있지만, 대부분의 포유류는 암수가 함께 살지 않는다. 발정기 때만 짝짓기를 위해 함께 살 뿐이다. 수컷은 홀로 살거나 수컷끼리 모여 살다 무리에서 이탈한 암컷이 어디에 있는지, 주위에 맞장 떠 몰아내야 할 수컷이 있는지, 먹잇감이 어디에 많고 어디로 이동하는지 늘 살펴서 파악하여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쭉정이 수컷으로 낙인찍혀 자기를 선택해줄 암컷이 없다. 노총각으로 늙어 죽느냐, 대를 잇느냐 심각한 문제라 소홀히 할 수 없다. 수컷은 자기 활동영역을 구석구석 잘 알아야 한다. 결국 수컷은 자연스럽게 감각과 방향만으로도 길을 잘 알게 된다. 반면에 수컷과 다른 삶을 사는 암컷의 길치는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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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타워도 암수가 달라야 한다

동물원에서 생활하는 야생동물과 반려동물이 겪는 무료함을 날려줄 행동풍부화(Behavioral enrichment)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에서 적용한 지 한참 됐다. 동물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자는 취지다. 그 동물이 원래 살던 환경처럼 만들어 줘 무료함을 잊게 하고 본래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게 돕는 것이다. 적용 시 수컷의 활동영역이 암컷보다 넓으니 이 점도 고려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고양이에게 캣타워를 설치해줄 때 암컷과 수컷은 달라야 한다. 동물원도 모든 종에서 똑같은 형태로 적용할 수 없고 활동영역이 넓은 종일수록 세심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활동영역이 넓으면 넓을수록 다양한 환경이나 설치물이 필요하다. 수컷만 따로 있는 공간이라면 수컷이 암컷보다 더 활동적이니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동물이 사는 방사장이 한정된 공간이라 그렇다. 관리만 하던 과거의 동물원은 잊고 보존 생물학 차원에서 동물원을 운영할 시대다.

노정래 전 서울동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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