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모래 해변에서 사는 유령게는 남의 굴을 차지한 뒤 상대를 쫓아내는 싸움꾼이다. 집게발 이외의 새로운 발성 기관이 진화한 이유일 것이다. 한스 힐레베르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집이나 먹이를 빼앗으려는 상대에게 유령게는 집게발을 휘두르며 낮고 거친 소리를 낸다. 마치 개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경고음을 내는 곳은 놀랍게도 먹이를 잘게 부수는 위 앞부분의 분쇄기관이다.
제니퍼 테일러 미국 스크립스 해양연구원 생물학자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영국 왕립학회보 비’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유령게가 소화기관에서 내는 소리로 소통한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유령게의 ‘위장 신호’가 먹이를 부수기 위해 진화한 기존의 기관을 새로운 용도로 재활용한 진화의 또 다른 사례”라고 밝혔다.
대서양유령게는 미국부터 브라질까지 대서양 모래 해변에 구멍을 뚫고 사는 육상 게로, 우리나라에 사는 달랑게와 같은 속이다. 이들은 직접 굴을 파기보다 남이 파놓은 굴을 차지하고, 접근하는 상대를 집게발 마찰음으로 경고해 쫓아내는 모래밭의 싸움꾼이다.
유령게와 같은 속인 우리나라의 달랑게. 주로 해변 모래밭에 살며 가끔 구멍 속에 들어가 아가미를 적신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연구자들은 “유령게는 집게발을 움츠려 집게발 뿌리 부근의 홈에 비벼 마찰음을 내기 때문에 집게발로 경고 신호를 내면서 동시에 무기로 쓰지 못한다”며 “먼 곳의 상대는 집게발 마찰음으로 경고하지만, 가까이 접근한 상대를 위협하려면 집게발을 자유롭게 쓸 또 다른 경고 수단이 필요했다”며 이런 경고 신호가 진화한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레이저 도플러 진동계와 형광투시법을 이용해 살아있는 유령게가 눈앞에 위험이 닥치면 위장 앞부분에 달린 먹이 분쇄기관에서 2㎑의 낮고 거친 소리를 내는 사실을 확인했다. 종종 입에서 거품을 내는 것과 동시에 이런 경고음을 냈다.
연구자들은 “유령게가 위장에서 내는 마찰음은 개가 으르렁거리며 자신이 얼마나 크고 화가 났는지를 알려주는 것처럼 상대에게 정보를 전달한다”고 논문에 적었다. 유령게의 위장 앞부분에는 먹이를 잘게 부수는 위 분쇄기관이 있는데, 옆 이의 빗살구조를 양쪽의 중간 이와 마찰해 경고음을 냈다.
유령게 위장 속 분쇄기관의 얼개. 옆 위(L)의 빗살구조를 중간 이(M)와 마찰해 소리를 낸다. 빗살구조는 위아래 방향으로 움직인다(b). 제니퍼 테일러 외 (2019) ‘영국 왕립협회보 비’ 제공.
연구자들은 유령게가 소화기관을 발성 기관으로 이용한 것과 같은 ‘재활용’은 동물 사이에 흔하다고 밝혔다. 사람 등 많은 척추동물이 호흡기관을 발성에 쓴다. 멕시코 조기는 부레를 이용해 큰 소리를 내며(▶관련 기사:
‘멕시코 조기’ 산란기 합창, 돌고래 청력 손상 수준), 곤충 등 많은 절지동물은 날개나 다리 등을 마찰시켜 소리 신호를 낸다.
유령게가 위장 마찰로 일으키는 소리의 주파수는 동료 유령게를 비롯해 포식자인 너구리나 새가 들을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있다. 연구자들은 “위장 속 분쇄기관은 새와 공룡을 비롯해 갑각류와 절지동물에 흔하다”며 “유령게처럼 위장 분쇄기관으로 소리를 내는 동물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aylor JRA, deVries MS, Elias DO. 2019 Growling from the gut: co-option of the gastric mill for acoustic communication in ghost crabs.
Proc. R. Soc. B 286: 20191161. http://dx.doi.org/10.1098/rspb.2019.1161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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