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의 줄무늬는 과학계 최대 수수께끼의 하나다. 논쟁은 100년 넘게 이어진다. 얼룩말이 검은 바탕에 흰 줄무늬가 흰 바탕에 검은 바탕인지의 논란은 해결됐다. 얼룩말은 검은 바탕에 흰 줄무늬가 났다. 픽사베이 제공.
얼룩말에 검고 흰 줄무늬가 진화한 이유를 놓고 생물학자들은 100년 넘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일찍이 찰스 다윈은 “눈에 잘 띄는 줄무늬엔 어떤 보호 기능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발견한 알프레드 월러스는 1896년 은폐 가설을 내놨다. 얼룩말의 줄무늬는 윤곽을 흐려 어스름에 사냥에 나선 사자를 헷갈리게 한다는 내용이다.
얼룩말의 줄무늬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은폐 가설에 더해 열 조절 가설, 소통 가설, 해충 회피 가설 등이 이어졌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이론의 하나는 해충 회피 가설로 얼룩말의 줄무늬가 말파리, 체체파리 등 피를 빠는 곤충이 덤벼들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가 크다는 실험결과가 잇따랐다(▶
얼룩말 줄무늬 비밀, 사자보다 흡혈 파리).
그러나 월러스의 가설을 발전시킨 움직임 교란 가설도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얼룩말이 무리 지어 달리면 선명한 얼룩무늬가 포식자가 사냥하려는 특정 개체의 크기와 속도,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주장이다.
얼룩말의 줄무늬로 도색한 1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선박. 이동 중 방향과 속도를 숨기기 위한 목적이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실제로 이 가설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과 미국의 선박을 얼룩말 무늬로 도색하는 실전 적용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움직이는 선명한 무늬보다는 칙칙한 잿빛 위장이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특히 이 연구는 시민 과학을 이용해 가장 포괄적인 실험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애나 휴스 영국 에식스 대 박사 등은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컴퓨터 게임을 이용한 대규모 참여연구 결과 “움직이는 동물이 포식자로부터 최대한 보호받으려면 윤곽이 흐릿하고 특색이 없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이 쓴 방법은
‘숨은 벌레 찾기’ 컴퓨터 게임으로 화면에 나타난 다양한 무늬와 속도의 벌레를 참가자가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잡아내는 내용이다. 어떤 무늬의 움직이는 벌레가 포식자 노릇을 하는 사람 눈에 잘 띄는지 알아보았다.
자연계에서 포식자로 인한 먹이 동물의 무늬 진화과정을 흉내 낸 컴퓨터 프로그램 시작 화면.
생태공원인 에덴 프로젝트에 온 7만7000여 명이 이 게임에 참여해 150만 마리의 벌레를 추적했다. 프로그램 속 벌레는 실제 생태계에서처럼 사람에게 포착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긴 쪽으로 무늬를 진화시켜 나갔다.
연구자들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벌레들은 무늬를 잃는 쪽으로 진화했고 점차 배경 속에 녹아들어 가는 모습이 됐다”고 밝혔다. 포식자의 눈을 헷갈리게 하는 것은 선명한 무늬가 아니라 배경과 어울리는 단조로운 색깔이라는 얘기다.
100년 넘는 얼룩말 무늬 논쟁에서 요즘 가장 유력한 것은 말파리 등 흡혈 해충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픽사베이 제공.
휴 박사는 “이제까지 움직임 교란 가설을 증명한 많은 연구가 한정된 범위의 무늬를 이용한 소규모 시험으로 이뤄졌다”며 “거의 무한대의 다양한 무늬를 이용한 이번 연구결과 달리는 얼룩말은 포식자에게 방향과 속도를 헷갈리게 한다는 이제까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호받는다”고 말했다.
물론 연구자들도 자연계에는 줄무늬로 포식자를 현혹하는 사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과 사람과 포식자의 시각이 같은지 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DOI: 10.1098/rspb.2020.282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