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아깽이’ 보살피던 고시생은 어떻게 ‘동물 변호사’가 됐나

등록 2021-07-06 18:26수정 2021-12-01 14:28

[애니멀피플] 김지숙이 만난 애니멀피플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권유림 대표
2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만난 권유림 변호사. 그는 케어 박소연 안락사 사건, 애린원 철거, 서울대 복제견 실험 등의 굵직한 동물권 사건에 참여해왔다. 김지숙 기자
2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만난 권유림 변호사. 그는 케어 박소연 안락사 사건, 애린원 철거, 서울대 복제견 실험 등의 굵직한 동물권 사건에 참여해왔다. 김지숙 기자

▶▶댕기자의 애피레터 구독 신청 https://bit.ly/36buVC3

권유림 변호사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9월 애린원 철거 현장에서였다. 경기 포천시에 있던 사설보호소 애린원은 ‘개들의 지옥’이라 불리던 곳이다. 보호소 소장이 좋은 마음으로 유기견 한 두 마리를 거두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1천여 마리가 무리지어 살게 된 곳이었다. ‘동물판의 숙제’라고도 불렸던 그곳이 20여 년만에 철거되던 날, 권 변호사도 그 앞을 지켰다.

그는 취재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변호사다. 지난 5월 어느 일요일 포천 관음사에서 열린 ‘로드킬·학대 동물을 위한 천도재’ 행사에서 다시 마주쳤을 땐 그에 대한 개인적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권 변호사에게 동물은 어떤 존재일까. 그는 어떻게 말 못하는 동물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됐을까. 2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만난 권유림 변호사는 ‘신림동 시절’로 말문을 뗐다.

_______
아기 길고양이 보살피던 고시준비생

“고시생 시절 우연찮게 아기 고양이 우유 먹이는 봉사를 하게 됐어요. 어미가 보일러실 같은 곳에 새끼를 낳아서 포획되면 모두 유기동물 지정병원에 들어가거든요. 눈도 못 뗀 새끼 서너 마리를 데려와서 임시보호 하다 입양 보내고 했죠. 그러다 보니 자꾸 병원에서 연락이 왔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지만, 당시 그가 새 반려인을 찾아준 고양이는 40~50마리에 이른다.

스스로의 앞날도 불투명하던 시절 어떻게 길 위의 동물에까지 마음이 갔을까. 그는 모두 ‘고시 동지’인 반려묘 누리와 바다 덕이라고 했다. “사실 고양이는 안에서 키우는 고양이나 밖에 있는 고양이나 다르지 않잖아요. 우리 집 고양이들을 사랑하게 되니까 길고양이까지 챙기게 된 거죠.” 특히 고시생과 대학생들이 들고 나는 일이 많은 동네라 유기동물도 자주 눈에 띄었단다. “임보를 안했으면 아마 고시를 몇 년은 더 일찍 합격했을 거예요.”

권유림 변호사의 ‘고시 동지’인 반려묘 누리와 바다. 13살, 16살이 된 반려묘들은 지금까지 곁에 머물고 있다. 권유림 제공
권유림 변호사의 ‘고시 동지’인 반려묘 누리와 바다. 13살, 16살이 된 반려묘들은 지금까지 곁에 머물고 있다. 권유림 제공

신림동 고시생 시절 권유림 변호사는 아기 고양이를 임시보호하며 40~50마리에게 새 가족을 찾아줬다. 권유림 제공
신림동 고시생 시절 권유림 변호사는 아기 고양이를 임시보호하며 40~50마리에게 새 가족을 찾아줬다. 권유림 제공

2016년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그는 한결 같았다. 권 변호사는 동물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있을까 고민하다 동물단체 ‘카라’에 메일을 보냈다. “그냥 동물을 좋아하니까 조금이라도 돕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드릴 수 있는 도움은 한계가 있을 것 같고, 변호사니까 법률 자문이나 제도 개선 같은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죠.” 그때 카라가 소개해 준 곳이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이하 동변)이었다.

현재 권 변호사는 동변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를 포함한 7명의 변호사가 모인 단체는 동물권 향상을 위한 법률 자문, 연구,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발간한 ‘동물을 위한 법률지원 매뉴얼’을 집필했고, 카라, 동물자유연대 등과 ‘동물학대 판례평석’ 등을 펴냈다. 국내 동물단체들과 연계해 자문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_______
케어 박소연·서울대 복제견 실험 사건 등 맡아

동변 활동을 시작하며 권 변호사가 관심을 갖게 된 분야는 실험동물이었다. 개, 원숭이, 쥐, 고양이 등 수많은 동물들이 동물실험에 동원되고 있지만, 동물의 희생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행동파’ 답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직접 동물단체를 찾아간 것이다. “법률적으로는 저희가 전문가이겠지만, 현장에서 느끼고 직접 체험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을 따라갈 수가 없으니까요.”

권 변호사가 그렇게 찾은 곳이 충남 논산시에 위치한 동물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였다. 비글구조네트워크(이하 비구협)은 실험동물의 현실을 알리고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물복지단체다. “뭐가 문제인지 한 번 들어보고 싶어서 갔는데, 그 인연이 지금까지 5년 간 이어진 거죠.” 그의 표현에 따르면 “시작하면 항상 끝을 보는” 비구협 유영재 대표를 만나며 권 변호사는 잊지 못할 사건들을 맡게 됐다.

권유림 변호사는 “하루 날 잡고 보호소 봉사를 다녀오면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의 중성화 수술 봉사 참여 모습. 권유림 제공
권유림 변호사는 “하루 날 잡고 보호소 봉사를 다녀오면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의 중성화 수술 봉사 참여 모습. 권유림 제공

비구협의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권 변호사는 케어 박소연 안락사, 서울대 복제견 불법실험, 경북대 실습견 학대 사건 등 굵직한 사건에 참여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애린원 철거죠.” 행정상 힘든 사건이기도 했지만, 무려 4년이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임야를 불법 점거 하고 있던 애린원은 이미 2012년 철거 명령이 확정된 상태였으나, 2018년 권 변호사가 사건을 다시 맡았을 때는 철거 집행부터 1000마리가 넘는 개들의 소유권 문제까지 처음부터 다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하지만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물었을 때도 애린원을 꼽았다. “물론 많이 힘들긴 했지만 굉장히 보람됐어요. 속칭 개지옥이라고 불리던 곳에 살던 개들이 지금은 40% 정도 입양을 갔어요. 정말 감사하게도.” 권 변호사는 덕분에 ‘2019년 대한민국 동물복지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_______
“반복되는 동물학대, 강한 처벌로 경각심 높였으면”

‘동물권 변호사’지만 아무래도 본업은 인간사가 중심이 된다. 다른 사건 처리하며 동물사건 자문까지 쉴 짬이 있을까. “그래도 하루 날 잡고 보호소 가서 개똥 치우고 오면 다 힐링이 돼요.” 그렇게 보호소에서 만난 비글 ‘상남이’는 그의 품을 거쳐 해외 입양을 갔고, 또 다른 임시 ‘하숙생’이었던 진돗개 ‘정선이’는 5년 째 같은 집에 살고 있다.

반려견 ‘정선이’는 강원도에서 구조된 유기견으로 임시보호을 하다 가족이 되었다. 권유림 제공
반려견 ‘정선이’는 강원도에서 구조된 유기견으로 임시보호을 하다 가족이 되었다. 권유림 제공

‘현재 동물보호법과 제도 가운데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이냐’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강화된 동물보호법에 비해 미약한 처벌을 짚었다. “지난해 대법에서 개 전기도살을 동물학대 유죄로 판결했어요. 잔인한 방법이란 거였죠. 그런데 일선에선 아직도 기소유예 처분을 한다든가 굉장히 미약하게 처벌해요.”

그는 반려견 정선이의 사진을 꺼냈다. “정선이는 그야말로 그냥 ‘누렁이’거든요. 개농장에 가서 만나는 개들하고 하나 다를 것 없는 개. 높아진 동물권 의식만큼 법과 제도도 따라 가야하지 않을까요.”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1.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2.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3.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4.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5.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