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긴수염 동물기
외래종 퇴치 위해 독극물 뿌려놓았다
차라리 내가 데려갈까, 밤새 뒤척였다
서호주 어느 오지의 야영장에 머물 때였다. 인간이라고는 나 혼자였던 그곳에서의 첫날밤. 라면을 끓여 먹는데 주변에 기척이 느껴졌다. 야생동물? 설마 인간동물? 숨죽이고 있는데 헤드랜턴으로 들어온 건 다름 아닌 고양이. 아직 덜 자란 개체로 보였고, 어딘가 어수룩했다. 녀석은 별 경계 없이 슬금슬금 음식으로 다가왔다. 코펠에 머리를 박다가 나의 웃음에 놀라 머리를 빼고는 내 다리와 코펠 사이를 더듬더듬 방황한다. 채식라면이라 당기지는 않았던 것일까.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인간이 사는 마을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 오지에 고양이라니. 뜻밖의 만남에 반가운 것도 잠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호주 정부가 고유종 보호를 위해 야생에 사는 고양이를 도살한다는 정보를 접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1080 Poison Risk' 경고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호주에 도입된 여우나 고양이를 죽이기 위해 독이 든 소시지 형태의 미끼가 야생에 뿌려져 있으니, 해당 지역에는 반려동물의 출입이 제한된다는 내용이었다. 실수로 독을 먹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양이를 잡아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 망설여졌다. 다시 먹을 것으로 유인하면 포획은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고양이가 입양이 될지 아니면 안락사 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내가 데리고 살까? 잠깐 고민했지만,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내가 고양이의 일생을 온전히 책임지기는 어려운 형편이라 판단했다. 또한 야생에 살고 싶었던 고양이를 납치하는 격이 될 수도 있으니, 섣불리 구조할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그대로 두면 고유종들이 많이 죽을 것이고, 고양이 자신도 사냥하지 못하면 독이 든 미끼를 먹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 밤새워 뒤척이며 생각에 잠겼다.
고양이는 내 다리와 코펠 사이를 더듬더듬 방황했다. 긴수염 제공
이튿날 아침, 텐트 주변에 다급한 새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그 고양이가 사냥을 하고 있었다. 비장해 보였다. 나도 아침을 먹으며 결심했다. 그냥 두기로. 고양이의 마음을 알 수도 없고, 녀석은 야생에서의 삶이 좋을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야생에서 홀로 지내는 걸 좋아하는 내가 멋대로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원래 있던 그대로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죽어갈 동물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웠다. 그곳을 떠나며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를 만나 번식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2015년 호주 정부가 2020년까지 야생에 사는 고양이 200만 마리를 도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호주 전역에서 매일 100만 마리의 동물이 고양이에게 죽임당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고, 퀸즐랜드의 어느 지자체에서는 고양이를 잡아오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성묘는 10호주달러(한화 약 9천원), 새끼는 5호주달러라고 한다. 과연 이런 방법밖에 없을까. 한 마리에 2만원인 한국의 뉴트리아가 떠오른다. 생명을 살리자며 생명을 죽여오면 돈으로 바꿔주는 세상. 인간이야말로 지구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환경을 파괴하고 원주민을 몰아내고 동물들을 멸종위기에 처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나 역시 가담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야생동물을 해치는 외래종을 솎아내기 위해 뿌려진 독극물. 서호주 주 정부가 반려동물 안전을 위해 경고판을 세워뒀다.
나중에 건너간 뉴질랜드에서는 ‘BAN 1080’ 배너를 보았다. 그리고 외래종을 박멸하고자 곳곳에 놓아둔 독을 실제로 반려동물이 먹고 죽은 안타까운 사례를 접했다. 독을 먹은 동물들이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개인이나 동물단체에서 1080 Poison을 반대하고 있었다. 고양이 도살을 반대하여 중성화수술을 하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미약하다. 호주에서는 고유종인 포섬이 뉴질랜드에서는 박멸 대상 외래종이었다. 누가 포섬을 그곳으로 옮겼을까. 누가 고양이를 호주에 퍼뜨렸을까. 내가 오지에서 만났던 그 고양이는 무사할까. 아직도 고유종을 사냥하며 잘살고 있을까. 굶주리다 결국 독이 든 미끼를 먹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지는 않았을까. 혹시 다른 인간이 그를 죽이거나 포획하지는 않았을까. 만에 하나 잡혔다면 어디론가 입양되었을까 아니면 안락사 되었을까. 설마 번식하진 않았겠지. 꼬리를 무는 생각.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영상·글 긴수염/지구별 인간동물생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