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나비 개체수를 늘리려면 양을 키워야 한다는 생태학자의 처방도 있다. 부전나비가 꽃 위에 앉아있다. 이안 커크/위키미디어코먼스 제공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말이 있다. 소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결점이나 흠을 바로잡으려다 수단이 지나쳐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뜻이다. 세심하지 못한 일 처리에서 벌어진다.
동물에서도 뒤탈 많은 사례가 있다. 황소개구리다. 농민들 소득을 올리려고 기르게 했던 적이 있다. 기막힌 생각이나 농민 잘살게 하려는 마음이 앞서 꼼꼼하지 못했다. 황소개구리가 어른 손바닥보다 커서 고기로 내다 팔면 돈이 될 기대로 눈독 들인 농민이 많았다. 웬걸? 기대와 달리 팔리지도 않았고, 토종 물고기나 개구리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애물단지가 됐다. 농장에서 탈출한 놈들이 범인이다. 이놈 후손들이 방방곡곡에서 휘저으며 작살내고 다녔다. 부작용이 속출하자 환경부에서 소탕작전을 벌였지만 아직도 버젓이 살고 있다.
지구에 오직 인간만 남는다면 잘 살 수 있을까? 천만에! 인간도 곧 멸종할 것이다. 산소를 뿜어주고 우리 밥상을 책임져 주는 식물은 사람 사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식물한테는 씨앗 맺게 해주는 곤충이 없어서는 안 되고, 씨앗을 멀리 보내주는 동물도 곁에 있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만약에 지구에서 꿀벌이 사라지면 동식물이 잇달아 사라지고 결국 4년 안에 인간도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말도 있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독불장군처럼 살 순 없다.
농가 소득을 위해 사육됐던 황소개구리는 기대와 달리 팔리지도 않았고, 토종 물고기나 개구리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애물단지가 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깽깽이풀이란 식물이 있다. 독특하게 이놈의 씨앗은 개미가 옮겨준다. 씨앗을 옮겨준다기보다 씨앗 끝에 매달린 꿀단지를 물고 간다. 탐난 꿀단지를 끌고 가 꿀만 먹고 씨앗은 굴 밖으로 버린다. 깽깽이풀 엄마 입장에선 힘들이지 않고 자식을 먼 곳으로 보내 번성하게 해줘 좋다. 서로 돕는 사이로 반드시 곁에 끼고 살아야 할 친구다. 국내에 분포하는 개미 중에서 짱구개미가 이런 역할을 한다. 요즘은 숲에 풀이 꽉 들어차자 개미가 살기 어렵게 변해버렸다. 개미 입장에서 풀숲은 정글과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깽깽이풀이 멸종위기종이다. 깽깽이풀을 복원하려면 찰떡궁합인 개미가 서식하는지 확인 후 뿌리 내리게 해야 한다. 그깟 식물 종 하나 없어진다고 별일 있겠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구에 다양한 종이 공존해야 인간 삶도 건강하다.
이런 공존 사례는 나비에도 있다. 외국 사례로 부전나비 개체수를 늘리려면 양을 키워야 한다는 생태학자의 처방도 있다. 양이 풀을 뜯어먹어야 개미와 부전나비가 살 수 있다. 부전나비 살리자는데 웬 개미?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으나 개미가 부전나비 애벌레를 굴로 데려가 다 클 때까지 애지중지 돌본다. 애벌레는 먹이 잡는 수고를 덜어서 좋고, 개미는 애벌레 똥구멍에서 나오는 단물 빨아먹어 좋다. 담흑부전나비는 일본왕개미와 쌍꼬리부전나비는 마쓰무라꼬리치레개미와 짝꿍이다. 양이 풀을 싹싹 뜯어 먹어 개미가 다닐 수 있게 길을 닦아놔야 훨훨 날아다니는 부전나비를 볼 수 있다. 부전나비는 개미 없이 못산다.
양과 개미 그리고 부전나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자연 보전이나 복원 때 단지 그 한 종만 봐서는 안 된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얽혀 있다. 육식동물에서는 더 하다. 육식동물을 무턱대고 방사했다간 먹잇감으로 잡아먹는 종을 여럿 작살 낼 수 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연구를 위해 포획했다가 다시 그 자리에 놔준다면 몰라도 육식동물 방사는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여우처럼 멸종됐거나 종 유지에 필요한 최소 개체수가 안 되는 경우 말고는 느긋하게 기다리면 근처에 사는 놈이 온다. 방사보다 먹이사슬을 탄탄하게 하는 묘책이 신의 한 수다. 몇 곳에서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을 펼치려고 꿈틀거리고 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는 말처럼 단지 복원 대상 한 종에만 집착하지 말고 전체를 봐야 한다.
소똥구리는 풀 먹고사는 소, 염소 또는 코끼리가 있어야 살 수 있다. 이놈들이 싼 똥에 애기뿔소똥구리가 주저앉아 굴 파고 들어가 똥 퍼먹고 살고, 왕소똥구리는 똥을 동그랗게 만들어 굴속으로 굴려 넣어 알을 낳는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이 똥 퍼먹고 자란다. 똥은 이놈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안타깝게 우리나라에 왕소똥구리는 멸종됐고 애기뿔소똥구리만 남았다. 20여년 전에 제주도 인근 섬에 왕소똥구리가 산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적이 있다. 대낮이라 굴에 들어앉아 쉬는지 밖엘 나오지 않아 아쉽게 못 봤다. 하지만 서식 흔적이 보여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근처에서 소를 기르던 할아버지가 들려준 생생한 이야기가 또렷하다. 훗날 다시 찾아갔지만, 할아버지 목소리도 왕소똥구리 흔적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소가 팔려 나갔고, 왕소똥구리 삶도 끝난 것 같다. 왕소똥구리를 자연으로 다시 불러오려면 끼니 걱정하지 않게 밥상부터 차려놔야 할 것 같다.
긴다리소똥구리들이 포유동물의 배설물로 만든 경단을 굴리고 있다. 긴다리소똥구리는 암수가 함께 경단을 만들어 굴려 옮겨서 땅에 구멍을 판 뒤 저장하는 습성이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개구리는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곤충 먹고사는 개구리는 조류나 육식성 동물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개구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에서 2008년을 ‘양서류의 해’로 정해 대대적으로 보전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국내 동물원에선 이보다 앞선 2000년대 초부터 개구리 방사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동물원에 근무하면서 첫 프로젝트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종을 확대해 맹꽁이와 금개구리까지 손댔었다. 동물원에서 하찮은 개구리를 키워 방사하냐는 질문을 할 수 있으나, 생물다양성 유지에 중요한 일이다.
요즈음 산개구리가 알 낳는 시기다. 계곡이나 웅덩이에서 귀신 소리 내며 우는 놈이 산개구리다. 야생동물 보호 개념이 약하던 시절에 만세탕으로 먹던 놈이기도 하다. 재미로 집에서 키우겠다며 올챙이 잡아가면 안 된다. 모내기 철에 알을 낳는 참개구리와 다른 개구리도 마찬가지다. 잡아먹어선 더더욱 안 된다. 개구리 보호가 멸종위기 조류를 살리는 첫걸음이다.
노정래 전 서울동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