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는 동물 세계에서도 중요하다. 동물원에서 관리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동물은 배앓이를 한다.
무슨 일을 하다가 밥부터 먹고 하자고 말할 때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란 말을 하곤 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도 배가 부른 뒤에야 흥겹다는 뜻에서 나왔다. 속뜻은 뭐든 먹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엔 맛있는 것만 골라 먹지만, 불과 사오십 년 전만 해도 ‘진지 드셨어요?’ 가 아침 인사다. 그만큼 굶는 사람이 많았다던 시대였다.
식사는 동물 세계에서도 중요하다. 동물들은 종일 먹이 찾아 헤맬 때가 많고, 목숨 걸고 처절하게 싸우기도 한다. 먹이가 삶의 전부나 다름없다. 먹이
가 풍족한 땅을 차지한 수컷은 암컷한테 환심을 받지만, 먹잇감이 부족해 볼품없는 땅을 차지하면 암컷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눈길 주기는커녕 무시한다. 암컷한테 선택받지 못하면 노총각으로 늙어 죽을 수 있어 쓸만한 땅 장만하려고 기를 쓰고 싸운다. 수컷 싸움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먹이다. 그렇다고 먹이를 필요 이상으로 쟁여 놓고 먹거나 닥치는 대로 숨통을 끊어 놓지 않고 그때그때 끼니를 해결하는 편이다. 그 덕에 먹잇감인 어떤 종의 씨가 마르지 않고 함께 공존한다. 하지만 인간은 후손들 먹을 것까지 염려하며 산다. 그러느라 간혹 다른 종의 삶을 짓밟아 멸종시키거나 멸종위기에 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도 동물처럼 공동체에서 다른 종과 공존하며 사는 삶을 배울 필요가 있다.
먹이 감춰두는 동물들
늑대, 여우들은 사냥해서 배불리 먹고 남은 고기는 땅을 파 감춰 놓고 배고플 때 찾아와 먹곤 한다. 다람쥐도 먹이가 넘쳐나는 가을엔 도토리랑 상수리 물어다 집 주위 곳곳에 숨겨 놓는다. 먹이가 없을 때 찾아 먹을 요량으로 파묻지만 찾지 못하는 것이 더 많다. 가을에 까치, 어치를 유심히 지켜보면 먹이를 물어 숲으로 날아가거나 두리번거리다 풀숲에 감추는 놈들이 눈에 띈다. 식량 쟁여 놓느라 그런다. 이런 노력 안 하고 남이 숨겨 놓은 곳간 차지하는 약삭빠른 놈도 있다. 동료들이 먹이를 어디에 감추는지 곁눈질로 살짝살짝 봐뒀다가 나중에 몰래 훔쳐 먹는 도둑이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사람과 똑같다. 사람들한테 배웠나?
하지만 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동물이 있다. 이놈들은 먹고 남은 것 감출 필요도 없다. 동물원에 있는 놈들이 그렇다. 그들이라고 걱정이 없을 리 없겠지만, 먹이만큼은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 배곯지 않고 따시게 먹을 수 있게 준다.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아무것이나 마구잡이로 주지는 않는다. 동물영양사까지 두고 철저하게 영양을 챙긴다. 배 채워주는 것은 기본이며 균형 잡힌 식단까지 챙기고 있다는 증거다.
동물원에서 동물이 먹을 식재료는 매일 새벽에 들어온다. 이 식재료는 동물영양사와 담당 직원들의 대쪽 같은 검열을 통과해야 동물들 밥상에 오를 수 있다. 신선한 식재료인지? 위생적으로 괜찮은지? 미꾸라지처럼 살아있는 놈은 팔딱팔딱한지 꼼꼼히 살핀다. 만약 기준에 맞지 않은 식재료는 어김없이 퇴짜 놓는다. 그러면 기준에 맞는 것으로 다시 가져와야 한다.
싱싱함은 기본이며 양양이 최고인 것을 고집한다. 해양동물의 밥상에 오르는 생선 중에서 갈고등어는 겨울에 잡히는 놈을 최고로 친다. 이때 잡힌 놈들을 사들여 냉동실에 쟁여놓고 먹인다. 호랑이, 사자와 같은 육식동물의 밥상은 매일 고기로 올린다. 동물원에 근무할 때 새벽에 사료 준비실의 먹이 검수하는 곳에 가끔 가 보곤 했다.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식당에서 먹던 소고기보다 동물들한테 줄 소고기가 더 싱싱해 보여서다. 초식동물들이 먹을 채소류도 마찬가지다. 갓 수확한 것처럼 이파리가 푸릇푸릇 싱싱하다. 고깃집에서 나온 상추랑 똑같다.
이른 아침은 동물들의 식사시간
아침에 검수를 마친 사료는 각 동물사로 배달된다. 동물사마다 정해진 양만큼씩 큰 바구니에 갈라 담아 냉장차로 이동한다. 사람들이 먹는 도시락 배달차와 비슷하다. 다만 식재료를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각 동물사에 도착한 식재료는 현장 직원들이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게 잘라준다. 고기는 토막 내고, 당근 채소들은 얇게 썰어 먹기 좋은 크기다. 하지만 호랑이나 사자처럼 덩치 큰 놈들한테는 생닭은 통째로, 소고기는 작은 덩어리 채 준다. 먹성 좋고 이빨이 튼튼해 아작아작 씹어 먹는데 문제없다. 동물들 아침 식사는 관람객이 오기 전에 준다. 야생에 산다면 해 뜰 무렵에 사냥하지만, 동물원에서는 직원들이 출근해야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 새벽밥을 줄 수 없어 서둘러 주는 게 이 시간이다. 밥 빨리 먹는 놈은 밥상 들이밀자마자 해치우고 느릿느릿 먹는 놈은 종일 먹는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원래 습성이 그렇다. 예를 들어 되새김질하는 놈은 배불리 먹고 뒤 돌아앉아 되새김질하고 새참으로 또 먹는다. 동물원에 일찍 놀러가도 식사하는 동물을 못 볼 때가 많다.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동물들 식사와 간식은 영양사에게 맡겨야 한다.
미국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랜드 사료 준비실에 가 본 적이 있다. 이곳은 무슨 반도체 생산하는 공장처럼 담당 직원들이 마스크 쓰고, 위생복 입고 사람이 먹을 음식보다 더 철저하게 위생적으로 다뤄 깜짝 놀랐다. 동물마다 한 끼 분량씩 소포장해서 동물사로 보내는 시스템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동물 기르는 현장에서는 소포장 된 먹이를 받아 냉장 보관했다가 비닐만 벗겨 주면 된다. 마치 마트에서 파는 고기랑 채소가 적은 분량씩 포장된 것처럼 말이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위생적으로 다루는 공급 방식을 도입할지 우리나라 동물원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좋은 시스템이지만 예산과 인력이 문제다. 동물원엔 야생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종들이 많은데 그렇게 바꿀 가치가 있다고 본다.
동물 사랑하는 마음 이해하지만…
명절이 지나면 어김없이 배앓이 하는 동물이 몇 놈 생긴다. 인기 많은 원숭이에서 심하다. 명절 음식을 동물원에 싸 들고 와 줘서 그렇다. 과일은 그렇다 치고 각종 전류와 떡을 동물한테 내밀기도 한다. 핫도그, 어묵 등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먹은 것은 다 준다. 명절인데 동물들도 맛있는 것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 것 같다. 넙죽 받아먹을 수밖에 없고 탈 날 가능성이 크다. 동물을 사랑하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되지만, 동물들 식사와 간식은 동물 영양사에게 맡겨야 한다. 일회용품 안 쓰고, 나무 심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잘 가꾸는 것이 동물을 돕는 일 중 하나다. 자기 자신을 돕는 일이기도 하다. 곧 설날이다. 이번 명절부턴 동물한테 줄 음식은 장만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글·사진 노정래 전 서울동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