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다(Haida) 인디언들이 남긴 토템 기둥들에는 흰머리독수리와 곰과 고래, 개구리, 까마귀들이 부조(浮彫)되어 있다. 하이다인들의 눈에, 이 동물들은 특별한 영력(靈力)의 주체들이었고, 그래서 신성한 이들이었다.
우리 현대인 중 다수는 산업 문명의 질병을 앓고 있다. 전체에 관한 감각을 상실하고 산업 문명의 내폐적 질서 안에 갇히고 말았지만,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 지구, 우주를 삶의 원천이자 내용물로 감지하지 못하고 한낱 삶의 외곽에 있는 무언가로, 자원이나 자원이 있는 장소 정도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질병의 핵심 증상이다.
연필 한 자루, 빗방울, 날아가는 기러기 떼, 일출과 노을…. 이런 것에 유별감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고, 사진을 찍어 에스엔에스(SNS)에 게재하는 것을 제외하면 커피나 빵 같은 것도 무심코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이 삶의 실체이고 의미이냐에 관한 가장 중요한 관점 또는 감각이 뒤집히고 말았다. 산업 시대에 인간과 자연세계와의 거대 장벽, 자연세계로부터의 인간의 거대 소외는 그렇게 발생했다. 예컨대 애니멀(animal)이라는 말은 본디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뜻이었지만, 오늘날 우리 중 다수는 동물들을 우리와 얼마간 비슷한 존재이거나 우리와 삶을 함께 하고 있는 이웃으로 여기는 데 퍽이나 인색하다.
우리 가운데 호시노 미치오(Hoshino Michio, 1952~1996)만은 달랐다. 그는 자기 자신과 자연의 과정 그리고 다른 동식물들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음에 눈 떴다. 숲 속의 곰과 숲 강변의 연어 떼, 줄무늬다람쥐와 버섯과 이끼, 등자나무가 하나의 사건에 참여하는 동류들임에 주목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알래스카의 숲과 야생동물에 매료되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느라 분주했던 호시노 미치오. 그는 어느 날 알래스카의 숲을 산책하다 나무 사이에서 기이한 사물을 발견한다. 한때 그곳에 살았지만 이제는 도시로 이주해버린 하이다(Haida) 인디언들이 남긴 토템 기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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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템 기둥에 새긴 ‘구성원들’
이 토템 기둥들에는 흰머리독수리와 곰과 고래, 개구리, 까마귀들이 부조(浮彫)되어 있었다. 하이다인들의 눈에, 이 동물들은 특별한 영력(靈力)의 주체들이었고, 그래서 신성한 이들이었다. 이들의 힘을 가져올 수 있다면 마을의 태평 역시 보전될 것이었다.
또한 그 동물들은 대지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들이기도 했다. 하이다인들은 영혼을, 삶을 선물로 인식했는데, 그런 까닭에 동일한 선물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에 대한 존중은 지당한 것이었다.
현대 산업 문명이 주는 달콤함에 찌들대로 찌든 우리가, 우리 아닌 동물들에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쌍화탕을 만들려면 황기, 당귀, 계피 등 여러 약재가 필요하다. 병증이 깊은 우리에게도 그러하여 여러 약재가 동시에 필요하다. 자연의 과정에 관한 현대 과학과 그것을 기반 삼아야 하는 자연과 우주에 관한 현대 철학, 생태학적 관점의 새로운 경제학이 긴요한 약재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 아닌 동물들을 세계의 동등한 참여자로 인지했고, 예식(禮式)을 통해 세계와 우주의 의미를, 세계의 일원성을 감득했던 고대인의 사상과 감성, 그것의 표현물인 예술이 우리 영혼에 스며들어, 우리 안의 동토(凍土)를 녹여주어야 한다.
우석영 <동물 미술관> 저자
1년 안에 살해되는 동물이 무려 600억 마리라고 한다. 1970년 이래 인간 활동에 의해 동물의 무려 60%가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분명 변화가 필요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이런 뉴스에 거의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필자는 동물과 지구 생태계에 대한 앎의 확장만이 변화를 촉발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우리의 동료들인 동물들과 모두의 터전인 지구를 미술 작품이라는 확대경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