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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지혜보다 현명한, 그 ‘무엇’에 대하여

등록 2019-02-07 15:39수정 2019-02-07 15:46

[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3. 필립 굿윈, 곰의 지능
필립 굿윈. ‘곰이다!’(its a bear)
필립 굿윈. ‘곰이다!’(its a bear)
곰 부족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동물원이 아니라면 곰을 도통 만나볼 기회조차도 없는 원통함을, 나는 이즈음 어니스트 시튼(Earnest Thompson Seton,1860~1946)의 곰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있다. 시튼은 여러 편의 곰 이야기를 남겼는데, <회색곰 왑의 삶(The Biography of a Grizzley)>이라는 단편도 그 중 하나다.

왑은 아주 어린 나이에 어느 목장주가 쏜 흉탄에 어미와 형제자매를 모두 잃고 외톨이 신세가 된다. 어린 포유동물에게 엄마의 세계란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인 법이다. 왑의 하늘은 그날 무너지고 만다. 하늘이 무너진 곳. 그곳은 캄캄한 곳이다. 그 암흑의 세계에서 어린 왑은 하나씩 하나씩 빛을 찾아간다. 이를테면, 어디에 가면 야생순무와 애기백합이 있다는 것. 이 세상은 온통 적뿐이지만, 때로는 도망가지 말고 맞서 싸워야만 살 수 있다는 것.

‘회색곰 왑의 삶’(The Biography of a Grizzley) 중 시튼이 그린 삽화
‘회색곰 왑의 삶’(The Biography of a Grizzley) 중 시튼이 그린 삽화
자기를 위협하는 것들은 오소리, 스라소니, 흑곰, 암소 같은 몸집이 제법 큰 포유동물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동물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어린 왑도 금세 깨닫는다. 자기 발을 덥석 문 그 강력한 쇠덫의 입은, 인간이라는 이들의 만든 것이었음을.

그러나 곧 반격이 시작된다. 스라소니 정도는 거뜬히 물리칠 정도로 몸집이 불자, 왑은 자기를 죽이러 집요하게 들러붙는 인디언 사냥꾼 스파왓을 지혜롭게 물리친다. 또 제 영토 아래쪽 어느 오두막에 침입해 잭이라는 사내를 처단함으로써 카우보이들을 향한 일평생의 숙원을 부족한대로 풀어낸다.

시튼이 살던 당시 북미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많았던지, 필립 굿윈(Philip Russell Goodwin,1881~1935)은 곰과 인간의 마주침을 회화작품에 많이 남겼다. 그 중 한 점인 <곰이다!>는 인간의 시점에서 인간과 곰의 마주침을 그려내고 있다. 곰은 어디까지나 저 바깥에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시선을 뒤집어, 곰의 시점에서 본 현장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니스트 시튼(Earnest Thompson Seton)
어니스트 시튼(Earnest Thompson Se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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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칫하게 만든 그 ‘무엇’

어느 불운한 큰곰(불곰)의 생애사를 다룬 <회색 곰 왑의 삶>은 곰의 시선에 비친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곰의 생리나 생태만이 아니라 그 지능이나 판단력에 관해서도 넌지시 일러준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인간들과 마주친 왑은 그들을 공격하려다 멈칫 한다.

“뭔가가 가로막았다. 감각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감각이 조용히 있을 때만 느껴지는, 곰이나 인간의 지혜보다 현명한, 어둡고 구불구불한 길을 가다가 갈림길이 나와 망설일 때마다 방향을 가르쳐 주는 바로 그것이었다.”(<회색곰 왑의 삶>, 장석봉 옮김, 궁리, 2016 중에서)

곰이나 인간의 지혜보다 현명한 이 ‘무엇’이 왑을 삶이라는 빛으로 인도해 주던 ‘등불’이었다. 또한 시튼은 주변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바위와 돌과 사물들”이 왑의 코에 자기 이야기를 노래해 주며, 왑의 행동을 안내해 주었다고 쓰고 있다.

‘회색곰 왑의 삶’(The Biography of a Grizzley) 중 시튼이 그린 삽화
‘회색곰 왑의 삶’(The Biography of a Grizzley) 중 시튼이 그린 삽화
이것은 분명 (곰 같은) 동물에게도 지능이 있다는 수준 낮은 담론을 훌쩍 뛰어넘는 담론이다. 왑의 공격을 가로막은 그 ‘무엇’, 곰이나 인간의 지혜보다 현명한 그것의 정체를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무생물에게도 생물들이 지닌 주체성과 유사한 것이 있는지 감히 확언키 어렵지만, 시튼은 그런 것을 한번쯤 생각해 보라고 이미 1900년에 주문했던 것이다.

우석영 <동물 미술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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