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리, 염소, 양(Collies, Ewe and Lambs). 리차드 앤스델
콜리(collie)를 아시는지? 현재 지구에는 300종 이상의 견종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국제애견협회Fédération Cynologique Internationale가 집계한 공식 품종 수는 약 340종이다) 그 중에서 콜리는 양치기용으로 키웠던 견종이다. 스코틀랜드가 고향이라고 하며, 그래서인지 영국인들 그리고 신세계(New World)로 넘어간 영국인들과 그 후손들의 사랑을 두툼히 받아온 품종이 바로 이 녀석들이다.
화가 리차드 앤스델(Richard Ansdell, 1815~1885)의 그림에는 개가 자주 등장하는데, 콜리도 제법 등장해서 콜리와 함께 살았던 풍속을 넌지시 일러준다. 이를테면 <콜리, 염소, 양> 같은 작품을 보면, 과연 이 개가 양치기 개였음을 대번에 알 수 있다. 한편 <새 잡는 개, 토끼 사냥, 풍경>은, 이 녀석들이 양치기 일을 넘어 주인이 벌인 여러 사업에 적극 참여했던 종임을 짐작케 해준다. 왜 아니겠는가, 콜리는 영준(英俊)하기로 유명한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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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괴짜 친구, 콜리
콜리가 얼마나 스마트한 개인지 말해주는 실화 한 편을 잠시 소개할까 한다. 어니스트 시튼이 쓴 <내 괴짜 친구, 빙고>가 그것이다.
새 잡는 개, 토끼 사냥, 풍경(Bird Dogs, hunting, Rabbit, landscape). 리차드 앤스델, 1869
시튼은 우연히 콜리의 우수함을 알고는 이 견종을 탐내게 되는데, 종국엔 소원을 성취한다. 콜리 족에 속하는 어린 강아지를 하나 얻은 것이다. 시튼은 그 강아지에게 빙고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런데 빙고는 청소년기를 지나자 늑대의 혈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밤마다 쏘다니며 죽은 말고기를 먹거나 코요테, 늑대들을 혼내주거나 또는 어느 늑대에게 당하기도 하는 등 밤이면 인간에 구속되지 않은 야생동물로 변신을 했던 것이다. 녀석은 맘에 차는 암컷 코요테를 거느릴 정도로 호탕한 기질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어느 해 겨울, 시튼은 털가죽을 팔아 지갑을 불릴 요량으로 늑대와 여우를 많이 잡아들인다. 그런데 어떤 악령이 그를 덮치는 날이 찾아온다. 코요테 한 마리를 잡고서는 다른 녀석들을 잡으려 덫을 추가로 설치하던 중, 시튼은 어리석게도 이미 설치해둔 덫의 위치를 헷갈려 제가 놓은 덫에 손을 물리고 만다. 설상가상, 덫에서 헤어나려다가 왼쪽 다리마저 덫에 덥석 물리게 된다. 불행히도 그 덫들은 말뚝에 매여 있어서, 덫을 단 채 이동할 수조차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어떤 늪의 입속에 들어가고 말았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방법이 하나 있기는 했다, 누가 근처에 있는 스패너를 가져다주기만 한다면…. 그러나 이곳에 사냥을 하러 온 줄을 아는 이는 없었다. 더욱이 이곳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도 않는 곳이지 않은가.
겨울밤이, 한파가,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몸에 악귀처럼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코요테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우선 코요테 시체를 끌어와 뜯어먹고는 시튼의 동향을 살폈다. 한 녀석이 사냥총 냄새를 맡더니 서둘러 흙으로 덮었다. 그러고는 시튼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처지임을 이내 간파하고는, 그의 얼굴을 향해 제 포악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신호라는 듯 다른 녀석들도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이것은 1886년 겨울에 일어난 일로, 시튼이 사망한 해는 1946년이었다. 그는 어떻게 살아났던 걸까? 바로 그 찰나, 크고 검은 늑대 한 마리가 숲속에서 홀연 ‘○○맨’처럼 나타나 코요테 일당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건 늑대가 아니라 바로 빙고였다. 모두가 왜 시튼이 돌아오지 않는지 궁금해 하고만 있을 때, 그를 찾아 나서는 행동을 실행한 이가 있었으니 빙고였던 것이다. 악당들을 처치한 빙고는 시튼의 말을 알아듣고는 스패너를 그에게 가져다준다.
그런 빙고이지만 말고기 맛에는 눈이 뒤집혔던 모양이다. 어느 날 독이 묻은 말고기를 먹다가 죽을 처지에 이르자, 빙고가 찾아간 곳은 녀석이 어릴 적 자라던 시튼의 오두막 집, 문 앞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시튼을 구했던 빙고는 자기에게 찾아온 죽음의 문턱에서 시튼을 부르다 죽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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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농장이라는 지옥
이 감동적인 짧은 이야기는 콜리의 영특함에 관한 보고서는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개와 인간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만도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사랑의 본질에 관한 담론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화가 칼 허쉬베크(Carl Hirschberg, 1854~1923)의 <빅 브라더>가 보여주는 것처럼, 행복을 공유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것은, 빙고가 시튼에게 그러했듯, 상대를 ‘지옥에서 구해주는 행동’이다. 적어도 그것은 리차드 앤스델의 <양치기의 죽음>에서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지옥에서 구해주기 위해 분투하는 행동이다.
양치기의 죽음(The Lost Shepherd). 리차드 앤스델, 1860
케어 박소연씨 사태로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불거져 나왔지만, 그 중 최상위의 문제는 단연 개농장이라는 지옥의 문제임을 직시하자. 입에 전기봉을 물고 죽어가는 지옥.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인간의 친구를 살리지 못하는 지옥. 그렇게 죽은 개를, 그 개의 고통을 먹어치우는 지옥. 이런 미친 짓을 막지 못하는 지옥. 이 모든 지옥에서 우리 자신을 구해야만 한다. 분투만이 사랑을 입증하는 상황 속에 지금 우리는 있다.
우석영 <동물 미술관> 저자
빅 브라더(big-brother). 칼 허쉬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