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개, 겨울 풍경(Winter Landscape with Hunter and Dogs). 얀 빌덴스
17세기에 활약했던 서유럽의 화가 얀 빌덴스(Jan Wildnes, 1586~1653)의 그림 <사냥꾼, 개, 겨울 풍경(Winter Landscape with Hunter and Dogs)>은 작품이 창작된 시공간의 간격과는 무관하게 우리에게 퍽 친숙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태어날 때부터 늘 봐왔던 동물들이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등하불명이라 했던가, 이 그림에는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두 종류의 동물이 등장한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영원히 완전한 답을 구할 수 없을 테지만, 사정은 개의 경우에도 비슷한 것이다.
개판, 개꿈, 개떡, 개망나니, 개똥철학, 개망신, 개소리, 개나리, 개살구…. 이런 단어들을 쉽게 입에 올리며 ‘개’라는 기표에 엉뚱하게 삽입된 ‘저속한 것, 범상한 것’이라는 기의를 무념결에 재생하고들 있지만, 개는 결코 너절하고 어리숙한 동물도, 단순하고 빤한 동물도 아니다.
인간을 돕는 조력자이자 인간의 도구였던, 지금은 인간의 친구가 된 동물. 그러나 조력자, 도구, 친구 같은 용어로는 전모가 잡히지 않는 늑대의 기이한 변종. 성격도 총천연색이어서, 소처럼 온순한가 하면 살쾡이처럼 괴팍하고, 고양이만큼이나 영특한가 하면 코요테처럼 아첨에 능하며, 늑대처럼 용맹한가 하면 여우처럼 교활하고, 말처럼 기상이 준수한가 하면 새끼 곰처럼 외로움을 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동물.
하기야 340종이 넘는 품종(breeds)을 거느린 이 녀석들을 하나의 종(species)인 듯 묘사하는 이런 식의 기술은 애당초 어불성설이며, 설혹 같은 품종이나 아종(subspecies)에 속한다 해도 개별자들이야 성격이 모두 제각각일 테니, 성격에 관한 어떤 일반화도 가당하지 않기는 하다. 다만 저러한 표현을 동원한 건, 개라는 동물의 세계가 인간계만큼이나 오리무중의 세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사태가 그러한 건, 이 동물이 지구사의 시간으로 보면 극히 ‘최근’에 생겨난 완연히 새로운 생물종일 뿐더러, 인간에 의해 그 유전자와 행태가 계속해서 좌우되는 가운데, 단기간에 수백 갈래로 진화를 거듭해온 특이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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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 ‘최근’이 언제냐를 두고 지금도 학자와 연구자들은 논쟁을 지속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 시기를 십 수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무렵 회색 늑대의 한 아종이 인간 집단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개에 대하여(The Truth about Dogs)>(2005, 사이언스북스)의 저자 스티븐 부디안스키(Stephen Budiansky)에 따르면, 늑대 무리에서 갈라져 나온 이 최초의 이탈자들은 결코 인간에게 길들여진 이들이 아니다.
반대로 이들은 인간 집단이 자신들에게 유용하다는 판단 하에 그들을 따라다니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즉, 개라는 종의 시조(始祖) 격인 이들은 인간 집단에 귀속되지는 않은 채, 인간들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필요한 만큼만 이득을 취했다는 것이다.(이들의 후손들이 아예 인간을 우두머리로 모시며 살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스토리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궁금하다. 무엇이 이들 최초의 이탈자들, 모험가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였던 걸까? 자신들의 세계에는 없었지만, 인간들의 세계에는 있던 그것.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한 가지 결정적 표식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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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을 양산한 최초의 생물, 인간
그건 한마디로 ‘쓰레기’(이 단어를 폐기하고, 폐기물이라고 불러야 한다)라고 우리가 쉽게, ‘폄하’와 ‘혐오’의 느낌을 ‘얹어’ 부르고 있고 또 그러한 나날의 언설-개념화라는 행위 기제를 통해서 맘 편히 집 밖으로 내버리고 있는, 지구에서 생겨난 소중한 물질들이다. 인간들을 따라 다니며 그들이 먹다 버린 것들을 잘 챙겨먹는 편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한 채 사냥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생존 방식이라고, 이들 모험가들은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스티븐 부디안스키의 추론일 뿐이지만, 또한 개와 우리 인간의 본질에 관해 다시금 사색할 기회를 선사해주는 추론이기도 하다.
첫번째 사색거리. 소파나 안락의자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아니라, 영국 화가 윌리엄 스트럿(William Strutt, 1825~1915)의 그림 <팟럭(Pot luck)>에서 우리가 보는 녀석들, 즉 도시나 농촌을 떠돌아다니며 인간이 남긴 찌꺼기를 노리는 떠돌이, 부랑자 개들이야말로 최초의 개들의 아키타입이자 기생동물로서의 개의 본질이라는 것.
두번째 사색거리. 인간은 폐기물(쓰레기)을 양산한 지구 역사상 최초의 생물이라는 것. 지구에 자신들의 폐기물을 퇴적시키면서 인간은 다른 이들 모두가 따르고 있는 지구의 법칙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참괴(慙愧)한 사실을, 오늘도 우리 곁에 있는 개들의 실존이 우리 자신에게 서늘히 고지해주고 있다는 것.
우석영 <동물 미술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