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20. 시튼, 칼 룽기우스, 산양
20. 시튼, 칼 룽기우스, 산양
유럽 야생 양. 게티이미지뱅크
산의 노인, 칼 룽기우스
위대한 산양, 크래그
산악인들-윌콕스 협곡의 큰뿔양들(1912), 칼 룽기우스
알버타 나이젤 협곡의 큰뿔양(1919), 칼 룽기우스
숫양(1910), 칼 룽기우스
시튼의 이야기에 나오는 북미 지역의 산양은 김학철의 산문에 나오는 산양또는 설악의 산양과 같은 종이 전혀 아니다. 설악의 산양은 아무르 영양(Amur goral, 학명 Naemorhedus goral raddeanus)으로서, 속(屬, genus)이 Nemorhaedus이다. 반면, 시튼의 산양인 큰뿔양(Bighorn Sheep)은 Ovis라는 속에 속하는 종으로, 아무르 영양과는 외양과 생태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아무르 영양은 영양(goral)에 속하는 네 종 가운데 하나이므로, 한국의 산양은 ‘영양’이라 불리는 게 온당하다. 아무르 영양은 러시아, 중국, 북한, 남한 등지에서 발견되는 종으로 산악지대에 거주한다. 무리를 이루어 군집생활을 하며, 주로 새벽과 저녁에 활동하는 것으로 최근 보고되었는데, 짐작컨대 인간을 피하기 위함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영양의 수가 급감하자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했다. 급감의 원인은 이 동물이 ‘몸에 좋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일이다.
굳이 오늘의 시점에서 설악의 산양을 떠올려본 건, 지난 달(2019년 9월) 이들의 삶을 위태롭게 했던 오색 케이블카 프로젝트가 (환경부의 결정으로) 전면 백지화되었기 때문이다.
설악산은 1970년 국립공원으로, 1982년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1996년엔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2005년엔 백두대간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럼에도 강원도와 양양군은 2001년부터, 크래그를 쫓았던 스코티만큼이나 끈질기고 집요하게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시행을 환경부에 요구했다. 줄곧 사업 불가 원칙을 표명했던 환경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8월 입장을 바꾸어 사업을 승인했고, 논란은 최근까지도 지속되었다.
2018년 2월, 필자도 참여하고 있는 동물권 연구 단체 피앤알(PNR)은 설악산 산양 28마리를 원고로 앞세우고 ‘문화재 현상변경허가 취소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당시 박그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공동대표가 산양 후견인으로 소송에 참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9년 1월, 서울행정법원(행정6부, 부장판사 이성용)은 산양이 원고 당사자가 될 수 없고 사람도 동물의 후견인이 될 수 없다며 소송 각하(반려) 결정을 내렸다. 2006년 천성산 도롱뇽, 2007년 충주 쇠꼬지 황금박쥐, 2010년 금강 검은머리물떼새에 이어 2019년 설악산 산양도 이 나라 법원에서는 원고 당사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2019년 9월 환경부가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부동의함으로써 종내 이 사업은 백지화되었지만, 이 사업의 백지화를 위해 제기된 소송 자체를 법원이 각하한 결정은, 결국 이 문제가 한국 사회에 미해결 과제로 남았음을 시사한다. 자연(물)의 원고 당사자 지위 또는 자연(물)의 법적 권리에 관해서라면, 이 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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