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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산양의 용기와 지혜를, 인간이 알까

등록 2019-10-11 17:25수정 2019-10-11 17:41

[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20. 시튼, 칼 룽기우스, 산양
유럽 야생 양. 게티이미지뱅크
유럽 야생 양.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설악산 정상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건 중학생 때였다. 그때는 설악산이 어떤 산인지 전연 모른 채 대청봉까지 올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그 뒤로 몇 차례 설악산을 오른 일이 있지만, 백두대간 종주 기념용 헝겊딱지들이 눈앞에 나타나는 빤한 등산로로만 올라갔던 탓일까? 한반도의 영산, 설악산에서 영물인 산양을 만난 기억이, 불행히도 내게는 없다. 오색 케이블카 문제가 불거진 뒤로 산양이 설악을 상징하게 되었건만 내 경험 속에서는 이 둘을 매치시킬 방도가 도무지 없는 것이다.

공백을 메꾸는 최상의 방법이야 설악의 품 안에 며칠 머물러보기일 것이다. 이들이 주로 새벽과 저녁에 활동한다고 하니 그 시간대를 노려야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당장 이 계획을 실행키 어려운 처지로서는 기록물이나 작품을 찾아 예습을 하는 수밖에는 없다.

산의 노인, 칼 룽기우스
산의 노인, 칼 룽기우스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와 기욤 아폴리네르의 ‘동물시집’ 따위를 눈에 잡히는 대로 집어든 소이(所以)가 이러하다. 하지만 대개는 산양 이야기가 없거나 있어도 시원찮았다. 몇 차례 낭패 끝에 설마 그는 실망시키지 않겠지하는 생각이 찾아와 곧장 그의 작품으로 직행해보니, 과연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여기서 는 동물문학의 대가 어니스트 톰슨 시튼(Earnest Tompson Seaton)을 뜻한다. 시튼의 작품 위대한 산양, 크래그를 펼쳐보니 산양의 세계가 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설봉처럼 그 웅대한 전모를 우뚝 드러냈다. 독서 이전에 이것은 해갈(解渴)이었다.

위대한 산양, 크래그
위대한 산양, 크래그
한마디로 이 작품은 로키 산맥, 쿠트네이(Kootenai) 고지대 지역에 살던 어느 숫 큰뿔양의 일생을 다룬 ‘산양 전기(傳記)’다. 어느 야생동물의 전기를 쓴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시튼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냈다. 자신의 관찰 그리고 구전되던 이야기 토막을 엮어 울림 깊은 산양 전기를 완성해냈다. ‘전기’라 하면 본디 ‘위대한 인물’의 영토이건만 이 영토를 인간세계 바깥으로 확장했다는 데 시튼의 탁월함이 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시튼의 탁월함이 아니라 각자의 무대에서 훌륭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야생 동물들의 탁월함이다. 시튼의 탁월함은 그것을 있는 실상 그대로, 편견의 노예인 우리의 눈앞에, 가감없이 드러냈다는 데 있다. 어떤 사물은 우리 눈에 드러나기만 하면 작품이 되는데, 그건 그 사물의 실존 자체가 이미 작품이기 때문이다.

시튼이 묘사한 크래그도 그런 사물이었다. 적을 따돌리며 절벽 사이를 뛰어넘는 신체의 능력이, “어둡고 끝을 알 수 없는 깊이가 담겨 있, 크고 깊고 밝은 호박(보석)색의 눈빛이, 아찔한 위험에서 무리(다수/공동체)를 구하는 과감함과 용기와 지혜가 이 큰뿔양을 기록할 만한 삶의 주인공으로 빚어냈다. 시튼은 이렇게 쓰고 있다.

바위들이 들쭉날쭉 나 있는 절벽 위로 뛰어올라갈 때면, 발톱과 탄력 있는 발굽은 거의 바위에 닿지 않은 채 새처럼 떠다니는 듯했고…. 유연한 근육이 몸의 형태를 바꿀 때마다 등에서는 햇살이 반짝거리면서 일렁거렸다.” 또한 이 양은 봉우리에 걸친 천둥을 머금은 구름처럼, 눈썹 위로 굽이치는 뿔을 지닌 황소처럼 위엄 있게, 사슴처럼 우아하게 서 있었다.” (‘위대한 산양, 크래그’,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이한음 옮김, 궁리)

산악인들-윌콕스 협곡의 큰뿔양들(1912), 칼 룽기우스
산악인들-윌콕스 협곡의 큰뿔양들(1912), 칼 룽기우스
이런 언어들은 우리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다행히도 우리는 시튼이 직접 그린 크래그의 초상화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북미의 산악 고지대에서 살아가는 큰뿔양(Bighorn Sheep)의 풍모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다른 화가들의 작품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이를테면 독일 태생이었지만 미국에 귀화했던 칼 룽기우스(Carl Rungius, 1869~1959)의 작품.

룽기우스의 후배들인 폴 크라프(Paul Krapf, 1927~, paulkrapfstudio.com), 다니엘 스미쓰(Daniel Smith, danielsmithwildlife.com), 랄프 오베르그(Ralph Oberg, 1950~, ralphoberg.com), 더스틴 반 웨첼(Dustin Van Wechel, 1974~, www.dustinvanwechel.com) 등의 작품도 보는 이의 피를 뛰게 한다. 크래그의 자손들을 그림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는 영광이 이들 덕에 가능하다.

알버타 나이젤 협곡의 큰뿔양(1919), 칼 룽기우스
알버타 나이젤 협곡의 큰뿔양(1919), 칼 룽기우스
시튼의 이야기에는 사냥꾼들에게 쫓긴 큰뿔양들이 크래그의 지도에 따라 높다란 절벽 사이를 질서정연하게 폭포수처럼뛰어내리는 경이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이 풍경을 가만 상상하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젊은 날 읽었던 한국 산양 이야기였다.

포수 무리에게 쫓기던 영양 한 무리가 끝내 절벽까지 쫓기고 만다. 건너편에도 절벽이 있어 건너뛰기만 하면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간격은 영양이 뛸 수 있는 최대 거리 5m를 넘어서고 있었다. 무리의 지도자는 순간 깊이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지도자는 허공을 향해 크고 슬픈 울음을 쏟아냈다.

잠시 뒤 청소년층과 노년층이 두 그룹으로 나뉘더니, 각 그룹의 하나씩 쌍을 이루었다. 선두에 있던 한 쌍이 시범을 보였다. 이들은 동시에 낭끝에서 도약을 했고, 공중에서 최대치 거리에 도달하는 순간 청소년은 노년의 등을 밟고 두 번째 도약을 감행했다. 이런 식으로 청소년층만 저편에 있는 으로 넘어갔고, 노년층은 모두 낭떠러지로 낙하했다.

이 엄숙한 드라마를 지켜보며 포수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러 왔는지를 잊을 지경이었다.” (김학철, ‘우렁이 속 같은 세상’, 창작과비평사)

숫양(1910), 칼 룽기우스
숫양(1910), 칼 룽기우스
실은, 3개월간의 피를 말리는 추적 끝에 크래그의 목숨을 끊는 데 성공한 사냥꾼 스코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스코티는 총을 쏘고는 일어서서 결과를 차마 마주할 수 없었다. “겁에 질린 사람처럼 슬그머니고개를 들 뿐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시튼의 전언에 따르면, 스코티는 이 사건으로 사냥을 중단했고, 점점 미쳐갔다. 박제된 크래그를 팔라는 유혹도 일체 거절했다.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 듯 4년을 칩거하다, 어느 설풍 불던 겨울밤, 삶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어느 위대한 숫양의 어머니, 치누크(Chinook, 태평양 쪽에서 불어와 북미 로키 산맥을 넘어가는 서풍)가 일으킨 산사태로 절명한다.

스코티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실화일 것이다. 로키 산맥은 크래그의 편이라는 말은 시튼의 말이 아니다.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동물 미술관> 저자

시튼의 이야기에 나오는 북미 지역의 산양은 김학철의 산문에 나오는 산양또는 설악의 산양과 같은 종이 전혀 아니다. 설악의 산양은 아무르 영양(Amur goral, 학명 Naemorhedus goral raddeanus)으로서, (, genus)Nemorhaedus이다. 반면, 시튼의 산양인 큰뿔양(Bighorn Sheep)Ovis라는 속에 속하는 종으로, 아무르 영양과는 외양과 생태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아무르 영양은 영양(goral)에 속하는 네 종 가운데 하나이므로, 한국의 산양은 ‘영양’이라 불리는 게 온당하다. 아무르 영양은 러시아, 중국, 북한, 남한 등지에서 발견되는 종으로 산악지대에 거주한다. 무리를 이루어 군집생활을 하며, 주로 새벽과 저녁에 활동하는 것으로 최근 보고되었는데, 짐작컨대 인간을 피하기 위함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영양의 수가 급감하자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했다. 급감의 원인은 이 동물이 ‘몸에 좋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일이다.

굳이 오늘의 시점에서 설악의 산양을 떠올려본 건, 지난 달(20199) 이들의 삶을 위태롭게 했던 오색 케이블카 프로젝트가 (환경부의 결정으로) 전면 백지화되었기 때문이다.

설악산은 1970년 국립공원으로, 1982년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1996년엔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2005년엔 백두대간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럼에도 강원도와 양양군은 2001년부터, 크래그를 쫓았던 스코티만큼이나 끈질기고 집요하게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시행을 환경부에 요구했다. 줄곧 사업 불가 원칙을 표명했던 환경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8월 입장을 바꾸어 사업을 승인했고, 논란은 최근까지도 지속되었다.

20182, 필자도 참여하고 있는 동물권 연구 단체 피앤알(PNR)은 설악산 산양 28마리를 원고로 앞세우고 문화재 현상변경허가 취소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당시 박그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공동대표가 산양 후견인으로 소송에 참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91, 서울행정법원(행정6, 부장판사 이성용)은 산양이 원고 당사자가 될 수 없고 사람도 동물의 후견인이 될 수 없다며 소송 각하(반려) 결정을 내렸다. 2006년 천성산 도롱뇽, 2007년 충주 쇠꼬지 황금박쥐, 2010년 금강 검은머리물떼새에 이어 2019년 설악산 산양도 이 나라 법원에서는 원고 당사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20199월 환경부가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부동의함으로써 종내 이 사업은 백지화되었지만, 이 사업의 백지화를 위해 제기된 소송 자체를 법원이 각하한 결정은, 결국 이 문제가 한국 사회에 미해결 과제로 남았음을 시사한다. 자연()의 원고 당사자 지위 또는 자연()의 법적 권리에 관해서라면, 이 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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