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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지금은 바다의 권리를 이야기할 시간

등록 2019-11-08 14:00수정 2019-11-08 15:52

[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22. 이누이트 세드나 조각상, 바다 동물, 바다
‘연승어업(延繩漁業, longline fishing)’을 하는 어선은 50~100㎞ 길이의 장대한 어망을 드리워 몇 시간에 걸쳐 대량으로 거둬들인다. 이 ‘지옥의 사자’에 걸린 이들은 몇 시간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선상으로 올라와서도 좀처럼 숨이 끊어지지 않는다. 타깃이 되는 물고기 외에도 새들과 포유류, 파충류를 무차별 살상한다.  그린피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질 미슐레는 자신의 책 ‘바다’에서 바다 동물들에게 우리가 가하는 고통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죽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이빨과 위장이 (우리가) 죽음을 필요로 하는 운명이라는 증거다.”(정진국 옮김, 새물결, 2010, 298)

왜 아닐까. 죽음을 먹고 사는 삶, 즉 남의 사체에서 부-엔트로피를 섭취하며 정연성의 붕괴를 지연하는 삶이란 최첨단 문명의 한복판도 고스란히 관통하는 지구의 법칙이며, 인류는 그 최후의 순간에도 바다의 식량원만은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가하는 고통이 아니다. 문제는 고통의 총량, 고통의 정도이다. 이른바 연승어업(延繩漁業, longline fishing)’을 하는 어선은 50~100킬로미터 길이의 장대한 어망을 드리워 몇 시간에 걸쳐 대량으로 거둬들인다.

환경단체 오션 클린업(The Ocean Cleanup)과 함께 한 과학자들의 한 연구는 21세기의 유령인 ‘태평양 플라스틱 섬’의 최소 46%가 어업 장비들(그물, 양동이, 로프 등)임을 확인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환경단체 오션 클린업(The Ocean Cleanup)과 함께 한 과학자들의 한 연구는 21세기의 유령인 ‘태평양 플라스틱 섬’의 최소 46%가 어업 장비들(그물, 양동이, 로프 등)임을 확인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옥의 사자에 걸린 이들은 몇 시간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선상으로 올라와서도 좀처럼 숨이 끊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이 조업방식은 타깃이 되는 물고기 외에도 새들과 포유류, 파충류를 무차별 살상한다.

연승어업이 문제시된 지는 꽤 오래전부터이지만 안타깝게도 2018년인 최근까지도 이 조업방식은 산업형 어선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인 것으로 밝혀졌다.(내셔널 지오그래픽의 ‘Pristine Seas’ 프로젝트 연구진들의 연구를 보라.)

이뿐만이 아니다. 산업형 어선들은 바다를 폐기물 처리공간으로 취급해왔다. 동물권 단체 페타(PETA,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1회용 빨대 같은 플라스틱보다 어업 장비 폐기물이 바다와 바다 동물에 훨씬 더 큰 해악을 미친다고 역설하고 있다.

환경단체 오션 클린업(The Ocean Cleanup)과 함께 한 과학자들의 한 연구는 21세기의 유령인 태평양 플라스틱 섬의 최소 46%가 어업 장비들(그물, 양동이, 로프 등)임을 확인했다. 1회용 빨대 폐기 운동에 열광할 힘이 당신에게 있다면 어업회사, 어부들에게 어업 장비를 바다에 버리지 말라고 요구하는 데 할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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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무한하지 않다

바다 동물들로서는 어업 장비가 연승어업의 어망 못지않은 지옥의 사자인데, 이것에 걸려들면 곧바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걸려든 이들은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천천히 죽어가거나, 입안에 낀 장비 탓에 먹을 수가 없어 서서히 굶어 죽어간다.

사람은 누구라도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어찌한 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속하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 장시간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며 죽어간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그토록 회피하려 노심초사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공자님 말씀은, 인간사회 바깥으로 (적어도 고통을 느끼는 모든 뭇 목숨까지) 확대되어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자원의 신화’와 ‘무한의 신화’가 무너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바다는 무한하지 않으며, 이른바 ‘자원 매장소’는 행동의 주체이기도 해서 우리의 삶과 긴밀히 이어져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최근에서야 실감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지금 ‘자원의 신화’와 ‘무한의 신화’가 무너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바다는 무한하지 않으며, 이른바 ‘자원 매장소’는 행동의 주체이기도 해서 우리의 삶과 긴밀히 이어져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최근에서야 실감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연승어업이나 어업 장비 폐기물을 문제 삼지 않는 이의 시선으로 사태를 다시 보면, 고통이란 일개 식량자원에 대해서는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개념이며, 바다는 여전히 무한정한 자원의 매장소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이란 속초 청초호에 가서 양미리 축제를 즐기는 일뿐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지금 이 자원의 신화무한의 신화가 무너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바다는 무한하지 않으며, 이른바 자원 매장소는 행동의 주체이기도 해서 우리의 삶과 긴밀히 이어져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최근에서야 실감하고 있다.

우리의 머리 위와 식탁으로 돌아오고 있는 미세플라스틱, 매년 빈번해지고 강력해지고 있는 태풍, 멸종에 대한 뉴스가 경종을 울리고 있고, 지금 우리에게 급선무가 있다면, 그건 양미리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저 두 신화와 완전히 결별하는 일이다.

대체 저 신화들과 어떻게 결별할 수 있을까? 하나는 바다와 바다 동물의 권리를 법률로 보장함으로써 인간과 바다 사이의 생태적 타협점을 구축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바다에 관한 새로운 신화를 창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이 두 사업의 기반 사업 역할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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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도 권리가 있다

자연 또는 지구의 법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는 2010년을 전후하여 퍼지기 시작했지만, 바다의 법적 권리에 관해서는 겨우 몇 년 전에서야 논의가 활발해졌다. 일례로 지구법 센터(Earth Law Center)2017년 세계 수준에서 바다의 권리를 진전시키는 새 기획을 시작했는데, 현재 생물 종, 지역의 바다(예컨대 태평양), 각국의 영해가 아닌 전체 바다(High Seas)의 법적 권리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바다에 관한 새로운 신화는 어떤가? 그런 게 꼭 필요한 걸까? 지구의 북쪽 끝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Innuit) 민족의 신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준다. 전하자면 이러하다.

지상만물을 만든 조물주 안구타(Anguta)가 딸을 낳았다. 이름을 세드나(Sedna) 또는 타카날룩(Takannaaluk)이라 하였다. 무슨 까닭인지, 어느 날 세드나는 제 부모를 죽이려 한다. 이를 알아챈 안구타는 격분하여 세드나를 바다로 끌고 간다. 안구타는 타고 있던 카약 바깥으로 그녀를 밀어버리지만, 세드나는 기어코 카약의 옆면을 붙잡고 버틴다. 마지못해 안구타는 그녀의 손가락을 잘라내 그녀를 떨쳐 버린다. 이렇게 하여 세드나는 저 아래 세상의 지배자가 되고, 잘린 손가락은 고래, 물범, 바다코끼리들이 되어 이누이트 족의 사냥감이 된다…….

세드나 조각상, 작자미상
세드나 조각상, 작자미상

이 신화를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첫째, 고대 이누이트 사람들에게 바다는 조물주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하고 두려운 존재였다. 둘째, 이들에게 바다는 지구의 독자적 세력이자 알 수 없는 세계였다.(그래서 아래 세상이다) 셋째, 세드나의 신체 일부는 사냥해도 되지만, 오직 그것만이 허용된다고 이들은 믿었다.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를 짓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기에, 이야기야말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기획해가려는 우리네 삶의 여정에 등불이다.(신이 등불이라면 그 신은 이야기를 통해 알려져야만 했다) 범접해서는 안 되는 강력한 힘의 주체로 바다를 인식했던 어느 변방의 옛이야기 한 점 또한 우리가 새롭게 빚어내야 하는 새로운 삶의 의미와 법의 원천이어야 하지 않을까.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동물 미술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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