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어떤 여행자 동물은 지구를 알려준다

등록 2019-11-22 17:19수정 2019-11-22 17:51

[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23. 로버트 와일랜드, 혹등고래
수면 위로 솟구친 혹등고래. 여름철 북쪽 끝 알래스카 쪽에서 살다가 날이 쌀쌀해지면 따뜻한 남쪽바다인 멕시코 인근 바다로 내려가 출산하고 다음 세대를 길러낸다. 게티이미지뱅크
수면 위로 솟구친 혹등고래. 여름철 북쪽 끝 알래스카 쪽에서 살다가 날이 쌀쌀해지면 따뜻한 남쪽바다인 멕시코 인근 바다로 내려가 출산하고 다음 세대를 길러낸다. 게티이미지뱅크
여행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 또는 탐험에. 1997년, 미국 저널인 ‘라이프’(Life) 지에 지난 1000년의 인류사를 만들어낸 위인 100명이 실렸다. 라이프 지가 선정한 위인의 목록에 여행가는 단 둘뿐이었는데,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이븐 바투타(1304~1368, 현 모로코왕국 탕헤르 출생)가 누구던가? 무려 30년간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대륙을 여행했던, 인류사에 길이 남을 순례자이자 탐험가가 바로 그였다.

여행가나 탐험가 중에서는 사람이나 문화, 풍속이 아니라 대자연이 궁금해 여장을 꾸린 이들도 있었다. 수심이 무려 10km가 넘는 마리아나 해구, 그 컴컴한 심해에 들어갔던 자크 피카르(Jacques Piccard), 지구의 남쪽 끝 대륙을 탐험하고 펭귄의 알을 가져왔던 앱슬리 체리 개러드(Apsley Cherry Garrard), 지구의 중심인 망망대해(High Seas)를 혈혈단신으로 가로질렀던 세라 아우튼(Sarah Outen). 이 행성의 풍경을 자기의 온 몸으로 느껴보려고 ‘떠났던’ 수많은 이들을 대표하는 이름들이다.

그러나 여행은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인간 아닌 다른 동물들도 사는 동안 자주 여행길에 오른다. 물론 이들에게 여행이란 ‘여행하는 삶’이거나 ‘삶을 위한 여행’일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에게도 여행이란 비슷한 것이 아니던가?

많은 동물들이 서식지를 옮겨가며 ‘노마드 애니멀(nomad animal)’로 살아가는데, 그런 동물 중에서도 내 관심을 끄는 이들은 지구라는 물리적 단위의 실체를 짐작케 해주는 녀석들이다. 지구의 상당 부분을 제 ‘영토(なわばり)’로 거느리며 사는 녀석들 말이다.

물론 이들의 입장에서야 사는 데 필요해서 오갈 뿐이겠지만, 어찌되었든 지구라는 ‘큰 물’에서 노는 동물들임에는 틀림이 없고, 거의 섬이나 진배없는 소국(小國)에 갇혀 사는 나 자신의 옹색한 처지를 이들의 삶에 비추어보자니 어떤 탄식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5000년 가까이 생존해 있는 캘리포니아의 어떤 나무는 지구의 시간을 살아가지만, 지구에 난 길을 5만 리 넘게 오가는 어떤 동물들은 지구의 공간을 살아간다. 이들은 그 실존 자체가 장쾌하다. 이들을 따라가면 지구라는 ‘집’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동물 중에서는 북극제비갈매기가 가장 놀라운 종이지만, 바다 동물로 한정하자면 단연 돋보이는 동물이 있다. 다름 아닌 혹등고래다.

2019년, 자신의 첫 고래 벽화에 다시 작업을 하고 있는 로버트 와일랜드
2019년, 자신의 첫 고래 벽화에 다시 작업을 하고 있는 로버트 와일랜드
혹등고래는 최장거리를 여행하는 바다 동물은 아니다. 기록 보유자는 따로 있는데, 북동태평양 쪽 귀신 고래(영어로는 Gray Whale, 즉 회색 고래)가 그 주인공이다. 귀신고래는 크게 두 개의 개체군으로, 즉 북동태평양 개체군과 북서태평양 개체군으로 분류되며, 우리로서는 후자를 관찰할 수 있다.

이들은 여름철 북쪽 끝 알래스카 쪽에서 살다가 날이 쌀쌀해지면 따뜻한 남쪽바다인 멕시코 인근 바다로 내려가 출산하고 다음 세대를 길러낸다. 몇 년 전, 이들이 오가는 거리가 2만2000㎞가 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기록 보유자로 등극했다.

그러나 내게 지구의 바다를 상상토록 자극하는 동물은 귀신고래보다는 혹등고래인데, 바다 전역에서 거주하는데다 북반구와 남반구 양쪽에서 여행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머리에 혹이 있어 혹등고래라 불리게 된 이 녀석들은, 가만 들여다보면 매력 덩어리다. 피부는 대개 검푸른 빛이어서 바다라는 배경에 썩 잘 어울리는 풍모인가 하면 ‘고래 뛰기(Breaching)’같은 퍼포먼스에도 능하다.

하와이 카우와이에 1991년에 설치된 벽화.
하와이 카우와이에 1991년에 설치된 벽화.
관찰 기록에 따르면 200회를 계속 뛰기도 한다고 하니, 죽기 전에 한번쯤은 꼭 이들의 묘기를 보고 싶다. 게다가 수컷이 짝을 유혹할 때 부르는 노래는 그 가락이 오묘해 지상의 동물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가장 복잡한 형식을 띤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7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구에 출현한 동물 중 가장 신비한 동물은 어떤 동물일까? 그 실존 자체가 곧 지구의 신비가 되는 존재자. 단언키 어렵지만, 호모 사피엔스만큼이나 최다득표 그룹에 속할 한 동물은 고래가 아닐까? 하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혹등고래를 꼽고 싶다.

혹등고래는 다른 고래와 차별성을 띠는 기관을 하나 거느리고 있다. 바다의 물길을 저어가는 거대한 노. 5미터 가까이 되는 가슴지느러미가 바로 그것이다. 녀석들의 노마드적 기질을 바로 이 상징적 기관이 넌지시 일러준다.

캘리포니아 롱비치 컨벤션 센터에 1992년 설치된 벽화.
캘리포니아 롱비치 컨벤션 센터에 1992년 설치된 벽화.
가을이 오면 지상의 활엽수들은 잎을 떨구고 겨울눈을 준비하지만 바닷물 속의 혹등고래들은 자신들의 긴 가슴지느러미에게 일을 시킨다. 여름철 잘 지내던 남극 또는 북극 지역의 바다를 떠나 열대지역 바다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 따뜻한 바다 환경이 출산과 양육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겨울철 이곳에서 새끼를 낳고 기르다가 봄이 깃들면 새 생명과 함께 다시금 남극 또는 북극 쪽을 향해 길을 떠난다.

고래의 신비는 과학이 풀어주지만, 그 신비를 우리의 영혼 깊은 곳까지 들어오게 하는 건 예술의 과업일 것이다. 고래에 관한 한 꼭 알아야 하는 예술가가 있다. 1981년부터 2008년까지 17개 국가, 79개 도시에 무려 100점의 고래 벽화를 그려 설치한 예술가 로버트 와일랜드(Robert Wyland)가 바로 그 사람이다.

뉴욕 나이아가라 아쿠아리움에 설치된 81번째 벽화. 대서양 혹등고래. 1998년 작품.
뉴욕 나이아가라 아쿠아리움에 설치된 81번째 벽화. 대서양 혹등고래. 1998년 작품.
100번째 벽화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해 중국 예술가들, 3000명이 넘는 중국 어린이들과 공동으로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 프로젝트가 진정한 공공미술이었음을 방증하는 사례일 것이다.

미국 뉴욕주 나이아가라 아쿠아리움에 설치되어 있는 와일랜드의 81번째 작품은 실제 크기의 대서양 혹등고래를 우리의 눈에 보여준다. 겨우내 쿠바 근해에 살다 새 식구를 얻고는 따뜻한 봄철이 되자 아이슬란드 쪽을 향해 봄 여행길에 나선 어느 혹등고래 모녀. 이들의 여정을, 그 여정을 감싸고 있는 지구라는 모두의 집을 나는 잠시 눈을 뜬 채로 상상해본다. 내 상상 속 모녀는 지금쯤은(늦가을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따뜻한 남녘 바다를 향해 가을 여행길에 올랐을 것이다.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동물 미술관> 저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1.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2.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3.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4.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5.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