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 흰 황조롱이. 보통 황조롱이보다 색깔이 훨씬 옅지만 눈 색깔은 그대로다.
검독수리를 관찰하기 위해 지난 4일 천수만에 들렀다. 2박 3일간 천수만 일대를 탐조했지만 검독수리는 볼 수 없었다. 독수리 30여 마리가 높은 하늘을 선회할 뿐 겨울 평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러기들도 많이 보이지 않아 평야는 왠지 썰렁한 분위기를 풍긴다.
멀리서 얼핏 잿빛개구리매로 착각했던 흰 황조롱이.
오후 4시께 탐조를 마치고 평야를 나설 무렵 논둑에서 새 한 마리가 갑자기 날아올랐다. 잿빛개구리매 수컷인가 싶어 차를 세웠다. 새가 멀리 날아가지 않고 논둑 위에 다시 앉는다. 쌍안경을 꺼내 살펴보니 잿빛개구리매가 아니다. 흰색 황조롱이였다. 보통의 황조롱이와 달리 온몸이 옅은 갈색 무늬가 난 흰 깃털로 덮여 있다.
30년간 탐조를 하며 생전 처음 보는 흰 황조롱이의 모습에 마음이 설렌다. 이 흰색 황조롱이는 일반적인 적갈색 황조롱이에 견줘 색상이 현저히 감소한 모습인데 이점이 더욱 단아해 보인다.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으며 가까운 주변에서 친숙하게 거리를 내어준 덕분에 한참을 관찰하였다. 검독수리는 만나지 못했지만 뜻밖에 흰 황조롱이를 만나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왔다.
논 주변에 관심이 많은 흰 황조롱이. 주된 사냥감인 들쥐를 살피는 것 같다.
자연을 면밀하게 관찰해 변화의 조짐을 읽으려 했던 우리 조상은 흰 까마귀 같은 흰색 동물이 출현하면 상서로운 징조라며 반겼다. 그러나 백색증(알비노)은 멜라닌 색소가 결핍되는 돌연변이일 뿐이다. 주변 환경과 도드라져 숨기 힘들고 자외선 차단능력이 부족하니 야생에서 생존율이 떨어지고 당연히 희귀하다.
그러나 흰 황조롱이는 백색증과 달리 완전히 희지는 않고 눈은 정상적으로 검다. 피부의 멜라닌 색소를 만드는 능력은 정상인 백변종(루시즘)으로 보인다. 열성 인자가 우연히 맞아 생기는 백변종의 예로는 흰 기린이나 백호 등이 있다.
보통의 황조롱이 암컷(좌측)과 수컷. 수컷이 사냥해 온 먹이를 암컷이 전달받아 새끼를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다.
황조롱이는 끝이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윗부리와 날카로운 발톱, 예리한 눈을 지닌다. 먹이를 노릴 때 꽁지깃을 부채처럼 펴고 상공의 한 지점에 떠서 정지 비행을 하는 대표적인 새이다. 땅 위의 목표물을 찾아 낮게 날거나 정지 비행을 하다가 급강하하여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냥하고, 앉아 있는 새를 덮치기보다는 새가 날아오르는 순간을 노린다. 단독 또는 암수가 함께 생활한다.
정지 비행을 하며 잠자리를 먹고 있는 황조롱이 암컷.
날개 길이는 68~76㎝이며 암컷의 몸길이는 수컷보다 다소 큰 38㎝, 수컷은 33㎝로 몸매가 날렵하다. 농경지나 도심에서도 관찰되는 텃새다. 매과에 속한다.
수컷의 머리는 청회색이다. 눈 아래로 수염 모양의 검은색 뺨 선이 뚜렷하다. 꼬리는 청회색이며 끝부분에 넓은 검은 띠가 있고 그보다 끝에 좁은 흰색 띠가 있다. 등과 날개는 적갈색이고 흑갈색 반점이 흩어져 있다. 몸 아랫면은 엷은 황갈색 바탕에 가는 흑갈색 세로 줄무늬가 흩어져 있다.
목격한 흰 황조롱이의 등과 날개덮깃에 조밀한 반점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암컷으로 보인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