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야생동물

개는 ‘이별’을 알고 있었다

등록 2017-07-28 16:15수정 2017-08-27 17:19

[애니멀피플] 긴수염동물기
막대기를 가져온 검은 개, 악수하고, 던지고, 가져오고…
곧 헤어져야 하는 걸 아는 걸까? 개는 먼저 멀어졌다

호주 태즈메이니아 베이오브파이어에 갔을 때였다.

주차장 옆에 큰 개 한 마리가 묶여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거리를 두고 쪼그려 앉았더니, 냉큼 달려오며 작은 막대기를 물고 왔다. 개는 카메라에 머리를 콩 박고는 나와 인사했다. 온몸으로 ‘놀아줘!’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영어로 인사하려다가 문득 예전에 캐나다에서 25마리의 개가 있는 집에서 홈스테이를 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개에게 무심결에 한국말을 했더니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영어로 말을 해볼까? 그렇지만 이 개가 혹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가족들과 살지도 모르기에 아예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막대기를 달라고 내 앞발을 내밀었더니 녀석은 털썩 주저앉아 자기 앞발을 내민다. 엉겁결에 악수를 했다. 녀석이 내려놓은 막대기를 녀석의 앞발에 올리자 다시 물어서 툭 내려놓는다. 던져달라는 사인일 것이다. 내가 막대기를 주워들자, 개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눈이 똥그래진다. 오로지 막대기에 집중! 목이 졸릴까봐 일부러 가까이 던졌다. 신나게 달려가 막대기를 물고 온다. 바로 내려놓을 줄 알았는데, 내가 앞발을 내밀어 내놓으라고 하자 또다시 주저앉더니 악수를 청한다. 아, 뭔가 소통이 완벽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웃음이 나왔다. 마치 다른 나라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 웃게 되는 실수를 하는 느낌이랄까.

처음 보는 개와 막대기로 놀았다. 개는 먼저 장난을 걸어왔고, 먼저 멀어져 갔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을까.  긴수염 제공
처음 보는 개와 막대기로 놀았다. 개는 먼저 장난을 걸어왔고, 먼저 멀어져 갔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을까. 긴수염 제공

개는 악수를 마치고는 막대기를 내 앞에 툭 던졌다. 얼굴을 자세히 보다가 문득 아는 분과 같이 사는 개가 떠올랐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개였다. 막대기 놀이를 몇 번 반복하면서, 내가 그 개의 방식에 적응하였다. 아마도 이렇게 훈련된 것이리라. 막대기 물고 오면 악수하고 내려놓고, 나는 던지고 기다리고 개가 돌아오면 악수하고, 웃음의 반복…

개는 달릴 때마다 신이 났다. 뛰어가는 네 다리의 경쾌함과 붕붕 휘두르는 꼬리의 상태를 유심히 보면 알 수 있다. 한참 놀다가 내가 이제 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녀석은 ‘이제 가는구나’라는 표정을 지으며 먼저 멀어져갔다. 기분이 묘했다. 어떻게 헤어지는 순간을 알아차린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과 그렇게 만나고 헤어졌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 그렇게 묶여서. 떠나는 이를 보내며 헛헛한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아 개는 먼저 고개를 돌리고 떠나버리는 건 아니었을까. 나는 그 개의 뒤에 대고 “놀아줘서 고마워, 잘 있어”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긴수염동물기
긴수염동물기

긴수염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긴수염입니다. 어려서부터 본능적으로 모든 동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좋아했어요. 하지만 잡아먹는 것을 좋아하기도 해서 기어다니던 시절에는 벌레들을 무수히 잡아먹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잡아먹지는 않지만 가끔 실수로 입에 들어오는 벌레들을 먹기도 합니다.

지구별의 수많은 지구생명체 중 인간동물로 살아가며 만난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유롭게 살아가는 야생동물을 좋아해서 그들이 멸종되기 전에 멀리서라도 만나고 싶어 지구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야생생활을 합니다. 언젠가는 문명을 벗어나 야생인간동물로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인간중심적 자본주의 세상에서 과잉개발과 이상기후 현상 등으로 야생과 동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모든 것을 일상적으로 기록하며 저항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으로 가득한 도시에도 비둘기와 길고양이 등의 도시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혼자 야생을 돌아다니며 자연에서 네발로 다니다가 야생동물과 마주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끔 저보다 크거나 힘이 센 동물을 만날 때면 온몸의 털이 쭈뼛 서기도 하지만요. 특기는 동물발견, 취미는 동물기록, 장래희망은 동물해방입니다.

긴수염/지구별여행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1.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2.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3.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4.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5.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