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박진의 벌떼극장
자기 몸무게 절반 되는 꿀 들고 돌아온 일벌
입 맞춰 꿀 전달하는 건 '신성한 노동'이어라
뽀뽀하고 있는 꿀벌. 민경난 제공
벌에 대해 공부하며 꿀벌을 알아가는 중 ‘꿀벌은 뽀뽀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꿀이 달콤한걸까?! 꿀벌은 정말 뽀뽀쟁이일까? 그게 궁금했다. ‘언제, 왜 뽀뽀하는 거지?’ 이런 궁금증에 꿀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살펴봐도 못 보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벌통 뚜껑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꿀벌의 뽀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으슥한 골목길에서 뽀뽀하다 들킨 사람들처럼 내가 보고 있으니 급하게 그 행동을 멈추긴 했지만. 그렇다보니 내가 본 게 제대로 본 게 맞는 건지 헷갈렸다.
다시 꿀벌을 관찰해보기로 마음먹고 몇 분을 더 기다렸다. 수많은 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고 있으니 ‘윌리를 찾아라’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몇 분 후에 또 다시 뽀뽀하는 꿀벌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 꿀벌들은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연인을 만난 것처럼 진하게(?) 오래도록 뽀뽀를 했다. 그 장면을 영상에 담았다.(미안하다 꿀벌들아, 물어보지도 않고 너희의 모습을 담아서)
뽀뽀하는 꿀벌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더 궁금해졌다. 꿀벌 세계는 암벌이 90%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중심사회이다. 뽀뽀를 하는 장면을 살펴봐도 암벌인 일벌과 또 다른 암벌인 일벌 사이에서 일어나는 장면이었다. 인간 세계로 따지면 여자와 여자가 입맞춤을 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왜 암벌과 암벌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꿀벌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꿀벌의 역할 구분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꿀벌은 일령에 따라 하는 일의 역할이 구분된다. 태어나자마자 자기가 태어난 벌방을 청소하고, 어린 벌은 로열젤리를 생산하고 밀랍으로 집을 지으며 벌통 내부에서 집안일을 한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태어난 지 20일 정도가 지나면 이제부터는 바깥에서 일을 하는 벌로 그 역할이 바뀐다. 벌을 키우는 사람들은 이걸 내역벌(내부에서 일을 하는 벌·이하 집안일벌), 외역벌(외부에서 일을 하는 벌·이하 바깥일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구분하고 있다.
집안일벌 모습. 박진 제공
꿀벌의 일생. 여왕벌이 알을 낳고 21일이 지나면 새로운 꿀벌이 태어난다. 어반비즈서울 제공
눈치 빠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가 보아온 꽃에 앉아있던 벌은 모두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장년벌이다. 이들의 주된 임무는 집안의 먹이가 떨어지지 않게 꿀과 꽃가루를 모아오는 일! 한 번이라도 더 많은 꽃에서 꽃꿀을 가져오는 게 그들의 임무이기에 그들의 임무는 꽃에서 꽃꿀을 가져오는 일로 한정된다.
바깥일벌들은 하루에 수천송이의 꽃을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몸무게의 1/2정도 되는 양의 꿀을 모아 집으로 돌아온다. 사람으로 바꿔 생각해보면 60㎏의 사람이면 30㎏ 무게의 물건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도 단 한번이 아닌 수차례에 걸쳐 그런 일을 행한다. 그런 바깥일벌이 벌집 안에 들어가서 꿀을 저장하는 일까지 한다면 가뜩이나 비행하느라 힘을 모두 소진했는데 일의 효율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꿀벌 세계에서는 역할이 세분화되어 있다. 뽀뽀도 이 단계에서 일어난다. 바깥일벌이 집안일벌에게 자신의 뱃속에 저장된 꽃꿀(nectar)을 전달해주는 활동이 우리가 생각하는 꿀벌의 뽀뽀이다. 바깥일벌에서 집안일벌로 꽃꿀이 전달되면 집안일벌은 비어있는 육각형의 벌집 하나하나에 꿀을 다시 뱉어낸다. 이 때 집안일벌은 꽃꿀을 자신의 침과 섞는다. 이런 과정은 수십차례 진행하고 날갯짓을 통해 꽃꿀의 수분량을 약 20% 이하로 낮추는 작업을 진행한다. 꽃꿀이 진짜 꿀이 되는 과정동안 꿀벌의 몸은 필터역할을 한다. 꽃꿀에 있는 좋지 않은 성분들이 벌의 몸에 의해 걸러지게 된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야 우리가 먹는 달콤한 꿀(honey)이 된다.
꽃에서 모아온 꽃꿀이 꿀이 되는 과정 중에 일어나는 꿀벌의 뽀뽀는 그들의 먹이인 꿀을 상하지 않게 저장하기 위한 과정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보기엔 정말 달콤한 장면일 수도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가장 고된 작업 중의 하나이다. 꿀벌 세계에서 일벌은 약 6개월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꿀이 많이 나오는 봄여름에 태어난 일벌들은 고작 40~50일 정도 밖에 살지 못한다.(과로에 시달린 현대인이 생각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달콤한 겨울을 위해 꿀벌들은 자신의 남은 생애와 맞바꿔가며 꿀을 모아온다. 그렇게 달콤한 꿀은 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고 자신들의 어린 동생들이 태어나고 꿀벌세계가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소비(벌집) 위쪽에 흰색으로 막힌 꿀방이 있고, 아래쪽은 아직 겉이 막히지 않은 꿀방이 있다. 2/3가 막히면 채밀할 만하다. 박진 제공
꿀은 꽃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아카시아꿀은 투명하고, 밤꿀은 진하다. 박진 제공
달콤한 뽀뽀라고만 생각했던 그 장면이 사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한 신성한 노동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소중하게 모아놓은 꿀을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강탈하는 것이다. 꿀벌 1마리가 평생 모아오는 꿀의 양은 약 5g. 시중에서 판매되는 1㎏의 꿀은 약 200마리의 벌이 평생에 걸쳐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오늘부턴 꿀 한 방울을 먹을 때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꿀벌의 노동을 생각하며 먹어야겠다.
박진 예비사회적기업 어반비즈서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