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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초파리에게 ‘사랑의 묘약’ 방출 명령내리는 기생 세균

등록 2017-08-24 13:27수정 2017-08-25 13:46

감염 초파리 배설물에 다량의 성호르몬, 몰려든 상대에 퍼뜨려
세균 이용한 새로운 ‘페로몬 함정’으로 병·해충 제거에 이용 기대
초파리에 감염된 세균은 더 많은 감염 상대를 꾀기 위해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앙드레 카르와트 아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초파리에 감염된 세균은 더 많은 감염 상대를 꾀기 위해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앙드레 카르와트 아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겁을 잃고 고양이 배설물에 이끌려, 결국 이 기생충의 숙주인 고양이를 감염시킨다. 어떤 기생성 편형동물은 달팽이의 눈 자루에 모여든 뒤 마치 이발소 간판처럼 다른 색깔과 무늬를 펼쳐 천적인 새의 눈길을 끈다.

병원체나 기생동물이 이처럼 숙주의 행동과 생리 활동을 조작해 일종의 ‘좀비’로 만드는 사례가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런데 세균이 숙주의 사회적 소통을 조작하는 사실이 초파리 연구에서 밝혀졌다.

편형동물이 기생한 달팽이의 눈 자루는 천적의 눈에 잘 띄도록 무늬가 색깔이 변한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미국 코넬대 연구자들은 치명적 세균에 감염된 초파리가 내는 냄새를 조사했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연구자의 하나인 마르쿠스 크나덴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는 “초파리에게서 병든 냄새를 감지해 회피하는 신경회로를 발견할 생각이었는데, 대신 건강한 초파리들이 감염된 초파리 냄새를 맡고 곁으로 몰려들었다”며 “병든 초파리가 아주 많은 양의 페로몬(성호르몬)을 방출해 결국 모여든 초파리를 모두 감염시키는 걸 보고 놀랐지만 더 흥미로웠다”라고 막스플랑크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병든 초파리가 내는 냄새가 어떤 화학물질이고 얼마나 많은지 등을 측정했다. 처음 예상처럼 병균에 감염된 초파리가 페로몬을 많이 분비해 짝짓기 기회가 늘어 번식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험 결과 감염 초파리의 세균에 엄청나게 많은 페로몬이 들어 있어 여기 몰려든 초파리를 감염시켰다. 병균이 번성해 초파리에 끼친 피해가 클수록 페로몬 생성량도 늘어났다.

페로몬은 사회적 소통 수단이다. 세균은 이런 소통을 늘림으로써 감염 기회도 키울 수 있다.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일수록 더 학질모기에 잘 물리며, 말라리아 원충을 보유한 학질모기일수록 더 자주 흡혈한다는 연구결과가 그런 사례이다. 소통을 통해 말라리아 원충은 감염을 늘린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초파리 실험 시설 모습. 아나 쉬롤 제공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초파리 실험 시설 모습. 아나 쉬롤 제공
연구자들은 다른 초파리 7종과 황열병을 옮기는 모기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세균 감염이 냄새의 종류를 극적으로 바꾼다는 것을 확인했다. “병균이 사회적 소통을 조작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자연계에서 흔한 현상인 것 같다”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나아가 새로운 ‘페로몬 함정’을 이용해 질병 확산을 막고 농업용 해충을 퇴치할 가능성도 있다. 크나덴은 “곤충에 세균을 감염시킴으로써 페로몬 방출을 늘릴 수 있다. 이를 통해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페로몬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Ian W. Keesey, Sarah Koerte, Mohammed A. Khallaf, Tom Retzke, Aur?lien Guillou, Ewald Grosse-Wilde, Nicolas Buchon, Markus Knaden, Bill S. Hansson. Pathogenic bacteria enhance dispersal through alteration of Drosophila social communication. Nature Communications, 2017; 8 (1) DOI: 10.1038/s41467-017-00334-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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