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김천 수도산에서 발견된 반달곰 KM-53. 지리산에서 약 80㎞를 왔다. 이 곰은 다시 지리산에 풀어줬으나 다음 달 다시 수도산에서 발견됐다. 현재 지리산 자연적응훈련장에 있다. 생명의 숲 제공
“15년 전 시범방사 때 지리산에 반달곰 4마리를 방사했습니다. 한 마리는 밀렵으로 죽었습니다. 한 마리는 민가의 벌통을 훼손해, 또 한 마리는 등산객에게 초코파이를 얻어먹어먹다가 회수됐습니다. 그리고 또 한 마리는 경남 진양호까지 이동했다가 댐에 막혀 더 이상 못 가고 회수됐어요.” (최태영 국립생태원 박사)
지리산 반달곰이 지리산을 ‘탈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7월 지리산 야생 반달곰 ‘KM-53’이 김천 수도산으로 이동한 사건에 관련해, 환경부와 행정당국이 이번 사태를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반달곰의 서식지 확대가 확인된 이상 새로운 단계의 반달곰 복원, 보전 정책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정미 국회의원(정의당)이 주최하고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 녹색연합, 동물권단체 케어가 주관한 ‘멸종위기 반달가슴곰 복원 정책 진단 및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2015년 10월 지리산에 방사된 KM-53은 지난 6월과 7월 두 차례 지리산을 떠나 수도산에서 발견됐다. 환경부는 안전 문제를 우려해 현재 KM-53을 지리산 자연적응훈련장에 수용하고 있는 상태다.
발제자로 나선 이항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지리산 반달곰은 야생동물 복원 성공 사례 중 하나”라며 “김천 수도산으로 간 KM-53이 반달곰의 서식지 확대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했다.
이항 교수는 그러나 “사전에 반달곰의 분산 예상지역을 분석한 뒤, 주민을 교육하고, 갈등 조정장치를 준비하는 등 반달곰 서식지 확대를 대비한 대책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온 최태영 박사도 “반달곰 시범사업 때 이미 겪었던 일이 다시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항 교수는 개체 중심의 종 복원에서 생태축을 복원하는 노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멸종위기종 복원위원회'라는 일종의 국가위원회를 만들어, 복원 사업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맡기자고 제안했다.
30일 오전 이정미 국회의원(정의당)이 주최한 ‘멸종위기 반달가슴곰 복원 정책 진단 및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항 서울대 교수(수의학)이 발표하고 있다. 남종영 기자
이어 발제에 나선 전동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달곰의 이동 및 확산 능력이 예상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반달곰 서식지가 확대되면서 부딪힐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 연구위원은 야생동물의 이동 시뮬레이션 모델인 ‘랜덤 워커'를 이용해 지리산 반달곰의 이동 경로를 간이 예측해보니, 김천 수도산 등 북동쪽, 전북 무주 덕유산 등 북쪽으로 많이 가게 될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달곰이 지리산에서 개체 수를 불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한반도 대부분 지역의 도로 밀도가 1 이상이어서 대형포유류가 안정적으로 살기 힘들다는 점도 지적했다. 전 연구위원은 “고속도로 건설로 인한 국토 파편화 현상으로, 1969년에는 국토가 2덩어리(패치)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2016년에는 67덩어리로 나누어져 있다”고 덧붙였다. 고속도로가 야생 서식지를 분절시킴으로써 동물의 이동이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당장 결정해야 할 것은 수도산에 두 번이나 갔다가 회수, 감금된 KM-53을 어떻게 할지다. 이날 환경·동물단체는 KM-53의 즉각적인 방사를 요구했다.
환경부는 ‘재방사’로 방향은 정했지만, 최종 장소는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김천시는 수도산에 반달곰 서식지를 조성하겠다며, 환경부에 조성 계획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는 수도산에 모노레일 등 관광개발 계획 등이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수도산은 지리산과 달리 국립공원이 아니어서 개발 압력에 더 크게 노출되어 있다. 강미정 환경부 사무관은 “지리산과 수도산 어디에 재방사할지 의견이 갈리고 있어 최종 결정을 못 한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지리산 권역에는 반달곰 47마리(방시 19마리, 야생 28마리)가 살고 있다. 앞으로 KM-53 같은 ‘지리산 탈출 개체’가 또 나타날 수 있다. KM-53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여부는 향후 반달곰 복원 정책의 방향을 보여줄 전망이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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