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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중부리도요는 허리케인도 무섭지 않아!

등록 2017-09-17 08:59수정 2017-09-17 10:45

[애니멀피플] 악천후를 대하는 야생동물의 자세
일부 철새는 허리케인 감지해 이동 시기 바꾸기도
청설모는 나무에서 떨어지고, 바다거북 알은 유실
중부리도요는 허리케인 등 악천후에 상관없이 예정대로 이동하는 ‘용감한’ 철새다. ‘호프’라는 중부리도요는 열대폭풍을 만나자 속도를 줄이면서 비행을 계속하기도 했다.  중부리도요가 풀숲에 앉아있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제공
중부리도요는 허리케인 등 악천후에 상관없이 예정대로 이동하는 ‘용감한’ 철새다. ‘호프’라는 중부리도요는 열대폭풍을 만나자 속도를 줄이면서 비행을 계속하기도 했다. 중부리도요가 풀숲에 앉아있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제공
지난 몇 주 동안 카리브해 섬나라들과 미국 남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줬다.

허리케인 ‘어마’는 15일까지 최소 8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대서양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중 가장 강력했던 어마로 인해 카리브해의 작은 섬 바부다에서는 섬의 육상 구조물 가운데 95%가 파괴됐다. 이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지 300년 만에 처음으로 1800여 명에 달하는 모든 인구가 섬을 떠나 무인도가 되었다.

허리케인은 사람과 건축물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생태계도 엄청난 피해를 본다. 워낙 강력한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부러지고 잎과 꽃, 열매는 다 떨어진다. 뿌리째 뽑혀 쓰러진 나무도 많다.

숲이 파괴되면 지표면은 열대의 태양에 노출되어 더 뜨거워지고 건조해진다. 카리브 해의 섬들은 대체로 울창한 숲을 가지고 있어 습도가 높은 반면 구름이 많고, 온도는 아주 높지 않다. 그런데, 허리케인 때문에 숲이 파괴되면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가 이어진다. 이 때문에 이곳에 사는 동식물상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허리케인 때문에 식물상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동물상까지 변화되는 것이다.

1989년에 허리케인 ‘휴고’가 푸에르토리코를 초토화한 이후 여러 종류의 달팽이와 대벌레가 현저하게 감소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들의 밀도는 허리케인이 닥치기 이전에 비해 25%이하였다. 허리케인 휴고 이후에 대벌레는 그곳에서 멸종되다시피 했다가 5-6년이 지나서 겨우 숫자가 회복되었다.

시속 11㎞로 감속해 열대폭풍 통과

어떤 야생동물은 허리케인이 오는 것을 감지해서 그곳을 떠나기도 한다. <포브스> 보도에 따르면, 새들은 초저주파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기압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허리케인이 다가오는 것을 사전에 감지한다. 덕분에 어떤 철새들은 이동 시기를 앞두고 허리케인이 닥치면 평소보다 서둘러 이동에 나선다.

악천후 속에서 갈매기가 하늘을 날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악천후 속에서 갈매기가 하늘을 날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중부리도요같은 일부 철새는 허리케인에 상관없이 예정대로 이동하기도 한다. 아메리카 대륙을 남북으로 이동하는 중부리도요들에게 인공위성 위치추적장치(GPS)를 달아 조사해봤더니, 허리케인을 뚫고 날아가는 것이 확인되었다. 2011년에 허리케인 ‘아이린’이 불어왔지만 ‘친쿠아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중부리도요 한 마리는 허리케인을 지나 월동지인 남미로 날아갔다. 같은 해 ‘마치’와 ‘고셴’이라는 이름의 중부리도요도 허리케인을 무사히 통과했지만, 각각 카리브해의 어느 섬과 멕시코에 잠시 쉬려고 내려앉았다가 사람에 의해 사냥당하고 말았다.

그 해에 ‘호프’라는 이름의 중부리도요는 캐나다 노바스코샤 근해에서 열대폭풍 ‘거트’를 만났다. 강풍 속에서 무려 27시간 비행을 계속했는데, 속도는 고작 시속 11㎞에 불과했다. 열대폭풍을 무사히 벗어난 호프는 곧바로 순풍을 만나 시속 145㎞로 날아 기착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2005년 캐나다 퀘벡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향하던 큰 무리의 굴뚝칼새가 허리케인 ‘윌마’에 휩쓸려 많은 수가 희생되었는데, 이듬해에 퀘벡주로 돌아와 번식하는 굴뚝칼새의 개체 수가 절반으로 줄었을 정도였다. 허리케인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일부는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텃새들은 울창한 덤불 속이나 바람이 불어오는 나무의 반대편에 붙어서 허리케인이 몰고 오는 비바람을 피하기도 한다. 딱따구리와 앵무새들은 나무 구멍 속의 둥지에서 허리케인을 피하기도 하는데, 허리케인의 위력이 너무 강하면 나무가 쓰러지거나 부러지는 바람에 새들도 피해를 본다.

1989년에 허리케인 ‘휴고’가 미국 남동부 일대에 큰 피해를 주었을 때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매리언국립숲의 붉은벼슬딱다구리는 몰살당할 뻔했다. 당시 붉은벼슬딱따구리들이 둥지를 틀고 살던 나무의 87%가 부러지는 피해를 보았으며, 붉은벼슬딱다구리의 60%가 희생되었다. 다행히 허리케인에 살아남은 새들이 이후에 성공적으로 번식해 개체 수가 늘어났다.

서식지 좁을수록 멸종 위험 커져

서식지가 일부 섬에 제한되거나 개체 수가 많지 않은 텃새에게 허리케인은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구아카라고 불리는 푸에르토리코의 앵무새는 이 섬에만 사는 새인데, 1989년에 닥친 허리케인 휴고 때문에 다 죽고 22마리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허리케인의 피해를 입는 것은 새들뿐만이 아니다. 청설모류의 경우 어린 개체들이 나무 위의 둥지에서 떨어지는 일이 많다. 또한 이들의 먹이가 되는 나무 열매와 씨앗류도 허리케인 때문에 고갈되기에 십상이다.

바다거북의 경우 어미가 알을 낳은 해변의 모래 구덩이가 파도에 휩쓸리는 경우가 있다. 파손된 전선이 물에 빠지면 물고기를 비롯한 물속 동물들이 감전되어 죽기도 한다. 비가 많이 오면 물속의 용존산소가 갑자기 부족해지기도 하고, 홍수로 인해 토사와 모래, 자갈 등이 하류로 떠밀려오면서 물고기 등의 서식처가 훼손된다.

많은 해양 포유동물이 바다에서 허리케인을 피하지만, 일부 돌고래와 매너티는 강력한 파도로 인해 해변으로 떠밀려오기도 한다. 땅속에 굴을 파고 사는 가시올빼미 같은 동물들은 세찬 바람에 날려온 이물질로 굴 입구가 막히거나 홍수가 나서 굴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보기도 한다.

허리케인 ‘어마’가 덮치기 전후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버진고다 섬의 인공위성 사진. 8월25일에는 섬이 푸른색으로 숲이 있었으나, 9월10일에는 갈색으로 변했다.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사실상 파괴된 것이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허리케인 ‘어마’가 덮치기 전후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버진고다 섬의 인공위성 사진. 8월25일에는 섬이 푸른색으로 숲이 있었으나, 9월10일에는 갈색으로 변했다.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사실상 파괴된 것이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8월27일 허리케인 ‘하비’가 미국 휴스턴을 덮치자, 한 시민이 반려견을 들고 대피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8월27일 허리케인 ‘하비’가 미국 휴스턴을 덮치자, 한 시민이 반려견을 들고 대피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메리카흰두루미는 북미대륙에서 가장 키가 큰 새인데, 여름에 캐나다와 미국 중서부 일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미국 남부의 해안 습지에서 월동하는 철새다. 서식처 파괴와 남획 때문에 1941년에는 야생 개체 수가 21마리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멸종위기에 처했다. 이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투자하고 노력한 결과 지금은 야생 개체 수가 451마리로 늘었으며 161마리는 인공증식 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다. 야생 아메리카흰두루미의 70% 가량이 월동하는 곳이 바로 텍사스주의 해안습지 아란사스국립야생동물보호구역인데, 이곳이 지난 8월말에 허리케인 ‘하비’로 직격탄을 맞았다.

다행히 두루미들은 아직 여름 번식지인 캐나다의 우드버팔로국립공원에 있으며, 9월말께부터 이동을 시작해 아란사스에는 10월 중순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두루미들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국제두루미재단의 현지 사무실이 허리케인으로 완전히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두루미의 월동지인 아란사스 해안습지도 상당히 훼손되었지만, 그 피해가 아메리카흰두루미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카리브해와 미국 남부처럼 허리케인의 영향을 자주 받는 곳에서는 이런 현상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기후변화 때문에 허리케인이 점점 더 자주 발생하고, 그 강도는 더 세졌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마용운 객원기자 ecol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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