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알레포 외곽에 있는 테마파크 동물원 ‘매직월드’에 13마리 동물이 남아있었다. 포포즈가 구조한 사자. 아후 사반 안/포포즈 제공
시리아 내전 중 최대 격전지였던 알레포.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 전에는 460만명 사는 시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380만 명이 국제 난민이 되었다. 오랫동안 반군이 장악했던 알레포는 4년 5개월에 걸친 포위 공격 끝에 지난해 말 시리아 정부군이 장악했다. 7천년 된 유서 깊은 도시는 거듭된 공습과 포격으로 폐허가 되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 ‘매직월드’라는 동물원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동물단체 ‘포포즈 인터내셔널’(Four Paws International)은 살아남아 포화를 견디던 매직월드 동물원의 동물들을 구조했다. 포포즈 인터내셔널은 <애니멀피플>(애피)에 사진과 동영상, 보도자료를 제공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인터넷판은 지난 5일 이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포포즈 자료와 언론 보도를 토대로 긴박한 구조작전을 재구성했다.
‘아미르 칼릴’이라는 사람
매직월드는 미국의 디즈니랜드를 본따 만든 놀이공원으로 알레포 외곽에 있다. 약 10㎢에 이르는 꽤 큰 동물원이었는데, 폭격을 당했다. 알카에다와 연관된 수니파 반군 조직이 군사기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매직월드에는 내전이 시작될 당시 300여 마리의 동물이 사육되고 있었다. 거듭된 폭격과 교전으로 많은 동물이 죽었다. 일부는 굶어 죽었고 치료를 받지 못해 병에 걸려도 죽었다. 어떤 동물들은 밀거래 시장에 팔려나갔다.
아미르 칼릴은 매직월드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3마리의 동물 구출작전을 진두지휘했다. 이집트 출신 수의사인 그는 특수훈련을 받은 베테랑으로 지난 23년 동안 포포즈와 함께 분쟁지역이나 재해지역에서 고통받고 있는 동물들을 구조해왔다.
그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바그다드동물원의 동물들을 구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2011년에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몰락할 당시 정치적 혼돈 속에서 칼릴은 트리폴리 동물원의 700여 동물을 관리하는 책임을 지기도 했다. 2016년에는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에 처해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의 칸유니스동물원에서 오래전에 죽은 동물의 말라버린 사체로 연명하던 15마리 동물들을 구조했다. 지난 3월에는 2014년 6월부터 이슬람국가(IS) 치하에 있던 이라크 모술 동물원에서 사자와 곰 한 마리씩 구조했다. 포포즈가 이 내용을 발표하자 포포즈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알레포에도 가달라는 청원이 폭주했다.
시리아 알레포 매직월드 동물원에서 구조된 사자가 터키의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다. 아후 사반 안/포포즈 제공
칼릴이 조사해봤더니 매직월드의 상황은 아주 심각했다. 사육사가 있기는 했지만 드문드문 동물원에 갔으며, 교전이 벌어지면 동물들은 먹이나 물도 없는 상황에서 포격을 견뎌야 했다. 국제보안회사에 자문했더니,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알레포에서 터키 국경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칼릴은 포기하지 않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백방으로 찾았다.
15년 먹이 주고 떠난 동물원 사장
매직월드는 건설에만 8년 소요되었으며, 50개의 놀이기구와 식당, 수족관, 동물원이 있었다. 나일악어와 호랑이, 사자, 표범, 치타, 원숭이, 사슴, 뱀 등 300여 마리의 동물이 있었지만 2017년 초에는 50여 마리로 줄어 있었다.
동물원 주인은 사육사에게 15년 동안 동물들을 먹일 수 있는 만큼의 돈을 맡겨놓고 지난해 터키로 탈출했다. 그렇지만 매직월드에 홀로 남겨진 사육사는 동물들을 먹일 돈이 필요하다면서 재규어와 백호 등 희귀한 동물을 다른 나라로 팔아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포포즈가 알레포의 한 수의사에게 동물들의 상황을 파악해달라고 요청했더니, 그는 박격포탄 잔해가 흩어져 있는 곰 우리와 뽀얀 먼지 속에 힘없이 누워있는 호랑이, 아픈 사슴 등을 휴대전화로 사진 찍어 보내왔다.
시간은 흘렀다. 6월이 되자 호랑이 두 마리와 사슴이 죽었고, 원숭이들은 사라졌다. 구출작전이 시작될 시점에는 16마리의 동물이 살고 있었다. 7월21일 새벽에 동물들을 트럭에 실을 때는 표범 세 마리가 사라져 13마리의 동물만 남았다.
구출작전이 실제로 수행되기 이전에 몇 달에 걸쳐 면밀한 계획을 세우면서 주변국 정부 및 국제구호단체, 군사 전문가, 사설 보안회사 등과 긴밀히 연락하면서 이들의 협조를 구했다. 시리아 내의 여러 군사세력과도 접촉해서 이들의 지지 또는 묵인을 얻어야 했다. 시리아는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군과 이에 맞선 반군세력, 쿠르드 민병대, 이슬람국가, 기타 무장세력 등이 시리아 곳곳을 분할해서 점령하며 서로 맞서는 복잡한 상황이다. 여기에 미국과 러시아, 터키 등의 외부 세력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하면서 내전이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포포즈 활동가들이 구조된 동물을 옮기고 있다. 아후 사반 안/포포즈 제공
알레포에서 터키 국경까지는 약 150㎞. 그리 멀지 않지만, 교전이 한창 진행 중인 지역이었다. 여러 군사세력들과 협상하고 이들의 협조를 얻어야 했다. 계속 바뀌고 있는 내전 상황을 면밀히 확인하며 대안 구출경로까지 확보해야 했다. 게다가 가는 길은 곳곳에 폭격을 맞아 깊게 패고 지뢰도 묻혀있다. 10개가 넘는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며,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 미국, 터키 공군 전투기의 폭격도 사전에 막아야 했다. 길목 곳곳에 잠복해 있을지 모르는 저격수도 언제 총구를 겨눌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수니파 반군조직은 국경을 통과하는 조건으로 20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포포즈는 알레포에서 출발해서 북서쪽으로 가다가 쿠르드 민병대가 차지하고 있는 아프린 인근 검문소를 앞두고 쿠르드 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로 수송 인력을 교체한 다음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터키 국경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7월20일에 경쟁 관계에 있던 수니파 무장세력들이 매직월드 인근에서 격렬한 교전을 벌였다. 이에 따라 인근 지역의 통치 지형이 바뀌고 새로운 검문소들이 만들어졌으며, 이들을 안전하게 통과하기 위해 탈출 일정이 늦춰졌다. 상황이 좀 진정되자 바로 다음 날 구출작전이 시작되었다.
위장행렬 출발 뒤 작전 개시!
배고픔에 지친 맹수들을 잠재울 마취제도 없고, 400㎏에 달하는 무거운 강철 우리를 들어 올릴 장비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밤새 동물들을 트럭으로 옮겼다. 사자 세 마리와 호랑이 두 마리, 곰 두 마리, 하이에나 두 마리가 길을 나섰다.
매직월드 주변을 장악한 반군들은 직접적인 위협이었다. 이들이 밀반출을 막기 위해 동물들을 압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에 구조대는 여러 개의 비상 대응계획을 세웠다.
반군의 눈을 속이기 위해 위장 수송행렬이 다른 방향으로 출발했다. 본대는 이슬람 휴일인 7월21일 금요일 먼동이 틀 시간에 정찰용 차량 한 대와 호위 차량 한 대와 함께 출발했다.
아프린 근처에서 쿠르드 민병대 측 관리들이 수송행렬을 막아섰다. 이들은 쿠르드 측 부상병 250명을 치료하기 위해 터키 정부가 입국을 허가해야 길을 터주겠다고 조건을 내세웠다. 구조대는 협상을 거부했고, 결국 9시간이 지나 터키 국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터키 국경에서 대기하고 있던 트럭으로 동물 우리를 옮기는데 주어진 시간은 딱 한 시간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동물들을 위해 국경을 열어준 것은 아주 특별한 결정이었다.
터키에서 다시 24시간을 달려 1200㎞ 떨어진 동물 재활시설에 도착했다. 그동안 구조대는 사흘 밤을 꼬박 새우며 잘 수 없었다. 이렇게 9마리의 동물이 안전한 땅에 도착했지만, 아직 매직월드에는 사자 두 마리와 개 두 마리가 남아있었다.
포포즈는 그들을 남겨두지 않았다. 2차 구출작전도 개시됐다. 그러나 매직월드 주변의 교전 상황이 심각해져서 이곳에 남아있던 사자 두 마리와 개 두 마리에 대한 2차 구출작전이 지연되었다. 그런데, 현지 수의사가 ‘다나’라는 이름의 암사자가 곧 새끼를 낳을 것 같다고 알려주자, 구조대는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시리아 알레포 매직월드 동물원에서 구조된 하이에나. 아후 사반 안/포포즈 제공
시리아 알레포 매직월드 동물원에서 구조된 호랑이. 아후 사반 안/포포즈 제공
매직월드에 남아있던 사육사와 호송단은 7월 28일 오후 섭씨 38도의 폭염 속에서 출발했다. 쿠르드 민병대는 또다시 아프린 인근 검문소에서 수송행렬을 세우고 사육사의 죽은 형이 알카에다와 연관된 세력에 동조해 활동했다는 이유로 사육사를 체포하고 죽이겠다고 했다. 결국 포포즈 관계자가 나서서 몇 시간이나 말싸움을 벌인 끝에 사육사는 풀려나 다시 알레포로 돌아갈 수 있었다. 터키 국경이 폐쇄되는 오후 7시가 다 되었지만, 수송행렬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다행히 칼릴이 국경을 지키는 터키 측 경찰에 간청해서 밤 9시15분에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터키에 도착할 당시 13마리 동물들은 모두 심각한 탈수 증세와 영양실조 상태였다. 온몸 곳곳에 흉터가 있었으며 상처와 염증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이 많았다. 이들은 혈액과 눈, 초음파, 기생충 검사를 받고 백신도 접종받았다.
뼈만 앙상한 호랑이 ‘술탄’은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수의사들이 건강검진을 위해 마취시켰더니 심장 박동이 멈추었다. 응급실로 옮겨져 마취를 풀어주는 약과 아드레날린을 투약하고 인공호흡을 했더니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수컷 하이에나는 백내장으로 시력이 손상됐고, 암컷은 심각한 신장병을 가지고 있었다. 곰들은 두려움과 지루함을 이기려고 철창을 물어뜯는 바람에 이빨이 손상돼 있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전쟁 지역에서는 총격과 폭발, 파괴와 죽음 때문에 동물들도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받는다.
터키에서 잠시 머문 동물들은 8월 10일 요르단으로 이송됐다. 하이에나와 개들은 요르단 암만의 한 보호시설로 보내졌고, 사자와 호랑이, 곰은 요르단의 다른 동물보호시설로 옮겨졌다. 호랑이들은 대형고양잇과 동물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치유하는 네덜란드의 시설로 보내진다. 요르단의 보호시설에 도착한 그 날 밤에 암사자 다나는 새끼 한 마리를 무사히 낳았다.
마용운 객원기자, 사진 포포즈 인터내셔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