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블라딕’의 여행
지난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획 뒤 방사
700㎞ 걸어 돌아와 공항 근처에서 발견
연구팀 “위치 공개 못 해…북한 쪽 갈 수도”
최근 극동 러시아 도시 블라디보스톡에 다시 나타난 시베리아호랑이(한국호랑이) ‘블라딕’. 유튜브 갈무리.
호랑이가 돌아왔다.
인구 60만의 극동 러시아 도시 블라디보스톡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 주요 매체가 보도했다. 최근 하바롭스크에서 잣을 채취하던 한 남성이 호랑이에게 희생당한 후라서 더욱 불안하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이름을 따서 ‘블라딕’이라고 불리는 네 살짜리 수컷 시베리아호랑이(한국호랑이)는 지난해 10월에도 블라디보스토크에 나타나 비상사태를 불러왔다. 이 도시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40년 만이었다. 당시 호랑이는 며칠 동안 시 외곽을 돌아다니며 곳곳에서 목격됐다. 호랑이 사진은 에스엔에스(SNS) 등을 통해 퍼졌지만, 눈이 내리지 않아 발자국이 없는 등 추적하는 데 애를 먹었다. 결국 차량이 많이 다니던 도로 주변에 있다가 운전자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쏜 마취총을 맞고 생포되었다. 140㎏의 수컷, 건강한 상태였다.
7달 동안 호랑이 재활센터에서 보호받던 블라딕은 지난 5월 멀리 떨어진 비킨 국립공원에 방사됐다. 사람이 살지 않는 오지인 데다 숲이 좋고 먹이가 많아 호랑이에게는 최적의 서식처였다.
비킨국립공원에 야생방사되는 ‘블라딕’. 세계자연기금(WWF) 동영상 갈무리.
최근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에서 다시 발견된 블라딕.
그러나 블라딕은 국립공원에서 잠시 머물다 700여㎞를 걸어 다시 블라디보스톡 근처까지 왔다. 그러다 최근 블라디보스토크공항 인근 마을에서 확인된 것이다.
연구팀이 추적해보니 블라딕은 시베리아횡단철도와 고속도로를 건너기도 했으며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호랑이가 즐겨 먹는 사슴뿐만 아니라 반달가슴곰도 세 마리 이상 잡아먹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괜한 걱정을 하는 걸 막기 위해서 연구팀은 블라딕에 부착된 인공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통해 얻는 실시간 위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블라딕은 현재 블라디보스토크공항에서 도시를 우회하면서 중국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목적지가 될 수 있다고 이 지역 온라인 매체 ‘시베리안타임스’는 보도했다. 아무르호랑이센터의 안드레이 쇼신은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인터뷰에서 “블라딕이 성공적인 발자국을 내디뎠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블라딕의 야생방사 과정을 담은 영상.
시베리아호랑이는 남획과 서식지 훼손 때문에 1930년대에 이르러 서식 범위와 개체 수가 많이 감소했지만, 최근 보호 노력 덕분에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에는 야생 호랑이 560여 마리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용운 객원기자 ecoli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