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카페에서 라쿤이 땅을 파듯 시멘트로 된 바닥을 긁는 장면이 자주 발견됐다. 라쿤의 야생 서식지는 숲, 연못, 습지 등 얕은 강이다. 서울 시내 한 야생동물 카페에서 라쿤 한 마리가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다. 벽에는 콘센트가 떨어진 채 노출돼 안전사고 위험도 우려된다. 녹색당 제공
식음료를 파는 카페에 야생동물을 두고 전시·체험을 하는 신종 업체가 늘어나면서 각종 안전사고와 생태계 교란, 인수공통질병 전염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이들 업체에 대한 보고서를 나란히 펴낸 녹색당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전국 35개, 서울 시내에만 10개의 야생동물 카페가 성업 중이다. 2010년대 들어 나타난 이들 카페는 초반에는 영세한 규모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보니타 디 카페’, 맹쿤 등 프랜차이즈로 규모를 대형화하며 확산하고 있다.
9일 녹색당이 펴낸 ‘서울시내 야생동물 카페 전수조사 보고서’를 보면, 동물들은 생태 습성에 맞지 않는 먹이, 시끄러운 소음, 야생과 다른 바닥 재질, 밤낮 구분 없는 채광과 조명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한 카페에서는 초식동물인 왈라비가 인공사료만 먹다 보니 실밥이 튀어나온 방석을 뜯으며 풀을 뜯어 먹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이 관찰됐다. 라쿤의 야생성을 잠재우기 위해 송곳니를 발치한 카페도 있었다. 추운 지방에 사는 북극여우와 은여우를 사육하는 카페는 이들을 에어컨이 없는 외부에 방치하거나 얼음 조각을 쏟아부어놓은 게 전부였다.
7일 어웨어가 발간한 ‘야생동물 카페 실태조사 보고서’는 야생동물 카페가 동물복지를 저해할 뿐만 아니라 인수공통질병 감염 등 공중보건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어웨어는 서울 시내 9개 야생동물 카페를 조사한 결과, 1곳을 제외하고는 예방접종 현황이 공지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라쿤, 미어캣, 프레리도그 등 야생동물은 인수공통질병의 병원체 창고 구실을 한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식품위생법상 음료를 마시는 곳과 동물이 사육되는 곳은 분리되어야 하지만, (야생동물 카페는) 말 그대로 동물과 사람들이 뒤엉켜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동물들에게는 은신처가 없고 사람들에게는 질병 전파 위험을 안기는 곳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 야생동물 카페는 대만에서 시작해 일본에서 붐을 일으킨 뒤 전세계적으로 퍼졌다고 녹색당은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돼지, 부엉이, 매 등을 비롯해 카피바라 같은 희귀동물을 갖다 놓은 카페, 좁은 어항과 전시 공간에 펭귄을 가둔 펭귄 바까지 확대됐다. 타이 또한 친칠라, 미어캣, 마모셋 등 다양한 야생동물 카페가 별다른 규제 없이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는 너구리의 일종인 ‘라쿤 카페’가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동물원·수족관법이 지난 5월부터 시행됐지만, 야생동물 카페는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8일 국회에서 열린 ‘동물원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도 기형적 형태로 동물전시 영업을 하는 야생동물 카페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항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라쿤 카페는 매우 심각한 생태계 교란과 공중보건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규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유지인 교육연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