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남방큰돌고래의 신기한 행동
바닷가에 돌담 쌓아 만든 제주 원담에
돌고래 한마리 들어와 한달을 머물렀다
지난 18일 남방큰돌고래 ‘담이’가 제주 행원리 원담 안에서 헤엄치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담이는 원담 안에서 머물기를 좋아한다. 김미연 제공
“돌고래가 원담에 또 들어왔어요”
지난 9월18일 제주 구좌읍 행원리 원담에 돌고래 두 마리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행원으로 출발했다. 늦은 시간 행원리 앞바다에 도착하니, 돌고래 두 마리가 먹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어 확인했다. ‘담이’였다! 이튿날, 걱정하면서 다시 찾았지만, 담이와 돌고래는 이미 바다로 돌아간 뒤였다.
한 달이 지났을까. 10월25일이었다. 제주에서 남방큰돌고래를 연구하는 ‘교토대-제주대-이화여대 돌고래연구팀’ 모두가 제주도를 비운 날을 골라 담이가 다시 원담에 들어왔다. 해양경찰청은 10월 27일, 30일 그리고 11월1일 돌고래가 원담 안에 있다고 전했다. 소식을 듣고 제주도에 도착한 필자도 그 돌고래가 담이인 것을 확인했다.
원담에는 돌고래도 들어와
원담은 자연지형과 물때를 이용해 만든 제주의 전통 고기잡이 시설이다. 돌로 담을 쌓고 밀물이 들어오면 물을 가두었다가 썰물 때 남는 물고기를 잡는다. 이곳 행원리 바닷가에도 낚시꾼들 사이에 유명한 원담이 있다. 물고기가 많이 모이는 이유는 상류에 양식단지가 있기 때문이다. 양식단지에서 사용한 바닷물은 여러 번의 필터시스템을 거친 뒤 원담을 거쳐 빠져나간다. 양식장에서 키우던 물고기가 나오기도 하고 사료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흘러나온 사료가 숭어 같은 물고기 떼를 불러모으는 것이다.
이 잔칫상에 남방큰돌고래가 빠질 리가 없다. 행원 앞바다를 지나가던 남방큰돌고래들은 심지어 원담 속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가끔 썰물 때 원담을 빠져나가지 못해 갇히는 돌고래도 있다.
하늘에서 바라본 담이의 모습. 김미연 제공
지난 9월18일 행원 원담에 들어와 있는 남방큰돌고래 두 마리. 이 중 한 마리가 ‘담이’다. 김미연 제공
이런 현상을 처음 지켜본 건 2015년이었다. 남방큰돌고래 두 마리가 행원리 원담에 들어와서 간조 때 머물다가 다음 만조를 이용해 바다로 돌아간 것이다.
2016년 9월8일에도 한 마리가 들어왔다. 하루를 보내고 바다로 돌아갔는데, 이게 웬일? 두 달 뒤인 11월5일 또 한 마리가 원담에 들어온 것이다. 바로 가서 확인했다. 돌고래 등지느러미를 사진으로 찍어 확인해보니, 지난 9월에 원담에 스스로 들어왔던 개체였다! 이튿날 스스로 나갈 줄 알았지만, 돌고래는 계속 원담 안에 머물고 있었다. 돌고래 건강 상태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고래의 움직임과 호흡 주기를 관찰했다. 남방큰돌고래 다큐멘터리를 찍는 이정준 감독의 도움으로 장수진 이화여대 연구원과 함께 드론촬영, 수중촬영은 물론 맨눈으로 돌고래를 관찰했다.
목이 뻐근해서 담이!
원담 안에서 돌고래는 물때에 맞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이 많이 빠졌을 때는 활동반경이 물이 고이는 한 곳으로 줄어들고 한 방향으로 천천히 수영했다. 반면 바닷물이 만조일 때에는 커진 웅덩이에 따라 활동반경도 넓어졌으며 넙치를 잡아먹기도 했다. 관찰 첫째 날, 호흡 주기를 측정해보니 평균 45.4±31.1초 (최소 10초, 최대 139.54초)가 나왔다. 먹이 활동을 하는 것으로 추정될 때는 호흡 주기가 평균 42.9±46.1초(최소 5.5초, 최대 173.9초)로 약간 줄었다. 쉬는 것으로 추정될 때는 호흡 주기가 평균 56.4±48.7초(최소 6.9초, 최대 158.6초)로 늘었다. 또한 수중촬영을 통해 이 개체는 수컷이며, 배 쪽에 점이 많은 것을 보아 나이가 있는 성체임을 알 수 있었다. 외상이나 건강 문제는 없어 보였고, 물고기도 잘 잡아먹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인위적으로 돌고래를 몰아 바다로 내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돌고래에게 쇼크를 주거나 안전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나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지난 11일 원담 안의 담이. 김미연 제공
지루한 날이 계속됐다. 온종일 원담에서 돌고래를 지켜본 날도 있었고, 아침 일찍 들렀다가 나간 뒤 다시 만조 시간에 맞춰 어두컴컴한 밤까지 돌고래를 지켜본 날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침 일찍 원담으로 가는 길 뒷목이 당기고 아픈 게 담이 온 것 같았다. 그래서 요 녀석 이름을 ‘담’이라고 지었다. 뒷목이 댕기는 ‘담’이며 원담의 ‘담’이다. 그러기를 거의 보름. 11월4일 원담에 들어간 담이는 11월17일 바다로 나갔다. 몇 주 뒤에는 야생에서 다른 무리와 함께 발견됐다. 그렇게 담이의 스토리는 끝난 줄 알았는데, 또 담이가 들어온 것이다!
담이 괴롭히지 마요
지난달 25일 들어온 뒤, 담이는 한 달 가까이 원담에 머물고 있다. 언제 나갈까? 날씨가 좋아 드론을 띄우고 촬영했다. 다행히 담이의 건강은 양호한 것으로 보였다. 요즘에는 원담에 많이 들어오는 꽁치를 잡아먹는 것 같다. 한달 여간 지켜 보면서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사람들였다.
간조 때 원담 안의 물웅덩이는 파도가 없이 잔잔하다 보니 지나가던 관광객들의 눈에 담이가 자주 뛴다. 물이 빠지면서 돌담을 걸어 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야생 돌고래를 보고 사진을 찍는 게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쇼돌고래들을 대하듯 뛰어보라며 소리 지르고 손뼉 치고 휘파람 불고 바닷물에 손을 넣는 건 돌고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행동이다. 게다가 간조 때에는 물웅덩이가 작아져 돌고래는 멀리 다른 곳으로 피할 수도 없다.
제주 행원 원담 주변에는 다양한 새들도 찾아온다. 김미연 제공
원담에서 담이를 관찰하고 있노라면, 관광객의 이런 행동을 수도 없이 본다. 또 담이나 다른 개체가 원담에 들어간다면 돌고래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또한 인간의 안전을 위해서도 원담 안으로 들어가서 돌고래에게 가까이 접근하거나 만지는 건 좋지 않다. 돌고래의 건강을 위해서나 야생에 나가게 하기 위해서, 음식물이나 생선을 던져주는 것도 안된다. 돌고래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관찰은 카메라 등을 이용하여 멀리서 하는 것이 좋고, 드론은 50m 이하로 내려가지 않게 하는 편이 좋다.
22일 오후 늦게 원담으로 2시간 동안이나 운전해가는 내내 ‘담이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원담에 도착했을 때 자세히 보니 담이가 보이지 않았다. 빨리 뛰는 심장에게 나대지 말라고 충고 후 30분 동안 원담 안쪽과 바로 바깥쪽을 관찰했다. 어떤 돌고래도 보이지 않았다. 관찰 기록을 살펴보면, 18일과 22일 사이에 빠져나간 듯 하다.
담이는 원담 밖의 너른 바다로 다시 돌아갔다. 나를 한달 동안 ‘괴롭힌’ 담이를 이제 야생에서 만나는 날을 기다린다.
김미연 통신원·일본 교토대 야생동물연구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