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는 앞다리 부분인 상체가 엉덩이 쪽인 하체보다 발달했다. 주둥이로 땅을 파 뭐든 캐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권투시합 중계 때 아나운서가 ‘저돌적으로 파고드는…’이라며 ‘저돌적’이란 단어를 자주 쓴다. ‘저돌적’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 겁 없이 앞뒤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질주하거나 덤벼든다는 말이다. 그럼 ‘저돌적’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저돌에서 猪(저)자는 돼지 ‘저’자이고 突(돌)자는 ‘돌진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돼지가 앞으로 돌진해서 달린다는 뜻이다. 돼지의 성질을 잘 표현한 말이다. 돼지가 얼마나 돌격적이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 싶다. 가축화된 돼지가 아니라 멧돼지를 두고 하는 말로 보인다.
멧돼지는 앞다리 부분인 상체가 엉덩이 쪽인 하체보다 발달했다. 주둥이로 땅을 파 뭐든 캐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전체적인 체격과 비교하면 주둥이가 크고 머리통도 큰 편이다. 딱 벌어진 어깨에 비교하면 엉덩이는 날씬하다. 체형이 역삼각형 형태다. 초식동물인데도 육식동물처럼 겁 없이 활개를 치고 다니길 좋아한다. 저돌적인 것 믿고 그런가?
멧돼지는 잡식성이라 굼벵이나 개구리처럼 작은 동물만 살생을 할 뿐, 칡뿌리 캐 먹고, 고구마랑 감자밭을 후벼 파 들춰 먹을 정도다. 육식동물처럼 다른 동물을 해코지하는 놈이 아니다. 다른 놈을 위협하려면 우선 털을 세워 겁부터 준다. 털끝이 갈라져 털을 세우면 북슬북슬 실제보다 몸집이 커 보여 지레 겁먹어 도망가게 하려는 속임수다. 겁이 통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해치려는 낌새가 있으면 성질머리 더러워진다. 사나운 기운이 솟아올라 저돌적인 기질이 나와 갑자기 달려드는 다혈질로 돌변한다.
멧돼지는 다른 놈을 위협하려면 우선 털을 세워 겁부터 준다. 노정래 제공
화나면 멧돼지처럼 한 성질 하는 놈이 또 있다. 들소가 그렇다. 들소도 멧돼지처럼 머리 쪽인 상체가 하체보다 더 통통하다. 무게중심이 상체 쪽으로 쏠려 있다. 큰 머리와 상체에 비교하면 엉덩이 쪽은 홀쭉하다. 체형이 역삼각형 형태다. 균형 잡힌 몸매는 아니다. 먹이 다툼을 하거나 수가 틀려 화가 나 자기들끼리 싸움이 한판 붙으면 끝장 볼 생각으로 밀어붙인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씩씩거리며 콧구멍으로 화를 뿜어낸다. 이런 싸움은 누군가 항복하거나 도망갈 때까지 계속된다. 힘이 비등비등할 땐 옆구리나 어깨가 상대편 뿔에 찍혀 살점이 찢겨나갈 지경까지 싸우기도 한다. 이런 특성을 서로 잘 알아 맞장 떠 기세를 장악할 자신이 없으면 애당초 덤벼들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싸움이 빈번하지 않다.
우리나라 1960~70년대엔 동물보호가 법적으로 느슨해 여우 씨가 말랐고, 멧돼지도 눈 씻고 찾아봐야 보일까 말까 했다. 지금은 멧돼지가 골칫거리가 됐지만, 그 당시 멧돼지를 방사하겠다는 계획으로 연구도 했다. 동물원에서는 한적한 곳에 번식장을 만들어 멧돼지 수를 늘리기도 했다. 그러다 야생에 방사할 필요가 없자 동물원에서 아예 멧돼지를 키우지 않았다. 그 후엔 반달가슴곰을 번식시켜 지리산으로 시집, 장가보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여우를 애지중지 돌보고 있다. 새끼 낳아 자라면 일부는 국립공원 종복원기술원으로 보내 소백산에 방사할 것으로 본다. 이미 2012년에도 보낸 바 있다. 이렇게 동물원은 살아서 움직인다. 사람들에게 단지 보여주려는 목적만으로 동물원에서 동물을 기르지는 않는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하마.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들소와 반대로 엉덩이가 펑퍼짐한 동물이 있다. 가슴 쪽 상체는 엉덩이와 비교하면 작은 편이다. 체형이 삼각형 형태다. 하마랑 코끼리가 이런 몸매다. 이놈들도 울화가 치밀어오르면 한 성깔 하지만 멧돼지나 들소처럼 다혈질은 아니다. 코끼리끼리 싸움이 격해지면 위턱에 길게 자라 나온 상아로 찌르거나 머리로 들이받아 밀치며 싸우지만, 멧돼지처럼 저돌적이진 않다. 하마도 그렇다. 물속 또는 늪이나 앉은 자리에서 몸으로 밀치거나 입 벌려 물어뜯는 정도다. 사람들이 싸울 때 머리끄덩이 잡고 서로 흔들어 대는 정도다. 평소에 이동할 때도 굼떠 느린 편이다. 궁둥이가 크니 뜀박질도 빨리 못한다. 그렇다고 구렁이 담 넘듯 느릿느릿하진 않다. 소처럼 배불리 먹고 아예 한적한 곳에 들어앉아 되새김질하며 쉬며 즐기는 놈도 있다. 같은 초식동물이지만 하는 행동은 딴 판이다.
동물원에서는 이런 동물의 특성을 고려해서 동물 사육에 반영하고 있다. 돌격적으로 달려드는 동물이 사는 곳의 울타리는 쿠션이 있는 철망으로 빙 둘러친다. 돌격 앞으로 할지라도 자동차 범퍼가 충격을 흡수하듯이 울타리 철망 쿠션이 충격을 흡수해 죽음은 피하게 해준다. 사슴 사육장이 대표적인 예다. 가끔 숨어야 마음이 편한 초식동물이 사는 곳엔 키가 작은 나무나 풀을 심어 은폐 공간을 만들어 줘 심리적 안정을 주고 있다.
케냐의 암보셀리에서 코끼리들이 상아를 들이대며 놀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현대엔 야생동물 서식지와 사람이 사는 곳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야생동물은 산이나 들에, 사람은 주로 도시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인간이 수렵 생활하던 시대엔 구분 없이 공존했다. 가만 보면 현대의 인간들이 동물과 공존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지 동물을 끼고 살거나 가까이 접하며 산다. 이 그리움이 싸이의 말춤을 대박나게 했고, 미키마우스가 디즈니랜드를 성공으로 이끌었을 듯싶다. 동물의 특성을 잘 알아 적용하면 성공이 보인다. 올해엔 동물원이나 산과 들에 나갈 때 한 번쯤 야생동물을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우연히 자기 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영감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동물이 몸매에 따라 성향이 달라지듯 사람도 똑같다. 들소처럼 역삼각형 체형으로 상체가 발달한 사람은 양적인 사람일 수 있고, 반면에 삼각형 체형으로 엉덩이가 펑퍼짐한 사람은 음적인 사람일 수 있다. 틈만 나면 동물원에 찾아가 동물을 자주 보고 이런 특성을 밝혀낸 형상의학 분야 한의사도 있다. 이를 적용해 양적인 체질인 사람은 활동적인 직업을, 음적인 체질인 사람은 정교하고 꼼꼼한 일을 하면 정신건강에도 좋을 듯싶다. 사람마다 자기와 닮은 동물이 있다. 동물원 나들이 때 나와 닮은 동물이 누군지, 그 놈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아보면 어떨까? 본인의 건강 수명을 늘리는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노정래 전 서울동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