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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반달곰으로 이미 ‘포화’ 직전…우리는 맞을 준비 됐나

등록 2018-05-21 09:56수정 2018-05-21 18:05

[애니멀피플]
2017년 7월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포획된 뒤 지리산국립공원에 ‘연방사’(soft release·자연적응훈련장 문을 열어 자연스레 출입을 유도하는 방사 단계)된 KM-53이 숲을 돌아다니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2017년 7월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포획된 뒤 지리산국립공원에 ‘연방사’(soft release·자연적응훈련장 문을 열어 자연스레 출입을 유도하는 방사 단계)된 KM-53이 숲을 돌아다니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밤이 이슥해지자 곰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리산에서 태어난 4살 반달곰 KM-53(한국에서 53번째로 태어난 수컷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서 출발해 크고 작은 산을 타고 동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경북 김천 수도산 방향이었다. 목적지의 끝은 KM-53만이 알지만, 그는 지난해 6월과 8월 두 차례 지리산에서 직선거리로 80㎞ 떨어진 수도산까지 이동했다가 안전 문제 등의 이유로 포획돼 다시 지리산에 방사됐다.

그렇게 몇날 며칠을 걸어 지난 5일 새벽 4시께, 풀숲을 헤치고 내려와 그가 마주한 것은 쭉 뻗은 4차선 고속도로였다. 어디로 가야 할까. 숲길은 끊기고 사방이 트여 있는 가운데 위아래로 도로가 있었다. 4차선 가운데에는 중앙분리대가 놓여 있었다. 이제까지 마주한 도로는 구불구불해서 차가 느리게 달리거나 2차선 도로 정도로 차량 이동이 적은 곳이었다.

곰은 고민했을 것이다. 뛸까, 되돌아갈까.

곰은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것을 택했다. 고속도로 양쪽으로 가로등이 총총히 서 있었지만 시커먼 곰의 몸은 칠흑 같은 어둠에 녹아들었다. 곰의 왼쪽에서 이른 산행을 하는 등산객들을 태우고 고속버스가 달려왔다. 쿵! 시속 100㎞로 달리던 고속버스와 곰이 부딪혔다. 버스 기사는 이날 오후 곰으로 보이는 야생동물과 충돌했다고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에 신고했다. 곰은 사고 직후 고속도로를 빠져나갔고, 고속버스 앞면에 붙은 털 등으로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교통사고가 난 동물은 KM-53인 것으로 11일 밝혀졌다.

KM-53은 왜 자꾸 수도산으로 가는 걸까?
5월부터 반달곰 관리 ‘서식지 중심’ 전환해
지리산 밖으로 나가도 잡지 않지만
KM-53은 세번째 여행 나가자마자 교통사고 났다
적정 개체 78마리인데, 이미 56마리 사는 지리산
KM-53도 번식 위해 빠져나간 걸까

교통사고로 왼쪽 앞다리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복합골절을 입은 KM-53은 사고 엿새째 만에 경남 산청 태봉산에서 포획돼 17일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에서 골절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꼬박 12시간이 걸려 새벽 1시께 끝이 났다. 앞다리의 부서진 뼛조각을 찾고, 철심을 박았다. 뼈가 붙고 재활을 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환경부 관계자는 “재활 기간 사람과 접촉이 불가피한 터라 야생에 재방사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몸이 회복되면 그때 관련 전문가들과 모여 재방사 논의를 한다. 야생 적응 훈련은 일단 시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KM-53의 지리산 탈출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앞선 2017년 두 번 다 수도산에서 발견·포획돼 지리산에 재방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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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53 재방사 여부 ‘불확실’

KM-53은 왜 자꾸만 지리산을 벗어나 여행을 떠날까. 장이권 이화여대 교수 연구실이 2017년 10월에 발표한 ‘지리산국립공원 반달가슴곰 적정 수용력 보고서’에 따르면, 반달가슴곰과 같은 대형 포유류는 지형, 개체의 나이, 성별 및 건강 상태, 계절적 변동 등에 따라 서식지 이용에 변이가 많은데, KM-53의 경우 복원 개체들 사이에서 태어난 곰으로 정상적인 야생 곰의 행동을 보인다고 밝혔다.

야생 곰이 서식지를 이동하는 까닭은 크게 두가지다. 먹이 경쟁에 실패했거나 짝짓기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영역을 넓히는 것. 그런데 지리산은 반달가슴곰의 주식이라 할 수 있는 도토리 열매가 맺히는 참나무류가 60% 이상 분포하고 있어 안정적으로 먹이 자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이동 이유는 짝짓기 기회를 넓히기 위한 쪽에 더 기울어져 있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보고했다. 장 교수는 17일 애니멀피플과의 통화에서 “KM-53은 성체에 가까운 수컷 반달가슴곰이다. 반달가슴곰은 3~4살부터 성체라고 보는데 번식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나눈다. 그런데 영역을 확보하기 전에는 번식할 수 없다. 번식할 영역을 찾아서 떠나는 것을 ‘분산’이라고 하는데, KM-53은 (지리산 반달가슴곰 가운데) 유독 먼 거리를 이동해 눈에 띄는 개체이긴 하다”고 설명했다.

KM-53은 유별난 곰인 걸까.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리산을 벗어난 다른 반달가슴곰들도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리산국립공원 권역 밖에서 신호가 잡힌 적이 있다고 밝혔다. 지리산을 벗어난 곰 가운데 진주 인근까지 내려간 곰도 있었지만, KM-53만큼 먼 거리를 이동한 반달가슴곰은 한 개체도 없었다. 권역을 벗어난 곰들은 대부분 스스로 돌아오거나 포획되어 지리산에 재방사됐다. 장이권 교수는 KM-53의 이동 거리에 대해 “반달가슴곰의 경우 보고된 것은 없지만, 비슷한 종인 아메리카흑곰의 경우 수백㎞ 분산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번 갔던 동선을 반복해서 가는 곰의 성향에 따라 KM-53은 유독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했을 가능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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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하는 곰, 이미 많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현재 지리산에는 56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산다. 2020년 50마리를 목표로 시작한 종 복원 사업 목표를 앞당겨 달성한 셈이다. 지리산이 반달가슴곰을 수용할 수 있는 적정 개체 수는 78마리로 보고 있다. 지리산국립공원 내에서 빠르게 개체 수를 늘려가는 반달가슴곰의 서식지 확보를 위해 환경부는 지난 2일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관리 방식을 개체 중심에서 서식지 관리 중심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반달곰 KM-53이 두번째로 수도산에 갈 때 도로를 건넌 흔적. 반달곰은 이제 지리산을 벗어날 수 있게 됐지만, 로드킬의 위험은 상존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지난해 7월 반달곰 KM-53이 두번째로 수도산에 갈 때 도로를 건넌 흔적. 반달곰은 이제 지리산을 벗어날 수 있게 됐지만, 로드킬의 위험은 상존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시민단체 ‘반달곰친구들'이 지난달 발표한 ‘반달가슴곰 복원 15년에 대한 진단과 평가’ 보고서를 보면, 반달가슴곰은 2008년부터 지리산 권역을 벗어나는 행동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2010년 광역보호구역이 설정, 시행되었지만, “인간과 야생동물 공존의 선과 같은 기능을 갖는 지역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이나 제도적 보완 없이 시간이 흘렀다”고 이 단체는 분석했다.

환경부는 이번 사고 이후 곰의 도로 횡단이 예상되는 지역에 안내 표지판을 설치하고, 야생동물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연결 통로 설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24일 환경부, 한국도로공사, 시민단체 등이 모여 KM-53의 사고 현장을 직접 탐사하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지리산 반달곰 KM-53이 18일 골절 수술을 성공리에 마쳤다. 복합골절 주위 엑스레이 사진(위)과 수술 뒤 봉합된 모습. 반달가슴곰 성체의 복합골절을 수술한 사례는 세계 최초라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밝혔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지리산 반달곰 KM-53이 18일 골절 수술을 성공리에 마쳤다. 복합골절 주위 엑스레이 사진(위)과 수술 뒤 봉합된 모습. 반달가슴곰 성체의 복합골절을 수술한 사례는 세계 최초라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밝혔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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