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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당신의 무지가 동물을 고아로 만든다

등록 2018-05-29 09:57수정 2018-05-29 16:49

[애니멀피플] 노정래의 동물원 탐험
고라니 새끼는 독립하기 전, 어미에게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 2011년 경기 고양시의 장항습지에서 고라니 두 마리가 풀숲을 헤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고라니 새끼는 독립하기 전, 어미에게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 2011년 경기 고양시의 장항습지에서 고라니 두 마리가 풀숲을 헤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요맘때 산에 가다 운이 좋으면 올봄에 태어난 어린 동물을 만나기도 한다. 솜털이 뽀송뽀송한 애 띤 다람쥐, 풀숲에 숨어 있는 고라니 새끼, 초보 비행을 하는 어린 새가 눈에 띈다. 어린 동물이나 퍼덕퍼덕 서툴게 날아가는 새를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엄마를 잃었을 법한 이놈들을 보면 잡아서 동물구조센터나 동물원에 갖다 줘야 할까?

동물마다 갓 태어난 새끼 능력은 제각각이지만
어미에게 생존에 필요한 것들 배운다
야생방사 때도 제대로 길러낸 뒤 방사해야

사람의 경우 갓 태어난 아이는 손, 발만 움직일 뿐 기어 다니지 못한다. 아이는 돌 전후로 걷는다. 하지만 야생동물은 다르다. 태어나자마자 걸음마를 하는 놈도 있다. 기린, 코뿔소, 노루, 산양, 고라니, 소, 말 등이다. 이놈들은 놀랍게도 태어나 한두 시간만 지나도 걷는다. 서툴게 비척거리며 걷지만 걸음마는 걸음마다. 그러다 일주일쯤 자라면 뜀박질할 정도로 빠르다. 반면에 늑대나 여우처럼 굴속에서 태어난 종들은 태어나자마자 걷질 못한다. 태어나 굴속에서 뭉그적거리며 지내다 3~4주는 지나야 굴 밖으로 기어 나온다. 조류의 경우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들은 둥지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놈들도 둥지 속에서 꾸물거리다 날개 깃털이 나고 날아다닐 수 있을 무렵 둥지를 박차고 나온다. 새끼가 걷거나 젖을 뗐다고 부모를 떠나 독립할 시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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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마다 다른 새끼의 행동 발달

초식동물은 태어나자마자 걸을지라도 민첩하지 못하다. 이 시기엔 천적에게 잡혀서 먹힐까 봐 어미가 새끼를 은밀한 곳에 감춰 놓는다. 일례로 고라니 어미는 새끼를 낳아 풀숲에 숨겨 놓고 멀찌감치 떨어져 자기 새끼를 해코지하려고 다가오는지 망본다. 누군가 새끼 쪽으로 접근할 기미를 보이면 어미는 시끄럽게 왔다 갔다 하면서 파닥파닥 소리를 내 관심을 끈다. 아예 새끼 근처에 가지 못하게 하려고 반대쪽으로 슬슬 도망가며 유인하기도 한다. 어린 고라니가 숲에 혼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주위엔 반드시 어미가 있다.

간혹 사람들이 산에 혼자 있는 고라니 새끼를 발견하고 동물원이나 야생동물구조센터로 데려오기도 한다. 어린 고라니가 어미를 잃은 것으로 여겨 우유라도 줘서 살려야겠다는 마음에서 그랬을 것이다. 엄마가 근처에 있었는데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 고아로 만들고 말았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새끼를 데려왔더라면 원래 있던 곳에 놔 주면 된다.

부엉이, 올빼미 등 새 새끼의 깃털은 북슬북슬하고 주위 색깔과 유사하다. 언뜻 보면, 낙엽인지 새 새끼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은폐가 잘 돼 있다. 일부러 찾아야 보일까말까 한데 어떻게 봤는지 어미를 잃은 새끼라며 데려오는 사람도 있다. 이 역시 주위에 부모가 반드시 있다. 동물들은 어린 자식을 버리지 않는다. 주위에 없다면 먹이 잡으러 잠시 외출했을 것이다. 어리지만 보호색이 워낙 잘 돼 있어 천적의 눈에 잘 띄지 않고 곧 부모가 와서 보살필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위에 부모가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그 자리에 두고 가까운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연락하면 된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생각대로 동물의 마음을 읽기도 한다. 사람 관점으로 봐서 이젠 새끼가 다 컸다며 어미로부터 떼어 내 다른 곳으로 보내기도 한다. 반려동물에서 흔하고 심지어 야생동물에서도 고아를 만들기도 한다. 어미가 죽었다면 몰라도 다 크기 전에 일부러 어린 새끼를 어미로부터 떼어 내면 안 된다. 고아로 살면서 겪는 심리적 고충을 우리가 알까? 다 크지 않은 어린 코끼리를 어미로부터 떼어 다른 동물원으로 보냈더니, 가족이랑 정상적으로 자란 코끼리보다 정형행동이 심하다는 외국 사례도 있다. 정형행동이란 특정한 동작을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으로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전문가들은 어릴 때 부모를 떠나 살면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정형행동이 심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반달가슴곰은 생후 3~5개월이면 젖을 떼지만 2~3살에 어미로부터 독립한다. 이달 초 지리산을 떠났다가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한 반달곰 KM-53은 2015년 1월 태어나 그해 10월에 방사됐다. 생후 9개월째 방사된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반달가슴곰은 생후 3~5개월이면 젖을 떼지만 2~3살에 어미로부터 독립한다. 이달 초 지리산을 떠났다가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한 반달곰 KM-53은 2015년 1월 태어나 그해 10월에 방사됐다. 생후 9개월째 방사된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동물도 어릴 때 반드시 부모와 함께 지내야 한다. 어릴 때 부모에게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 먹이 구하는 방법, 자기 종의 언어와 문화, 구애행동을 어떻게 하는지, 천적이 추격할 때 따돌리는 방법 등을 공부한다. 만약에 배우지 못했다면 커서 부모가 되어서도 자식에게 가르칠 수 없다. 학습이 안 된 동물이 큰일을 겪은 사례가 있다. 동물원에서 사람 손에 큰 기번(Gibbon·긴팔원숭잇과에 속하는 종)이 어미가 되어 새끼를 낳은 적이 있다. 이 새끼가 젖을 먹는 시기엔 별 탈 없이 잘 컸으나 젖을 뗄 무렵 죽고 말았다. 인공포육으로 자란 엄마가 자식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배우지 못해서 그랬다. 원래 야생에서 자식이 젖을 뗄 무렵엔 나뭇잎이나 열매를 따 먹으면서 자식에게도 먹어 보라며 내미는데 배우지 못해 자기만 먹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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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방사 하기 전에 확인할 것들

동물원은 멸종위기종을 번식시켜 서식지에 방사하기도 한다. 종보전센터로서의 역할을 하는 동물원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요즘은 몇몇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기관에서도 야생동물 복원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때 제대로 길러 낸 동물을 방사해야 한다. 그 종이 갖춰야 할 언어와 문화 등 모든 것을 다 배우게 해야 한다. 방사할 종이 조류, 대륙사슴 또는 반달가슴곰이건 새끼가 엄마에게 배울 시간이 충분해야 한다. 야생에서 새끼가 어미로부터 독립하는 나이는 종마다 다르다. 새끼가 독립한다는 것은 혼자 살 수 있을 만큼 자랐다는 얘기다. 부모에게 배워야 할 것을 다 배웠다는 의미도 있다. “젖을 뗐으니 이쯤 방사해도 되겠지?”라는 사람 시각으로 어린놈을 풀어줬다간 의도와 달리 고아를 만드는 격이 될 수 있다. 이는 자칫 사지로 내몰 수 있고 혈혈단신으로 살면서 겪는 심리적 고통을 평생 끌어안고 살게 할 수도 있다. 반려동물이건, 봄에 산에서 만나는 어린 동물이건, 서식지에 방사하는 멸종위기종이건 어린 동물을 다룰 때 동물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노정래 전 서울동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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