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칸토가 생전에 서울동물원 코끼리사 방사장을 걷고 있다. 지인환 사육사 제공
“다른 동물을 많이 떠나보냈지만 코끼리는…. 특히 칸토는 특별했다.”
토요일이던 지난 2일 오후 6시 관람객이 빠져나간 고요한 경기도 과천의 서울동물원의 코끼리사 내실, 서울동물원 사육사 10여명과 수의사들이 모여 코끼리 ‘칸토’의 몸을 조각낸 뒤 살과 뼈를 분리했다. 칸토를 쓰러지게 한 앞발 발톱과 뒤꿈치의 염증이 다리로 번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 대동물관 동물사 뒷마당으로 옮겨진 칸토의 뼈와 살이 땅에 묻혔다.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1985년 서울동물원에 들어와 33년 동안 시민들에게 봉사한 수컷 아시아코끼리 칸토는 그렇게 사람들과 이별을 했다. 사망시각은 2일 오후 4시였고, 그의 나이는 35살로 추정된다.
칸토는 서울동물원이 개장 1년 만에 미국에서 들여놓은 어린 코끼리였다. 1985년 6월 15일 ‘경향신문’ 10면에는 칸토와 키마(암컷·35살 추정)가 처음 서울동물원에 오던 당시를 이렇게 기록했다. “2세짜리인 이 아기코끼리들은 현재 서울대공원(서울동물원의 전신)에 있는 33세의 자이언트군과 태산양의 뒤를 잇기 위해 들여온 것으로 몸값은 자그마치 4천5백만원.”
호랑이, 돌고래 등과 함께 동물원 최고 인기 동물이었던 이들 코끼리 한 쌍이 다시 언론에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이다. 1994년 4월10일자 ‘한겨레신문’ 13면을 보면 칸토와 키마 사이에서 낳은 새끼의 소식이 실려있다. “개원 이후 아시아코끼리가 새끼를 낳기는 처음이다.” 칸토는 서울동물원에 새끼 코끼리라는 선물을 줬던 고마운 동물이었다. 칸토의 새끼인 수컷 코끼리 ‘삼돌이’는 부산 동래동물원으로 보내졌다가 동래동물원이 폐원하면서 2002년부터 대전오월드에 머물고 있다.
칸토가 서울동물원에 올 때 기사. 경향신문 1985년 6월15일자 10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한겨레신문 1994년 4월10일자 13면. 칸토의 새끼 삼돌이의 소식이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난폭하고 공격성이 강한 놈이었다. 우리는 칸토를 ‘못된 악당’이라고 표현했다. ”
칸토를 기억하는 서울동물원 관계자들은 모두 그가 성격이 안 좋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성숙하지 못한 사육기술과 비좁은 동물사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심해서였을까. 2000년대 초반 방사장을 청소하던 사육사를 코로 밀쳐서 다치게 한 사건이 있었다. 3~4년 전에는 동물원 안을 순찰하는 버스에 돌을 던져 버스 차체를 찌그러뜨리기도 했다. 철로 된 담장을 부순 적도 있다. 칸토는 사육사들이 동물원에서 경계해야 할 동물을 꼽을 때 늘 최우선이었다. 2013년께 시작된 ‘긍정적 강화훈련’을 받기 전까지.
칸토의 마지막이 악하지만은 아니었다. 필리핀 야생동물보호센터 대표인 게일 라울, 전 휴스턴 동물원 사육사 마가렛 휘태거는 2013년 이후 서울동물원을 수차례 방문했다. 코끼리를 포함한 야생동물 긍정적 강화훈련을 진행했다. 이 훈련은 코끼리의 몸 중에서 가장 취약한 발의 질환을 치료하고 관리하기 위해 코끼리 스스로 발을 들어 올리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채혈하거나 주사를 맞을 때도 고통을 잘 참아야 했다. 코끼리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먹이를 주면서 훈련을 잘 따르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칸토는 훈련에 잘 적응했다.
당시 칸토를 본 지인환 당시 서울동물원 코끼리사 사육사(현재 하마 담당 사육사)는 7일 “3번째 훈련 때였나 그들이 ‘칸토가 제일 신사적이다. (우리가) 행동을 유도하고 그 행동을 하면 칭찬을 한다는 훈련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지 사육사는 2012년부터 5년 동안 코끼리를 담당했다. 2014년 9월 2일 자 서울대공원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칸토가 발을 나무 펜스에 올려두고 관리받고 있는 모습이 남아있다.
2015년 11월 칸토가 방사장을 걷고 있다. 지인환 사육사 제공
2014년 9월께 긍정적 강화훈련을 받는 칸토. 서울대공원 페이스북
칸토는 짝짓기 때를 제외하면 늘 혼자였다. 암컷이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코끼리 사회에서 수컷 코끼리는 홀로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울동물원의 코끼리 방사장 3곳 중 한 곳이 칸토의 공간이었다. 때로는 다른 코끼리들과 담장을 사이로 서로를 만지기도 했다. 매일 오후 2차례 사육사가 코끼리 생태 설명회를 하면 칸토도 종종 관람객 앞에 섰다. 사육사가 행동풍부화훈련을 위해 방사장에 넣어주는 타이어를 굴리기도 했고 내실에서 실컷 진흙 목욕도 했다. 발정기 때에는 귀와 눈 사이 뺨에 체액을 쏟으며 매우 거칠고 빠르게 움직였다. 하루 건초 40㎏과 사과, 당근, 바나나 등 과일 30㎏ 을 먹었다. 사육사가 기억하기에 최고 몸무게가 5300㎏까지 나갔다. 4톤 정도인 다 자란 암컷 코끼리보다 훨씬 더 컸다.
칸토의 부검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3년 전부터 심해진 양쪽 앞발의 염증이 더는 땅을 딛지 못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짐작하고 있다. 통증이 얼마나 심했을지는 모르지만, 먹이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한다. 야생의 코끼리는 하루 대부분을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논다. 시멘트 바닥에서 사는 동물원 코끼리는 운동량이 부족해 발이나 관절뿐 아니라 정신적 문제까지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국 에든버러 동물원은 1998년 코끼리 전시를 포기했다. 외국의 여러 동물원은 코끼리들을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옮기는 게 이례적인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국내에는 여전히 18마리의 코끼리가 차갑고 좁고 딱딱한 동물원에서 살고 있다.
“그 친구 입장에서는 늘 심심하고 스트레스가 쌓였을 것이다. 그래도 긍정적 강화훈련을 시작하면서부터 사육사가 자신의 행동에 반응하고 먹이도 주니 마음을 열고 차차 온순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지 사육사는 떠난 칸토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코끼리 발 관리법을 소개하는 서울동물원의 표지판. 서울대공원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