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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인간이 배워야 할 ‘동물 같은’ 사랑?

등록 2018-06-19 07:54수정 2018-06-20 17:27

[애니멀피플] 노정래의 동물원탐험
고릴라에서 개구리까지 생식 과정의 ‘강제성’을 살펴봤다
서울동물원의 암컷 고릴라 ‘고리나’. ‘고리롱’이 49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40살 고리나는 혼자가 되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서울동물원의 암컷 고릴라 ‘고리나’. ‘고리롱’이 49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40살 고리나는 혼자가 되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최근 들어 성폭행 관련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수면 위로 올라왔었다. 그만큼 인권이 존중되고 사회가 성숙했다는 증거다. 미투와 위드미 운동이 일파만파로 퍼지다 굵직굵직한 사회적 이슈로 요즘은 주춤하고 있다. 동물도 성폭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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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고리나’ “넌 더 크고 와라”

종보전센터로서의 역할을 하는 동물원 업무 중 하나가 멸종위기에 처한 종의 번식이다. 몇년 전에 외국에서 고릴라를 들여온 적이 있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수컷인 ‘고리롱’이 49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40살인 암컷 ‘고리나’의 대가 끊길 상황이 닥치자 새 신랑을 영국 포트림동물원에서 들여왔던 것이다. ‘우지지’로 부르는 이놈은 19살로 한 눈으로 봐도 어깨가 딱 벌어진 건장한 청년이다. 서로 친하게 지내게 하려고 일단 얼굴을 보게 해 줬다. 옆방에 지내면서 창문으로 얼굴만 보는 정도였다. 느닷없이 만나게 해 줬다간 고리나가 ‘왜 자기 영역에 침입했냐’며 우지지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 뻔해서다.

한달쯤 얼굴 보기를 하다 문을 열어 합방시켰다. 애간장을 태워 만나게 하면 만나자마자 사랑을 나눠 임신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예상과 달리 합방 첫날부터 고리나가 우지지를 본체만체했다. 환심을 사려고 우지지가 작은 나무를 몇 개 뽑아 휘휘 돌리며 고리나 주위를 맴돌아도 거들떠보질 않았다. 용기를 낸 우지지가 슬금슬금 다가가면 어김없이 밀쳐냈다. 한술 더 떠 잘 때 각방 썼다.

영국 포트림동물원에서 들여온 19살 우지지.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영국 포트림동물원에서 들여온 19살 우지지.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고리나(왼쪽 위)와 영국서 온 수컷 우지지가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고리나(왼쪽 위)와 영국서 온 수컷 우지지가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우지지가 힘깨나 쓸 나이라 강제적으로 밀어붙여 임신을 시켜줄 기대를 했으나 단 한 번도 ‘성폭행’은 없었다. 영국 출신 신사라 그런가? 아니다. 암컷인 고리나가 허락하지 않아서다. 수컷이 11살 무렵에 성 성숙이 될지라도 암컷은 대체로 15살 이상인 수컷에게 교미를 허락한다. 고릴라 세계에서 15살은 돼야 신랑감으로 검토하는 모양이다. 40살로 노년인 고리나 눈에 총각 딱지 갓 뗀 19살 우지지가 애송이로 보였을 수 있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랑을 나눴을 수 있다는 생각에 녹화된 시시티브이(CCTV)를 살펴보니 포옹하는 장면만 있을 뿐 성행위나 성폭행은 없었다. 끝내 고리나가 우지지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고리나 나이가 많아 발정이 뜨문뜨문 불규칙적으로 있었는데, 포옹하던 그때가 발정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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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정 난 암말은 수말에게 가서…

홀로 지내는 몽고 야생말 암컷을 위해 외국에서 수말을 들여와 합방시켰으나 첫날밤부터 계획이 어긋났다. 암컷은 수컷을 만나자마자 도망가며 뒷발질해댔다. 말의 뒷발질은 방어 동작이다. 추근대자 싫다는 표현으로 뒷발질했는데, 눈치 없는 수컷이 계속 따라붙어 집적거리다 결국 뒷발에 차여 죽고 말았다. 실제로 야생에서는 발정 난 암말이 수말에게 접근해 ‘히잉’ 거리는 특이한 소리를 내며 앞발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다 짝짓기를 하기도 한다. 발정이 난 암컷이 곁에 있어도 수컷이 힘으로 밀어붙여 강제적으로 짝짓기하진 않는다. 다른 수컷이 접근하지 못하게 악착같이 막을 뿐이다. 암말이 허락해야 짝짓기가 이뤄진다.

나무 위에서 자리를 잡고 암컷을 불러들이는 빅토리아풍조(Victoria’s Riflebird).  프란시스코 벨로네시/위키미디어 코먼즈
나무 위에서 자리를 잡고 암컷을 불러들이는 빅토리아풍조(Victoria’s Riflebird). 프란시스코 벨로네시/위키미디어 코먼즈
새들의 경우 수컷은 이른 봄에 영역을 정해 놓고 관리를 한다. 힘이 좋은 놈은 넓고 먹이가 많은 노른자 땅을 차지하고, 힘이 약한 놈은 먹이가 적고 볼품없고 변두리 허접한 곳에 산다. 노래를 부르면서 영역의 경계가 되는 부분에 있는 나무를 옮겨 다니며 순찰한다. 여기는 내 땅이니 다른 수컷들은 얼씬도 하지 말라는 노랫소리다. 그러면서 이 땅에 식량이 많아 자식들을 배불리 먹여서 잘 키울 자신이 있다는 자랑을 하며 암컷을 유혹한다. 암컷은 동네를 몇 바퀴 둘러보며 여러 수컷을 비교해 본 후에 마음에 드는 놈에게 다가가 짝을 이뤄 번식한다. 새들이 사는 숲 속에 한적하고 음침한 곳이 많아도 수컷이 강제로 성폭력을 휘두르진 않는다. 암컷이 허락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애절한 구애 행동은 있어도 성추행도 없다. 이런 간절함은 양서류, 곤충, 닭과 공작 수컷에서도 볼 수 있다.

두꺼비가 포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수컷이 떼어 내려고 간섭하는 장면이다. 이정현(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두꺼비가 포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수컷이 떼어 내려고 간섭하는 장면이다. 이정현(국립생물자원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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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는 ‘강제 추행’한다?

동물에서 암컷의 허락 없이 강제로 추행하는 경우도 있다. 양서류가 대표적이다. 이른 봄에 개구리 수컷들이 노래를 부르면 암컷이 맘에 드는 수컷에게 접근한다. 수컷이 포접하면서 앞다리 생식 혹(돌기)으로 암컷의 옆구리를 눌러 호르몬을 변화시킨다. 포접(암수의 개체가 몸을 포갠 행위) 중에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정자를 뿌려 수정시키는 식이다. 포접하고 있는 도중에 선택받지 못한 수컷들이 암컷 주위에 엉겨 붙어 포접한 수컷을 떼어내려고 파고들어 발버둥 칠 때도 있다. 수컷 숫자가 암컷보다 훨씬 많아 일대일로 짝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 나타난 사고다.

동물들의 사랑의 세계
고릴라 고리나-우지지의 ‘합방’: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암말과 수말: 강력한 뒷발질이 있다
새들의 세계: 수컷은 영역 잡아놓고 꽃단장…암컷은 선택
양서류: 암수 포접 중에 다른 수컷들이 물고 늘어진다

동물에서 자식을 낳는 데 투자를 많이 하는 성(암컷 또는 수컷)이 배우자 선택권을 쥐고 있다. 수컷의 정자는 매일 수백, 수천 마리씩 만들어지나 암컷의 난자는 매일 못 만든다. 예로서, 기린은 14일마다, 말은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19~22일마다, 고릴라는 30~32일마다, 호랑이는 34~61일마다 난자를 만들 수 있어 생산 원가가 비싸 함부로 쓸 수 없다. 덜컥 임신이라도 되면 새끼가 젖을 뗄 때까지 양육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고 그 기간에 임신할 기회조차 없다. 결국 어떤 수컷을 배우자로 맞이할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수컷의 정자는 매일 만들어져 쉽게 써도 되지만 암컷은 다르다. 어떤 수컷을 만나야 똑똑한 자식이 태어날지, 자식이 고생을 덜 하며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을지 엄격하게 평가한다. 까다로운 암컷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딱지를 맞았어도 성폭행은 안 한다. 다만 비교할 수컷이 없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 마음에 쏙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는 과정에 자칫 사람들 눈에 성폭행으로 보일 수 있으나 성폭행은 아니다. 생명체의 본능인 번식이 최우선이라 망설이듯 최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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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신사다

반려동물이나 사육 중인 야생동물은 사람들 마음대로 짝을 맺어 준다. 하지만 동물도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하고 싶지 않을까? 사례로 들었던 몽고야생말 암컷이 웬만하면 수컷의 마음을 받아줬을 텐데 이상향이 아닌지 싫다는 선을 긋고 죽을 때까지 밀쳐낸 것으로 본다. 실제로 동물이 스스로 선택하게 여건을 만들어 주기 쉽지 않다. 야생동물의 경우는 사육 상태에서 선택할 후보도 적거니와 공간적인 제한이 있어서다. 설령 그럴지라도 짝을 맺어 줄 동물을 구할 때 서로 어울릴 수 있을지, 서로 좋아할 만한지 한 번쯤 동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좋겠다.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은근히 동물을 하찮게 보거나 인간보다 못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과연 그럴까? 동물 세계에서 수컷이 암컷의 결정을 존중하고 성폭행도 안 한다. 멋진 신사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도덕적이지 않은가? 자연에서 배울 것이 많다.

노정래 전 서울동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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