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노정래의 동물원탐험
고릴라에서 개구리까지 생식 과정의 ‘강제성’을 살펴봤다
고릴라에서 개구리까지 생식 과정의 ‘강제성’을 살펴봤다
서울동물원의 암컷 고릴라 ‘고리나’. ‘고리롱’이 49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40살 고리나는 혼자가 되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고릴라 ‘고리나’ “넌 더 크고 와라” 종보전센터로서의 역할을 하는 동물원 업무 중 하나가 멸종위기에 처한 종의 번식이다. 몇년 전에 외국에서 고릴라를 들여온 적이 있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수컷인 ‘고리롱’이 49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40살인 암컷 ‘고리나’의 대가 끊길 상황이 닥치자 새 신랑을 영국 포트림동물원에서 들여왔던 것이다. ‘우지지’로 부르는 이놈은 19살로 한 눈으로 봐도 어깨가 딱 벌어진 건장한 청년이다. 서로 친하게 지내게 하려고 일단 얼굴을 보게 해 줬다. 옆방에 지내면서 창문으로 얼굴만 보는 정도였다. 느닷없이 만나게 해 줬다간 고리나가 ‘왜 자기 영역에 침입했냐’며 우지지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 뻔해서다. 한달쯤 얼굴 보기를 하다 문을 열어 합방시켰다. 애간장을 태워 만나게 하면 만나자마자 사랑을 나눠 임신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예상과 달리 합방 첫날부터 고리나가 우지지를 본체만체했다. 환심을 사려고 우지지가 작은 나무를 몇 개 뽑아 휘휘 돌리며 고리나 주위를 맴돌아도 거들떠보질 않았다. 용기를 낸 우지지가 슬금슬금 다가가면 어김없이 밀쳐냈다. 한술 더 떠 잘 때 각방 썼다.
영국 포트림동물원에서 들여온 19살 우지지.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고리나(왼쪽 위)와 영국서 온 수컷 우지지가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발정 난 암말은 수말에게 가서… 홀로 지내는 몽고 야생말 암컷을 위해 외국에서 수말을 들여와 합방시켰으나 첫날밤부터 계획이 어긋났다. 암컷은 수컷을 만나자마자 도망가며 뒷발질해댔다. 말의 뒷발질은 방어 동작이다. 추근대자 싫다는 표현으로 뒷발질했는데, 눈치 없는 수컷이 계속 따라붙어 집적거리다 결국 뒷발에 차여 죽고 말았다. 실제로 야생에서는 발정 난 암말이 수말에게 접근해 ‘히잉’ 거리는 특이한 소리를 내며 앞발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다 짝짓기를 하기도 한다. 발정이 난 암컷이 곁에 있어도 수컷이 힘으로 밀어붙여 강제적으로 짝짓기하진 않는다. 다른 수컷이 접근하지 못하게 악착같이 막을 뿐이다. 암말이 허락해야 짝짓기가 이뤄진다.
나무 위에서 자리를 잡고 암컷을 불러들이는 빅토리아풍조(Victoria’s Riflebird). 프란시스코 벨로네시/위키미디어 코먼즈
두꺼비가 포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수컷이 떼어 내려고 간섭하는 장면이다. 이정현(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두꺼비는 ‘강제 추행’한다? 동물에서 암컷의 허락 없이 강제로 추행하는 경우도 있다. 양서류가 대표적이다. 이른 봄에 개구리 수컷들이 노래를 부르면 암컷이 맘에 드는 수컷에게 접근한다. 수컷이 포접하면서 앞다리 생식 혹(돌기)으로 암컷의 옆구리를 눌러 호르몬을 변화시킨다. 포접(암수의 개체가 몸을 포갠 행위) 중에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정자를 뿌려 수정시키는 식이다. 포접하고 있는 도중에 선택받지 못한 수컷들이 암컷 주위에 엉겨 붙어 포접한 수컷을 떼어내려고 파고들어 발버둥 칠 때도 있다. 수컷 숫자가 암컷보다 훨씬 많아 일대일로 짝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 나타난 사고다.
고릴라 고리나-우지지의 ‘합방’: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암말과 수말: 강력한 뒷발질이 있다
새들의 세계: 수컷은 영역 잡아놓고 꽃단장…암컷은 선택
양서류: 암수 포접 중에 다른 수컷들이 물고 늘어진다
동물은 신사다 반려동물이나 사육 중인 야생동물은 사람들 마음대로 짝을 맺어 준다. 하지만 동물도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하고 싶지 않을까? 사례로 들었던 몽고야생말 암컷이 웬만하면 수컷의 마음을 받아줬을 텐데 이상향이 아닌지 싫다는 선을 긋고 죽을 때까지 밀쳐낸 것으로 본다. 실제로 동물이 스스로 선택하게 여건을 만들어 주기 쉽지 않다. 야생동물의 경우는 사육 상태에서 선택할 후보도 적거니와 공간적인 제한이 있어서다. 설령 그럴지라도 짝을 맺어 줄 동물을 구할 때 서로 어울릴 수 있을지, 서로 좋아할 만한지 한 번쯤 동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좋겠다.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은근히 동물을 하찮게 보거나 인간보다 못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과연 그럴까? 동물 세계에서 수컷이 암컷의 결정을 존중하고 성폭행도 안 한다. 멋진 신사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도덕적이지 않은가? 자연에서 배울 것이 많다. 노정래 전 서울동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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