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가슴곰 KM-53은 지리산 밖으로 이동 중 교통사고를 당해 현재 종복원센터로 복귀해 치료를 받으며 머물고 있다. 윤주옥 제공
나는 10년 전 지리산자락으로 내려왔다. 매일 아침 노고단을 바라보며 출근하는 행운을 얻었다. 지리산의 사계절은 두루 아름답다. 그러나 단지 보이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2004년 시작된 반달곰 복원사업의 결과, 그 속을 어슬렁거리는 반달곰들이 늘면서 이제 지리산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산이 됐다.
지리산에는 원래 수백 마리의 반달곰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포획과 밀렵으로 1990년대 이후에 반달곰은 5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고 어르신들의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동물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달곰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지금은 60여 마리의 반달곰이 지리산에 살고 있다.
지난 6월24일 저녁,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서 진행된 ‘대화 마당 “반달곰의 교통사고와 죽음…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입니다”’는 5월 초에 교통사고를 당한 반달곰과 6월 초에 올무에 걸려 죽은 반달곰이 계기가 되어 마련된 자리였다.
나의 삶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위해 16명의 사람들이 일요일 저녁, 깊은 산속의 절집을 찾았다. 종복원기술원 관계자(이하 기술원 관계자) 1명과 야생동물전문가 1명을 제외한 나머지 14명은 대부분 지리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지리산에 반달곰이 60여 마리나 산다는데 그럼 복원사업은 끝난 건지, 반달곰이 사는 산에 가는 건 위험한 일은 아닌지, 수도산으로 간 반달곰을 두 번이나 잡아온 이유는 무엇인지, 반달곰이 지리산 밖으로 나가면 잡아오는 것이 복원사업의 매뉴얼 중 하나인지, 올무란 건 그렇게 놓아도 되는 건지 등을.
지난달 24일 지리산 연곡사에서 열린 ‘대화 마당 “반달곰의 교통사고와 죽음…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입니다”’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주옥 제공
반달곰 복원사업에 대한 기술원 관계자의 설명에 참석자 가운데 한 분이 “반달곰 50마리라는 1차 목표를 달성했으니 종복원기술원은 스스로 자유로워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종복원기술원 관계자가 “우리의 역할은 끝났다. 반달곰은 자연에 적응해서 잘 살고 있다. 반달곰의 특성은 이러저러 하니 국민 여러분들은 관할 행정관청과의 협력 속에 반달곰과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하라고 선언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야생동물 전문가는 “반달곰 복원사업의 목표는 50마리가 아니다. 지리산만이 아니라 설악산까지, 백두대간에 반달곰이 사는 것이 목표이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분이 또 물었다. “지리산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반달곰이 살길 원한다면서 왜 수도산으로 간 반달곰은 두 번이나 잡아왔느냐”고. 이에 기술원관계자는 “당시도 여러 의견이 있었고, 인간과 반달곰의 안전을 위해 회수했지만 이제는 환경부도 지리산 밖으로 나간 개체를 회수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어떤 분은 “반달곰이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날 정도면 반달곰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이야기인데 그러면 위험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걱정한다”고 했다. 야생동물 전문가는 “반달곰은 잡식성, 주로 초식을 하므로 육식성인 불곰보다는 인간에게 덜 위험하다, 그래도 덩치가 있으니 당연히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극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산에서 곰과 마주쳤던 사람들의 경험담도 나왔지만, 사람도 곰도 서로를 피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올무로 옮겨갔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KM-55는 이동형 올무에 희생됐다. 기술원 관계자는 KM-55 다리에 걸린 올무가 살을 계속 파고들어 뼈에 닿아 있었으며, 엄청난 몸부림으로 바위에 부딪힌 올무가 다 닳았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미간에 안타까움과 분노가 스쳤다. 종복원기술원에 따르면 반달곰 복원사업 이후 20번의 올무 피해가 있었다. 추적 가능한 곰은 올무를 제거해주고 수술을 해주기도 하는데, 올무 피해를 발견 후 해당 지자체,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해도 범인을 잡아 처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제도상으로는 처벌할 수 있지만 지역 정서상 그것이 어렵다는 이유다. 그러니 올무를 아무리 걷어내도 지속적으로 설치된다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반달곰이 지속적으로 지리산 밖으로 나갈 것이니 국가가 나서서 강력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리산을 빠져나와 백운산에서 새 삶터를 차렸던 반달곰 KM-55가 올무에 걸린 채 죽어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올무를 왜 놓을까. 반달곰이 지역 주민들의 생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까. 반달곰이 아니더라도 지리산 자락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 야생동물과 만나고, 그들의 흔적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피해를 입는다. 마당으로 매일 내려오는 멧돼지로 김장 배추와 텃밭 농사를 포기했다는 분도 있고, 마을 전체에 전기 울타리를 쳤다는 분도 있고, 고라니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분도 있다. 나 자신도 고라니와 멧돼지로 콩과 감자 농사를 망친 일이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농작물을 보호하려 하고, 야생동물들은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그 방어선을 뚫고 먹이활동을 한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낯선 일들이 지리산자락에서는 일상이다. 이제 그 일상 안으로 반달곰이 들어오려 한다.
일상 안으로 반달곰이 들어오는 것, 나는 그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우리 역사를 반만년이라 한다면 4930년 동안은 늘 수 백마리의 반달곰과 함께 살아왔다. 반달곰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시간은 불과 40년도 안 된다. 깊은 산에 살던 반달곰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산은 어디나, 언제나 마음껏 다녀도 괜찮은 곳이었고, 인간외의 다른 생명체들은 인간 맘대로 할 수 있는 존재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복원사업으로 반달곰이 살게 되면서 자연은 그 신비함을 다시 회복하고 있다. 나는, 복원을 위해 방사한 반달곰이 ‘풀어 놓은 반달곰’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그냥 ‘야생동물’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도로에 자동차가 다니는 일이 특별한 일이 아니듯이, 또 그 자동차로 인해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는 일을 꾸준히 고민하는 것처럼, 우리 뒷산에 반달곰이 사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며, 반달곰과 우리가 모두 안전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게 고민되었으면 한다. 그 고민의 결과가 올무 수거로 표현될지, 교육으로 표현될지, 캠페인으로 표현될지는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현실화될 것이라 믿는다.
윤주옥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