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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느리고 우아한 바다소가 죽어가고 있다

등록 2018-10-27 09:00수정 2018-10-28 15:31

[애니멀피플] 마승애의 동물학교
바다에 사는 신비로운 포유동물 매너티
모터보트에 베고, 적조에 숨 막히고…
삶터인 바다에서 일상적 위협 당해
물 안과 밖을 오가며 사는 매너티는 독특한 외모를 가진 신비한 동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물 안과 밖을 오가며 사는 매너티는 독특한 외모를 가진 신비한 동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이야기는 멸종위기종인 매너티의 실제상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스토리입니다.

“아가야, 어서 가자!”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의 가슴지느러미 뒤쪽 아래 달린 작은 젖을 빨다가 멈추고, 나는 엄마를 따라 헤엄쳐 갔다. 동그란 꼬리지느러미를 부드럽게 위아래로 저었다. 천천히, 때론 빠르게 헤엄치며 아름다운 해안가를 따라 내려갔다. 수영하다가 잠시 물 위로 올라와서 닫혔던 콧구멍을 열어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수영하면서 우리는 바다 안팎의 삶을 마음껏 즐겼다. 비록 물고기는 아니지만, 바다는 우리 매너티의 풍요로운 보금자리이자 놀이터랄까.

겨울이 되면 추위를 많이 타는 동물인 매너티는 따뜻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여행해야 한다고 엄마가 말했다. 그런데 얼마나 바다를 여행한 후였을까? 푸르기만 하던 바다가 점점 수정처럼 맑아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맑은 물은 참 따뜻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이곳은 물이 수정처럼 맑아서 ‘크리스털 리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데, 맑은 물속 어딘가에서 뜨끈뜨끈한 물이 솟아 나오기 때문에 물이 데워진다고 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있는데 한 마리, 두 마리, 이어 수십 마리의 매너티들이 나타났다. 태어나 줄곧 엄마와 단둘이서 살다가 이렇게 많은 매너티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 뒤로 숨었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툭 하고 건드렸다. “이 아이가 올해 태어난 아기로구나?”

등에 허연 반점이 여기저기 퍼져있는 커다란 매너티 한 마리가 나타나 아는 척하며 우리에게 말을 붙였다.

엄마는 몸을 돌려 확인하더니, 몹시 반가워하며 말했다. “어머! 어떻게 된 거야? 살아있었던 거야? 지난겨울 발전소 쪽으로 갔던 매너티들이 거의 다 죽었다던데. 너도 그쪽으로 갔었잖아.”

“맞아. 여기는 이미 매너티들이 많아 먹이가 부족하지. 사실 이곳 말고는 따뜻한 바다가 인간들의 개발로 다 망가져 사라졌잖아. 결국 우리는 발전소 앞으로 이동했지. 그런데 인간들의 발전소에서 나오던 따뜻한 물이 더는 나오지 않았어. 이상하게도 몹시도 차가웠어.”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 부르르 떨며 매너티 아저씨가 말했다.

“그래서 다들 추위에 얼어 죽었다고 들었어.” 엄마가 친구들 생각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추위에 몸이 얼어 물아래로 가라앉는 것조차 불가능해서 둥둥 떠버렸는데, 인간들이 나타났어. 그들은 그물을 쳐서 나와 몇몇 친구들을 둘러싸더니 모두 잡아갔어. 그런데 그곳에서 지난 몇 달간 치료를 받았지. 동상이 다 나으니 허연 반점이 남았어. 그래도 치료가 끝나니 인간들이 우리를 이곳으로 돌려보냈어.” 등이 허옇고 덩치가 큰 매너티 아저씨가 말했다.

“천만다행이네! 살아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엄마는 매우 기뻐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를 한참 떨다가 배가 고파진 엄마는 물가를 따라 맹그로브 숲으로 수초를 찾아갔다. ‘바다 소’라는 별명답게 매너티들은 강과 바다에 있는 풀을 먹고 산다. 엄마는 3m나 되는 큰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50kg 정도의 수초를 먹어야 한다. 수초가 자라는 맹그로브 나무뿌리 사이엔 이미 다른 매너티들이 많았다. 엄마는 다른 수초가 있는 곳을 찾아 헤엄쳐 갔다.

매너티가 미국 크리스털 리버에서 수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매너티가 미국 크리스털 리버에서 수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모터보트 프로펠러에 상처 입은 매너티가 차에 실려 있다. 미국 국립보존훈련센터
모터보트 프로펠러에 상처 입은 매너티가 차에 실려 있다. 미국 국립보존훈련센터
한참을 헤엄쳐 가던 중 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엄마! 저기 인간들이에요! 사람들이 등이 허연 매너티 아저씨를 구해주었다던데, 혹시 맛있는 먹이도 주지 않을까 싶어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리곤 쏜살같이 사람들이 있는 보트 근처로 헤엄쳐 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뒤에서 엄마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안 돼! 인간들 근처는 위험해!” 엄마는 나의 앞을 가로막았고, 바로 그 순간, 인간들이 탄 커다란 보트 하나가 엄마를 치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보트에 달린 동그란 칼날들이 엄마의 등을 깊게 할퀴었다. 수정처럼 맑던 물이 붉게 물들었다.

아!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엄마가 힘겨워하면서 물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엄마는 조금 전에 했던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 “아가야! 인간들 근처는 위험하단다. 이렇게 다칠 수가 있거든.” 그리고 며칠 후, 큰 파도가 일어나 엄마를 그만 바다로 쓸어가 버렸다. 등이 허연 매너티 아저씨를 구해주었다던 착한 인간들은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잃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아직 수초를 찾는 법도 어느 수초가 먹을 수 있는지도 배우지 못했다. 게다가 이가 충분히 자라지 않아 가까스로 찾은 수초를 씹어봐야 너무 거칠기만 했고 소화도 잘되지 않았다. 엄마 젖이 너무나 그리웠다. 하지만 따뜻한 엄마 젖은커녕 먹을 만한 수초도 더 찾기 어려웠다. 헤매며 물 위로 올라가 숨을 쉬는데, 맑은 바다 위에 붉은색 이끼 같은 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것들에서는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물 밖으로 코를 올려 숨을 쉬면 쉴수록 그 냄새로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고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몸부림을 쳐봤지만, 어쩔 수 없이 엄마가 그토록 가지 말라고 하던 인간들이 사는 해안가로 밀려가고 말았다. 멀리서 한 무리의 인간들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 인간들은 나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엄마처럼 죽게 할 것인가?’ 천천히 눈을 감는데, 수정처럼 맑던 바다가 모두 피같이 붉은 것들로 덮여버렸다. 곳곳에서 수백 마리의 매너티들이 물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매너티를 죽이는 모터보트

아름다운 미국 플로리다 바다에는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모터보트들이 가득합니다. 플로리다 바다에 이어진 크리스털 리버는 천연온천이 솟아오르는 곳이라 추위에 약한 매너티들은 여기서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겨울을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모여든 매너티들이 숨을 쉬러 물 위로 올라오는 순간 무시무시한 프로펠러 칼날을 가진 모터보트들이 매너티들의 등위로 지나가 해마다 수많은 매너티가 다치고 죽습니다. 1970년대 이후, 멸종위기의 매너티들을 구조하고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프로그램이 성공하면서 이제 다행히 매너티 개체 수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내 발전소들의 친환경 연료교체로 따뜻한 물을 공급하는 바다가 줄어들고, 사라지지 않은 모터보트 피해로 많은 매너티는 여전히 멸종위기 상태입니다.

적조현상으로 떼죽음 당한 매너티들

1996년 플로리다 앞바다의 적조로 매너티 151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도 심한 적조가 일어나 매너티가 241마리 이상 죽었다고 합니다. 적조가 일어나면 붉은 플랑크톤에서 독소가 방출되는데, 매너티들이 숨을 쉬러 수면에 올라올 때마다 이를 들여 마시게 됩니다. 결국 적조의 독소로 인해 경련과 마비를 일으키며 폐사하게 되죠. 매너티를 죽이는 적조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로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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