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마포구 창비홀에서 시민, 활동가, 법조인들이 천연기념물인 산양을 보호하는 캠페인의 하나로 연극 형식의 ’설악산 산양 케이블카 소송 모의법정’을 연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엄숙한 법정, 재판장이 사건의 쟁점을 설명하는 가운데 갑자기 소란이 일더니 누군가 문을 뻥 차고 나타난다.
“잠깐! 산양 소송을 한다면서 왜 저를 부르지도 않고 이렇게 재판을 합니까? 제가 당사자라고요.”
말을 하는 산양이 나타났다. 산양은 현재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추가로 설치할 수 있도록 천연보호구역에 문화재 현상 변경을 허가한 문화재청을 상대로 법정 싸움을 진행 중이다. 오갈 곳 없어질 산양을 대신해 시민과 동물단체, 법조인들이 힘을 모아 대신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국내 정서상 자연물이 법적 당사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부터가 논란이라 난관이다. 이 상황이 가장 답답할 산양이 속시원히 제 목소리를 내주면 어떨까.
그런 상상이 모여 오는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홀에서 설악산 산양 케이블카 소송을 연극으로 만든 모의 법정이 열린다. 산양 ‘뿔이’는 연극인 윤주희씨가 연기하고, 판사와 변호사, 산양 지킴이 등은 실제 산양 소송을 제기한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변호사들이 역할을 맡았다. 이달 초 모집한 시민배심원단도 모의 재판에 직접 참여한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산양은 설악산 등지에서 살고 있다. 이 가운데 28마리가 모여 사는 지역에 강원도와 양양군이 케이블카 설치 공사를 추진 중이다. 자체로 천연보호구역이기도 한 설악산에서는 정상 대청봉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사업이 쉽게 추진되기 어려웠지만 강원도 양양군은 ‘삼수’ 끝에 허가를 얻어냈다. 2012년과 2013년 두차례 환경부 승인을 받지 못했지만, 노선 길이와 도착지 등을 변경해 2015년 케이블카 설치 신청을 통과시켰다.
지자체는 케이블카가 지나가는 자리를 피해 산양을 살게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환경단체 등은 산양의 생태 습성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산양은 반경 1km 내에서만 활동하는 습성이 있는 데다 산양이 좋아하는 높은 바위산과 몸을 숨기기 좋은 숲이 뒤섞인 삶터를 찾기 쉽지 않다는 이유다.
지난 9일 설악산 산양 케이블카 소송 모의법정 연극 리허설 현장.
17일 선보이는 연극 무대는 복잡하고 어려운 법정 공방과 산양이 처한 처지를 쉬운 입말로 설명한다. 주인공 뿔이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법적으로 땅으로 소유하고 있는 소나무인 경북 예천 석송령에서 10년에 한 개씩 열리는, 인간의 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솔방울을 먹고 나타났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설악산 산양들과 유사한 처지에 놓였던 미국 그래엄산의 붉은다람쥐는 증인으로 나선다. 미국 애리조나주 그래엄산 3000m 이상 고지대 전나무숲에 살던 붉은다람쥐들은 계속되는 개발 사업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극소수만 남아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붉은다람쥐의 유일한 터전인 그래엄산에 대규모 천체물리학 단지가 들어설 계획이 세워졌고, 환경단체 시에라클럽 등은 피해를 가장 많이 입게 될 붉은다람쥐를 원고로 내세워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례의 차이는 미국 연방법원은 다람쥐들을 원고로 인정하고 피해를 직접 소명할 기회를 줬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산양에 앞서 2003년 도로공사로 인해 서식지를 잃을 위기에 처했던 도롱뇽, 2007년 충주 황금박쥐 등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당사자로서의 권리를 인정 받지 못했다.
피고 쪽 연기자들은 강원도 양양군의 지역 경제 활성화, 장애인과 노약자가 케이블카를 이용해 설악산을 관광할 권리, 케이블카 이용으로 인한 등산객 감소로 환경 보호 등을 이유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필요성을 피력한다.
배심원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세 가지다. 첫째, 케이블카 공사 진행이 부당하다. 둘째, 산양과 후견인인 박그림씨가 이 소송을 제기할 능력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 셋째, 산양과 박그림 모두 혹은 줄 중 한 경우 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으나 케이블카 공사 또한 진행하는 것이 맞다. 배심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