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중성화 예산이 늘어나고 수술하는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수술 후에 길고양이 관리를 위한 정책이 여전히 미비하다.
다시 봄이 왔다. 지난 겨울이 춥지 않았다고 해도 봄은 사람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체가 기다리는 계절이다. 고양이도 봄이 참 좋다. 시인 이장희는 시 ‘봄은 고양이로다’에 이렇게 썼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시를 읽다 보면 한껏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가 상상이 된다. 따뜻한 볕에 깜빡깜빡 졸고 있는 고양이가 떠오르기도 한다.
느긋하고 나른한 봄의 고양이들은 이 계절, 한편으론 출산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개체 수 조절과 민원 해소를 위해서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TNR)을 서둘러 시작하는 것도 봄이다. 지자체는 해마다 예산을 늘려가면서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매년 중성화 예산이 늘어나고 수술하는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수술 후에 길고양이 관리를 위한 정책이 여전히 미비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중성화 수술 이후 길고양이 관련 민원이 줄어드는 것에 만족해선 안 된다. 수술 당한 길고양이가 스스로 살아가게 놔두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수술로 영역이 줄어들고 싸움을 못 하게 되는 길고양이를 위해서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도 병행하고 확대해야 한다.
서울의 경우 2018년에 8억6천여만원을 들여서 9천여마리를 수술하고, 올해는 10억이 조금 넘는 중성화 사업 예산을 책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밝히는 서울 시내 공식 급식소는 2018년 기준으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급식소 32개와 자치구별 급식소 98개에 불과하다.
길고양이 급식소는 중성화 사업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우리가 길고양이의 동의를 묻지 않고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매년 많은 돈을 들여서 수술하고 있다면, 최소한 밥이라도 편히 먹고 살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그 정도는 약속하고 중성화 사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우리에게 묻지 않았다. 포획 틀로 잡을 때도, 마취를 시킬 때도, 차디찬 수술대 위로 올릴 때도, 중성화 표시로 한쪽 귀 끝을 잘라낼 때도, 포획 틀에서 나가라고 문을 위로 올렸을 때도.
그들은 물어볼 수도 없었다. 사람 편하자고 시작된 일. 사람들은 답하지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고양이들은 수없이 물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말을 할 수 없으니 묻지 못했다.
생명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없애야만 이 땅에 살 수 있다고 했다면, 그걸 빼앗은 사람은 분명 책임을 져야 한다. 살 수 있게 하겠다는 그 약속은 과연 지켜지고 있을까.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다니는 봄이다.
글·사진 김하연 길고양이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