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의 야생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한국호랑이)의 새로운 위협요인으로 떠오른 개홍역을 막으려면 호랑이에 직접 백신을 맞혀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야생동물 보전협회(WCS) 제공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한국호랑이)의 주요 멸종위협으로 떠오른 개홍역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는 개가 아닌 야생 호랑이에게 직접 백신을 접종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제까지 개가 바이러스의 주요 숙주로 알려졌지만 너구리 등 다른 포식자들이 더 중요한 바이러스의 저수지 노릇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마틴 길버트 미국 코넬대 박사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 유일한 서식지가 남아있는 아무르호랑이를 멸종에서 지키기 위한 실질적 대책은 야생 호랑이에 바이러스 백신을 맞히는 것뿐”이라고 밝혔다.
길버트 박사는 “야생 호랑이에 접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해마다 작은 호랑이 집단에서 2마리씩 백신을 맞히는 것으로도 개홍역으로 인한 멸종위험을 75%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2000년대 들어 개홍역에 걸린 아무르호랑이가 백주에 마을에 나타나 돌아다니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곤 했다. 야생에서의 정상적인 아무르호랑이 모습. 아무르, 런던 동물학회 제공
서식지 파괴와 밀렵에 이어 호랑이의 주요한 멸종위협으로 떠오른 개홍역은 1994년 아프리카 세렝게티에서 사자 집단의 3분의 1 가까운 1000여 마리를 사망케 하기도 했다. 개를 잡아먹거나 개와 싸움을 벌이는 늑대, 여우 등에서도 떼죽음 사태가 일어났다.
현재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지방에 550마리 미만이 살아있는 아무르호랑이는 2003년에 이어 2010년에도 개홍역으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개홍역에 걸린 호랑이는 신경증 증상을 보였다.
마을에 내려와 대로를 어슬렁거리면서 교통을 마비시키거나 손쉬운 먹이인 개를 사냥하는 등
이상행동을 벌이며 근육 경련과 착란을 일으키고 마침내 치명적인 마비에 이르러 죽게 된다. 2015년에는 아무르표범(한국표범)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다
사망한 사례가 밝혀졌다.
2011년 10월 러시아 연해주 대로변에 출현한 아무르호랑이.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연구자들은 연해주의 외딴 마을의 개를 대상으로 항체 형성 여부를 조사한 결과 개들이 대부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맞지만 그 감염원은 야생동물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유전자 염기서열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바이러스의 기원이 개보다는 야생동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공동 연구자인 나데즈다 술리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박사는 “호랑이가 사는 곳에는 17종의 포식자가 함께 산다”며 “너구리, 담비, 족제비, 오소리, 멧돼지 등이 가장 중요한 바이러스 저수지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개뿐 아니라 호랑이가 잡아먹는 너구리, 멧돼지, 족제비, 담비 등에서도 개홍역 바이러스가 널리 감염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실적으로 호랑이를 접종하는 수밖에 대안이 없다. 런던 동물학회 제공
개홍역에 대한 경구용 백신은 개발돼 있지 않아 미끼 등을 이용해 야생동물에 접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일한 방법은 보호 대상인 호랑이에게 백신을 직접 주사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아무르호랑이 보전 연구를 위해 위치 추적 목걸이를 채우는데 이때 백신을 주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컴퓨터 모델로 계산한 결과 해마다 2마리의 호랑이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포획 연구 때 백신을 주사하면 연간 3만 달러의 비용으로도 멸종위험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표범의 땅 국립공원에서 이런 방식으로 백신을 접종하면 50년 안에 호랑이가 멸종할 확률은 15.8%에서 5.7%로 낮아진다.
연구에 참여한 새러 클리블랜드 영국 글래스고대 박사는 “이로써 아무르호랑이의 개홍역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호랑이 보전에서는 보기 드문 희소식”이라고 말했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 DOI: 10.1073/pnas.2000153117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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