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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평양 아줌마·함경도 처녀 대전에 호프집 차리다

등록 2006-02-16 19:51

15일 대전 둔산동 평양모란호프집에서 김혜령(25·왼쪽)씨와 장은정(36)씨가 휘파람을 부르고 있다. 이 호프집은 이들을 비롯한 새터민 여성 5명이 지난 4일 문열었다.
15일 대전 둔산동 평양모란호프집에서 김혜령(25·왼쪽)씨와 장은정(36)씨가 휘파람을 부르고 있다. 이 호프집은 이들을 비롯한 새터민 여성 5명이 지난 4일 문열었다.
“지배인 동지, 맥주 추가요”

“어젯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휘~ 휘~ 휘~ 호 호 호 휘파람 휘파람~”

15일 밤 대전 서구 둔산동 ‘평양모란 호프’는 평양 아줌마와 함경도 처녀가 부르는 북한 가요 ‘휘파람’에 “잘한다”며 앙코르를 외치는 손님들의 박수로 후끈 달아올랐다.

분홍색과 자주색 한복은 차려입은 김혜령(25)씨와 장은정(36)씨는 이내 ‘반갑습니다’를 불러 화답했다.

지난 4일 문을 연 평양모란 호프는 혜령씨 등 새터민(탈북자) 여성 5명이 사장이다.

개업한 지 1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손님들에게 인사하려면 쑥스럽고 주문받으려면 술 이름이 낯설어 진땀을 흘리기 일쑤다.

대표를 맡아 애칭이 지배인 동지인 맞언니 최성혜(39)씨는 1년 전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은정씨와 김선경(20)씨는 돈벌러 중국에 갔다 심해진 탈북자 단속을 피해 ‘독한 마음을 다지고 다진 끝에’ 한국행을 택했다. 혜령씨는 먼저 고향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언니와 연락이 돼 국경을 넘었단다.


이들이 대전을 제2의 고향으로 택하고 호프집을 연 것은 지난해 12월 대전 목원대가 연 새터민 잔치에서 만나 ‘뭔가 해보자’는 데 뜻을 같이하면서 비롯됐다.

새터민 여성 5명 의기투하브
장사 서툴지만 “예쁘게 봐주세요”

적은 정착금은 한국 오는 경비로 다 준데다 1년 동안 매달 받는 생계보조금 30만원으로는 살기가 쉽지 않았단다.

혜령씨는 “대학 나온 청년들도 취직을 못 하는 상황에서 일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직장을 구해도 보이지 않는 편견과 사회적응력이 부족해 오래 다니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에 새터민들이 연 ‘대동강 호프’가 잘된다는 소식을 듣고 노재경 유성구 새터민후원회장께 ‘우리도 호프집을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때마침 이 가게가 빈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분 도움을 받아 열게 됐어요.”

성혜씨는 “개업을 준비할 때는 잘돼서 금방 돈을 모을 것 같았는데 10여일 동안 올린 매출로는 월급은커녕 이자 갚기도 어려운 지경”이라며 “매출을 높이려고 술과 안주 값을 다른 곳의 70%선에 맞추고 손님들에게 ‘장뇌산삼주’등 북한 명주를 맛뵈기로 서비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돈벌어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은정씨는 ‘남자친구와 결혼’, 혜령씨는 ‘마트 사장’, 선경씨는 ‘운전면허 따고 차 사고 싶다’고 말했다. 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새터민 정착사업도 펼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뭘해야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던 이들은 성혜씨가 “북에 사는 가족에게 송금하고 싶다”고 밝히자 ‘고향 바닷가 공원에서 남자친구와 다시 만나 데이트할 수 있을 까’,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영영 못 만나면 어쩌나’ 한숨지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배인 동지 성혜씨는 “목숨걸고 찾은 남한인데 사업에서도 성공하고 싶다”며 “실수하더라도 예쁘게 봐주시고 저희가 어려움을 딛고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여기 맥주 더 주세요.” 손님이 외치자 이들은 다시 활짝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주문받으러 나섰다.

평양모란 호프는 둔산동 케이케이나이트클럽 뒤 청암빌딩 8층에 있다. (042)484-0015.

글·사진/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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